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5:18 (목)
면후와 심흑의 처세술 후흑학
면후와 심흑의 처세술 후흑학
  • 이광수
  • 승인 2022.03.13 22: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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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사람이 세상을 살다보면 마냥 선한 마음으로 살 수는 없다. 선한 배려나 베품이 오히려 화가 되어 낭패를 당하는 수가 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해 맹자(孟子)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고, 순자(荀子)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다. 전자는 인도(仁道)에 근거한 유가사상이고, 후자는 패도(覇道)에 근거한 법가사상이다. 이처럼 순자의 패도사상을 재발견해 탄생한 것이 <후흑학(厚黑學)>이다. 후흑(厚黑)은 면후(面厚)와 심흑(心黑)의 조어로 `낮 두꺼운 뻔뻔함`과 `마음이 검은 음흉함`을 뜻한다. <후흑학>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의미보다 깊은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이종오(李宗吾)가 쓴 <후흑학>은 춘추전국시대 이래 역대문헌 중 당나라 중엽 조유가 쓴 <장단경>과 명나라말기 이탁오가 쓴 <장서>, <분서>와 함께 중국 3대기서(奇書)에 속한다. 이들 기서는 모두 전래의 기본통치이념인 왕도(王道)대신 패도(覇道)의 관점에서 지난역사를 재단하고 그 역사 속의 인물을 재평가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유교를 국가통치의 기본이념으로 정한 이씨조선의 성리학으로 보면 사문난적(斯文亂賊)에 해당되는 셈이다. 따라서 그 당시 이런 기서들은 이단서(異端書)로 몰려 불태워지고, 저자들 역시 세간의 비난 때문에 은둔생활을 하거나 자진하기도 했다. (후흑학ㆍ신동주 역)이종오의 자는 종유(宗儒: 유가사상을 근본으로 삼음)로 본명을 세해(世楷: 후세의 모범)로 했다가 기인 이탁오(李卓吾)의 이름을 본 따서 이종오로 개명했다. 원래 그는 공자의 열렬한 신봉자였으나 경사서(經史書)에 대한 연구결과 공자를 비롯한 유가학설에 많은 결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공자를 조종으로 삼느니 차라리 스스로를 종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그는 중국 24사(二十四史)에 나오는 일체의 시비(是非)는 모두 뒤집히고 어지럽게 뒤섞인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후흑학>을 펴내 자신이 종주가 되었다. 그는 <후흑학>에서 예로부터 성공한 사람은 면후흑심(面厚黑心)에 지나지 않다고 단언했다. 요ㆍ순ㆍ우ㆍ탕ㆍ문왕ㆍ무왕ㆍ주공ㆍ공자처럼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에 대한 회의를 품고, 24사와 송ㆍ원ㆍ명ㆍ청대의 학설집은 역학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며 기존의 학설을 부정했다. 그는 <나의 성인에 대한 회의>를 통해 그때까지 유가에서 성인이라 칭하는 사람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이른바 성인이라고 떠받들며 존숭하는 사람 이후에 나타난 많은 현인학자들이 성인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로 한나라 무제 때 유가 6경만 드높여 요순임금부터 공자까지 8명만 선택해 성인으로 인정하고, 다른 제자백가인 맹자, 노자, 장자, 양자, 묵자는 일반사람들은 성인이라 불렀는데 이들을 제외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특히 공자는 황은(皇恩)을 입어 성인으로 추앙되었다고 비판했다.

 자신이 교주라 자칭한 이종오의 <후흑학>은 어떤 학설인가. 그는 <후흑학론>에서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와 유비, 손권, 제갈량, 한신, 사마의 형제, 항우, 장량, 범증 등, 하, 은, 주 삼대에서 지금까지의 왕후장상과 호걸, 성현은 <후흑학>을 통해서 성공한 역사적 인물로 평가했다. 그는 그 당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문헌을 통해 그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이들에 대한 사후의 역사적 평가가 명확한 근거에 의하지 않고 유가적 관점에서 왜곡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후흑학>을 통해 바르게 평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옛날에 영웅호걸이 된 자들의 이중성을 낱낱이 까발리며 그들의 속마음은 뻔뻔하고 음흉한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가 예로 든 사례일부를 보자. 조조의 특기는 속마음이 온통 시큼해서 여백사, 공융, 양수, 동승, 복완, 황후, 황자까지 죽이며 `내가 남에게 버림을 받느니 차라리 내가 먼저 버리리라`고 했다. 유비는 조조를 비롯해 여포, 유표, 손권, 원소 등에게 빌붙으며 이쪽저쪽을 오간 사람으로서 `그는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봉착하면 사람들을 붙잡고 한바탕 대성통곡해 즉시 성공으로 뒤바꿔 놓은 비굴한 이중인격자`라고 했다.

 <후흑학>의 요체는 대략 이렇다. 제1단계로 후여성장, 흑여매탄(黑如煤炭)하고, 2단계로 후이경(厚而硬), 흑이량(黑而亮)하며, 3단계로 후이무형(厚而無形), 흑이무색(黑而無色)하는 것이다. 그런데 후세사람들은 이런 위인들을 후흑(厚黑)과는 정반대로 불후불흑(不厚不黑)한 인물로 존숭하는데 이런 경지까지 오르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후흑학>은 단지 기서(奇書)로만 폄하할 수 없을 만큼 우리가 처한 현실세계는 냉엄하기 짝이 없다. 때를 기다리며 철저히 자기 몸을 낮추고 온갖 비굴함과 모욕을 끝까지 참으면서 후흑하는 자가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되는 세상이다. 도덕군자의 성공사례는 위인전에서만 존재할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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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2-03-15 08:43:29
후발사파의 주장들이 그럴듯하게 보여도, 이단이나 반골로 치부될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인류 역사가 그렇습니다. 수천년 세계종교인 儒敎(동아시아)나, Catholic(서유럽)은 과거,현재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변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