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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갑 부사
조병갑 부사
  • 최학삼
  • 승인 2022.03.1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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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삼 김해대교수 사회복지상담과
최학삼 김해대교수 사회복지상담과

재임 기간은 1887년 8월(발령은 1887년 6월 18일)~1889년 2월이다. 조병갑 하면 떠오르는 내용은 동학농민혁명의 원인을 제공한 탐관오리 고부군수 조병갑이다. 이런 조병갑도 고부군수 전에는 함양군수, 김해부사, 영동현령을 역임했다. 조병갑은 함양군수로 재임(1886년 4월~1887년 6월)하다가 8월 6일 김해부사로 부임하였고 이후 1892년부터 1894년까지 고부 군수로 재임했다. 뜻밖인 것은 함양군수, 김해부사를 역임했던 조병갑의 선정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탐관오리의 대명사로 고부에서 전봉준 장군의 아버지를 죽이기까지 한 인물이 그전에 수령으로 일한 지역에서는 선정을 베풀었다 하여 백성들이 돈을 내어 선정비를 세워 줬다는 것이다.

 조병갑도 고부군수가 되기 전에는 정말로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을지도 모른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아들 낳아서 과거 급제시켜 전라도에 수령으로 보내는 것이 우리 집의 목표다`라는 말이다.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돈으로 전라도 수령 벼슬을 사서라도 보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전라도는 곡창지대, 즉 지금의 호남평야가 있는 지방에 가서 백성들을 수탈해 한 밑천 크게 잡아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하겠다는 의미이다. 정당하게 과거급제를 했으면 좀 덜 할지는 몰라도 돈으로 벼슬을 샀다면 그 몇 갑절로 그 지역 백성들에게서 고혈을 긁어내었을 것이다. 이런 말이 유행할 정도였으니 백성들은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며 정당한 조세 외에도 부당한 조세까지 내야 했을까? 참다못한 고부 지역의 백성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인 것이다.

 앞에서 조병갑이 고부군수가 되기 전에 재임했던 함양군수, 김해부사 시절에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는 의미의 선정비가 존재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1887년 7월에 세워진 함양군 상림의 조병갑 선정비에는 "조선 말 조병갑 군수는 유민을 편안하게 하고 봉급을 털어 관청을 고치고 세금을 감면해 주며 마음이 곧고 정사에 엄했기에 그 사심 없는 선정을 기리기 위해 고종 24년(1887년) 비를 세웠다"라는 의미의 내용이 한자로 적혀있다. 이와 같은 조병갑의 선정비가 백성들을 괴롭힌 탐관오리의 것이라 하여 최근 훼손된 일도 있었고, 철거해야 돈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탐관오리 조병갑의 잘못을 적은 안내판을 설치하고 역사적 교훈으로 삼자는 의미에서 철거하지 않고 존재시키고 있다.

 한편, 조병갑의 선정비는 김해에도 존재한다. 조병갑이 고부군수가 되기 전에는 김해부사를 역임했고, 영동현령으로 잠시 일하기도 하였다. 김해시 생림면행정복지센터 앞에는 고종 25년에 세운 영의정 심순택, 순찰사 이호준, 김해부사 조병갑의 영세불망비와 변조참판 이유인의 송덕비가 한곳에 모여 있다.

 금릉과 낙동강, 금릉은 김해의 미칭으로, 중국의 금릉에 비유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김해의 미칭을 금릉으로 정하여 부른 사람은 정현석 김해부사였다고 한다. 금릉은 양쯔강 유역에 있는 유서 깊은 도시이듯이 김해도 낙동강이 굽이쳐 흘러가는 금관가야시대부터의 고도라서 그런 비유를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현석 부사는 김해의 임호산을 중국 금릉의 봉명산에 비유하기도 했다.

 김해는 예나 지금이나 낙동강을 젖줄로 삼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낙동강은 그 이름도 많다. 낙동강의 의미는 낙양의 동쪽에 있는 강이라는 것이다. 낙양은 경북 상주의 별칭이다. 또한, 금관가야를 뜻하는 가락의 동쪽을 흐르는 강이라는 의미도 있다. 또 다른 이름으로 황강, 황산강도 있다. 김해 지역 근처에서도 낙동강의 이름은 여러 개가 있다.

 이어 김해부사에서 김해군수로 바뀐 부사를 소개한다. 이규대 김해부사는 고종 31년(1894년) 12월에 김해부사로 부임했는데 그 이후에 1895년 5월 지방관제 개편에 따른 지방관제개편으로 김해도호부가 진주관찰부에 속하는 김해군으로 개칭되어 부사에서 바로 군수로 바뀌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1895년 음력 11월 17일을 1896년 양력 1월 1일로 하는 태양력을 사용하게 되었고, 이규대 군수는 1896년 12월까지 김해군수로 재임했다.

 경술국치 전후의 군수 - 김인현 군수가 있다. 재임기간: 1910년 3월~1910년 8월이다.

 김인현 군수는 김해군수로 재임 중에 경술국치(1910년 8월 29일)을 당한 군수이다.1899년(고종17)~1964년. 본관은 회산, 자는 영팔, 호는 동미이다. 1899년(광무 3년) 20세에 참정 민영환을 만나, 궁내부주사로 추천되었다. 1902년에 중추원의관으로 승진되었으며, 1904년 해민원참서가 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민영환이 죽자 그를 제사지내기도 하였다. 1907년 초계군수가 되었으며 이후 김해군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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