2024-04-20 16:33 (토)
후흑의 독서 삼결(三訣)
후흑의 독서 삼결(三訣)
  • 이광수
  • 승인 2022.03.20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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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2년이 넘도록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는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의 출현으로 온 나라가 코로나 천지가 되고 있다. K방역이라며 자찬했던 말이 무색하게 하루 수십만 명의 감염자가 속출하자 방역대책의 한계를 느낀 정부는 코로나19와의 동행이라는 고육지책을 강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니 알아서 각자도생하라는 것이다. 산책길에 나서도 마스크로 숨쉬기가 답답하니 유산소운동도 안 된다. 지나가는 사람도 마치 외계인을 보듯 슬슬 피하니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 것 같다. 정상적인 일상생활은 언감생심이니 삼년대한 가뭄에 하늘 쳐다 보기다. 그나마 필자처럼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칩거해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셈이다. 전염병에 노출될 염려도 없고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원 없이 읽으며 시간을 보내니 하루해가 짧게만 느껴진다. 삼시 세끼 챙기기만 없다면 더없이 좋을 텐데 그게 참 아쉽다.

 5년 전부터 난해한 주역 공부에 몰두하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중국문헌의 보고인 <사고전서(四庫全書)>목록에 등재된 여러 동양고전들을 두루 섭렵했다. 아직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撤)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전의 속독보다 깊이 있는 심독이 되어 즐겁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가 `사내대장부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만권)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男兒須讀五車書)`는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 지금까지 꾸준히 실천해 왔다. 그러나 온갖 분야의 책들을 섭렵하다보니 머리에 입력된 내용들이 뒤죽박죽 뒤섞여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다행히 최근 수년간 여러 동양고전을 접하면서 서양문물에 경도된 필자의 인식체계도 중도의 미를 중요시한 동양 사상에 영향을 받아 균형 감각을 유지하게 되어 다행스럽다. 매주 두 편의 신문칼럼 기고와 독서생활이 몸에 배여 습관화 되니 은퇴기의 삶이 무료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심신이 맑고 더 건강해졌다. 독서수준 향상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지만 이번에 접한 <후흑학(厚黑學)>의 독서삼결을 통해 깨달은 바가 크기에 그 비결을 기술하니 책을 벗하는 동도제현께서 참고하기 바란다.

 이종오가 쓴 <후흑학>에서 강조하는 독서삼결(讀書三訣)의 비법을 살펴보자. 그는 공부단계(독서단계)를 3단계로 나누어 매우 비판적인 독서법을 제시하고 있다. 1단계는`고서(古書)를 적으로 간주하라`이다. 매우 극단적인 표현이다. `책을 읽을 때 먼저 나의 강적으로 규정한다. 그가 존재하면 나는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그와 한바탕 혈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도처에서 그의 빈틈을 찾아보고 틈이 보이면 당장 처 들어간다. 그리고 옛사람들의 입장에서 공격을 막아내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독서의 이치를 깨닫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이는 그간 고대 공자 등 유가들의 논설에 대해 후세인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맹신한 것에 대한 불신과 비판을 뜻한다. 왜? 라는 의문이나 학리적, 실증적 근거가 희박한 작위적인 논설에 대한 비판 없는 독서를 질책한 것이다.

 2단계는 `고서를 벗으로 여겨라`이다. `만약 자신이 책을 읽다가 어떤 견해가 생기면 곧바로 하나의 새 이론을 만들어 옛사람들의 주장에 대항해본다. 동시에 그들을 좋은 친구로 여기고 서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자세로 의견을 교환한다. 내 이론이 잘못되었을 경우 서슴없이 옛사람의 견해를 따른다. 반대의 경우 자신의 주장을 견지한 가운데 깊이 연구해 나간다` 즉, 2단계는 1단계의 탐색, 공격단계를 넘어 지난 옛사람들의 논설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파악해 옳은 부분은 수용하고 잘못된 부분은 동등한 입장에서 찾아내 연구하면서 독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3단계는 `고서를 제자로 여겨라`이다. `이미 1, 2단계에서 탐색과 연구ㆍ분석을 통해 옳고 그름을 분별한 후 자신의 견해를 확립해 새로운 학설을 낼 경지에 이른 것을 말한다. 이는 책을 펴낼 정도의 옛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높은 식견과 학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자신의 실력이 그들보다 높다는 자신감이 생기면 그들에 대해 비평을 가해도 별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학생의 시험답안지를 채점하듯이 그들이 옳게 말한 것은 O표를 해주고, 틀리게 말했다면 X표를 그어 주라는 것이다. 이는 흔히 우리가 배움터에서 말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으로 `가르침을 통해서 배움을 넓힌다`는 이치를 말한다. 비록 위의 내용처럼 3단계까지 계획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 필부필부의 독서 한계다. 이처럼 독서는 마치 우리 인생행로와도 같아 죽을 때까지 평생 동행해야할 길잡이이자 숙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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