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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불교의 성격③ `도가와 민족신앙`
가야불교의 성격③ `도가와 민족신앙`
  • 도명 스님
  • 승인 2022.03.1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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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스님 산 사 정 담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기원전 6세기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붓다의 독창적인 가르침만 있지 않고 이전부터 내려온 바라문교와 함께 다양한 종류의 가르침이 융합됐다. 그것은 흔히 모방과 창조를 설명할 때 인용되는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처럼 새로움은 언제나 과거의 바탕 위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직접 전래된 가야불교는 이 땅에 이미 있었던 도가와 습합(習合)된 흔적도 보이는데 만어사에서 수로왕이 행한 주술은 밀교적이면서 도교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수로왕이 신답평에 도읍을 정할 때와 나라를 뺏으려고 온 탈해와 신통(神通) 대결을 펼칠 때의 각종 환술들도 다분히 도가적 요소로 보인다.

 「가락국기」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이 땅은 협소하기가 여뀌잎과 같다. 그러나 수려하고 기이하여 가위 십육나한이 머무를 만한 곳이다. 더구나 일에서 삼을 이루고 삼에서 칠을 이루어 칠성이 거처하기에 적합하니" 여기서 도가의 풍수지리에 인용되는 구궁(九宮)의 방위에 1은 북쪽, 3은 동쪽, 7은 서쪽이다. 이러한 숫자는 현무인 북쪽과 좌청룡인 동쪽, 우백호인 서쪽의 지세를 풀이한 내용이다. 수로왕의 풍수에 대한 안목은 여러 곳에서 보이는데 가야불교 연기사찰에 가보면 모두가 명당에 위치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한편, 수로왕이 노년에 허왕후와 함께 입산수도한 내용이 담긴 <가락국태조릉숭선전비>에는 "왕이 되신 지 121년에 스스로 권태로움을 느끼시고 황제가 신선이 되었음을 흔연히 사모하여 왕위를 태자 거등에게 전하고 지품천의 방장산 속에 별궁을 지어서 태후와 함께 옮겨 가서 수련을 하였다"이 대목에서 수로왕 부부는 윗대 조상이라 여기는 `황제`가 신선이 된 것을 흠모하여 노년에 함께 지리산에 들어가 도를 닦았다고 하니 자연 속에서 수행하였던 도가적인 풍모를 느낄 수 있다.

◇민족신앙적 요소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3이라는 숫자와 깊은 관련이 있다. 고대 배달국 시대 천신 환인(桓因)이 아들 환웅(桓雄)에게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하는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었다. 그리고 천부인을 가진 환웅은 풍백, 우사, 운사라는 신하 셋과 무리 삼천 명을 데리고 신시(神市)에 도읍을 정해 나라를 열었다. 이렇듯 배달국 건국사화(史話)에서 3의 수는 일관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이때 등장하는 환웅이 나중에 웅족의 규수를 맞아 낳은 아들이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檀君)이다. 고래로 환인과 환웅 그리고 단군을 우리 민족의 뿌리가 되는 세분의 성인 즉 삼성(三聖)으로 숭상해 사당을 지어 모셨는데 공교롭게 사찰에도 독성(獨聖), 칠성(七星), 산신(山神)이라는 삼성을 모신 삼성각(三聖閣)이 있다. 이 삼성각은 기존에 전승되어 오던 토착 신앙의 삼성이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가 확장될 때 자연스럽게 불교식으로 해석한 삼성으로 습합 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밖에 가야불교의 연기사찰 가운데 부암, 모암, 자암과 신어산에 있는 서림사, 동림사, 영구암 그리고 수로왕이 명월산에 지었다는 신국사, 진국사, 흥국사는 3이라는 숫자를 즐겨 썼던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숫자 관념이 투영된 흔적으로 보인다.

 한편 <가락국사 장유화상 기적비>에 보면 질지왕 때 장유암을 창건하고 화상의 진영을 칠성각에 모신 내용이 나온다. "해동의 한 모퉁이 연화도량에 법당과 당간을 세우고 경을 설하며 게를 외우는 자는 다 화상의 후예이리라. 질지왕 대에 이르러 장유암을 창건하고 화상의 진영을 칠성각에 모셨는데" 이 내용은 해동의 끝 가야 지역에서 불교를 믿고 수행하는 자는 모두 장유화상의 후예라고 하고 있으니 해동불교의 초조(初祖)는 곧 장유화상이라는 말이다. 또한 장유암 창건 후 화상의 진영을 모셨다는 기록은 장유암이 장유화상으로 인해 지어진 사찰이 분명하다는 뜻이다. 칠성각에 화상의 진영을 모셨다는 기록은 불교와 칠성 신앙이 습합 된 결과로도 보인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북두칠성을 신성시했으며, 지금도 그 영향으로 생일을 의미하는 생신(生辰)이란 단어가 우리의 삶 속에 들어와 있다. 가야의 천문신앙은 몇 해 전 발견된 가야 고분 뚜껑돌에 새겨진 별자리들로도 알 수 있으며 우리의 상례(喪禮)에는 지금도 망자의 관바닥에 칠성을 그려 넣는 전통이 남아있다.

 또 가야불교의 유산인 은하사 법당 앞 계단 옆에 새겨진 `신어통천`(神魚洞天), 무척산 정상 부근에 있었던 `통천사`(通天寺), 부은사 삼성각 뒤 바위에 새겨진 `통천도량`(通天道場) 등은 하늘과 통한다는 의미를 가지며 우리 민족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천손(天孫) 사상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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