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5:41 (금)
태아의 법률적 지위
태아의 법률적 지위
  • 김주복
  • 승인 2022.03.16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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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복의 법률산책
김주복 변호사
김주복 변호사

태아에게 생명권을 인정할 수 있을까? 생명권(right to life)은 자신의 생명을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일본헌법, 독일기본법과 달리 우리 헌법은 생명권을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인간의 생명은 모든 법질서의 전제가 되는 인간의 존재 그 자체이므로, 헌법에 규정이 없더라도 생명권은 당연히 인정된다고 보는 것이 통설과 판례이다. 생명권의 헌법적 근거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헌법 제37조 제1항에서 찾을 수 있고, 헌법재판소는 생명권을 자연법적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태아에게 생명권을 인정한다면, 어느 시점부터 생명권의 주체로 볼 것인지가 문제 된다. 학설로는 ①수정이 된 시점 ②수정란이 자궁벽에 착상한 시점 ③수정 후 14일이 지난 시점[그 이전의 수정란 상태를 초기배아(pre-embryo)] ④장기들이 형성되는 시점[수정 이후 8주까지를 `배아(胚芽, embryo)`, 그 이후는 `태아(fetus)] ⑤`독자적 생존능력`이 생긴 시점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초기배아가 생명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취지의 결정을 한 바가 있고,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잉태 후 14일이 지난 후부터 생명권의 주체가 된다고 한바 있다. 태아에게 생명권을 인정된다고 해도, 출생한 사람과 동일한 권리를 가진다는 말은 아니다. 구체적인 법적 상황에서 태아가 어떻게 법률적 지위를 갖는지를 더 살펴보자.

 먼저, 민사법 영역으로 가본다. 민법 제762조는 "태아는 손해배상의 청구권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또, 민법 제1000조 제3항은 "태아는 상속순위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 조항은 유언의 경우에서도 준용된다(민법 제1064조). 원칙적으로는 사람은 생존한 동안(즉, 출생하여 살아있는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는 것(민법 제3조)이지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상속, 유언에 관하여는 태아도 예외적으로 권리주체가 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다음 형사법 영역으로 가보자. 형법 제269조, 270조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낙태죄를 범죄로 규정하고 형사처벌하고 있다. 낙태죄의 위헌 여부에 관하여 1953년부터 헌법적 쟁점이 되어 왔는데, 이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중 어느 쪽을 우선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는 2012. 8. 23. 경 재판관 4(합헌) 대 4(위헌)의 의견으로, 자기낙태죄 조항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지 않고, 조산사 등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형법 제270조 제1항 중 `조산사`에 관한 부분이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이나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합헌 결정을 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19. 4. 11.경 자기낙태죄 조항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고, 의사 등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형법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도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이나 평등원칙에 위배되어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하며, 위 조항들은 2020. 12. 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는 결정을 하였다[헌법불합치결정: 재판관4(헌법불합치) 대 3(단순위헌) 대 2(합헌)]. 다만,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현실에 맞지 아니한 현행법을 개정할 것을 국회에 촉구한 것일 뿐이므로, 낙태가 전면적으로 허용된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개정안이 입법예고 되어 있고 개정법률이 조만간 국회를 통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동법 영역으로 가보자. 산모가 산재를 당하여 태아까지 신체적인 피해를 입은 경우에 산모가 태아의 신체적 침해를 이유로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대법원은 2020. 4. 29.경 임신 중인 여성이 유해한 업무 환경 때문에 선천성 질환이 있는 아이를 낳았다면 산업재해에 해당한다고 최초로 판결하였다. "태아는 모체 없이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으며, 태아는 모체의 일부로 모(母)와 함께 근로현장에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사고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산재보험의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 `한 몸`, 즉 `본성상 단일체`로 취급된다(대법원2016두41071판결)." 하지만, 대법원판결 이후에도 근로복지공단은 태아산재 신청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는데, 그 이유는 산재보험법상 근로자 본인이 아닌 자녀의 건강 손상에 대한 보상 근거 조항이 없다는 것이었다. 2021. 12. 2.경 국회는 `태아산재`를 인정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 시행 이후에는 업무상 재해로 임신 중 건강이 손상된 자녀도 산재보험법에 따라 요양급여, 장해급여, 간병급여, 장례비 등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된다. 개정안은 2022. 1. 11.경 공포되었고, 시행은 1년이 지난 뒤인 2023. 1. 12. 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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