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17:26 (목)
훔친 죄가 하나라면 잃은 죄는 열이다
훔친 죄가 하나라면 잃은 죄는 열이다
  • 허성원
  • 승인 2022.03.08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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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의 여시아해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기술탈취에 관한 뉴스를 종종 접하게 된다. 최근 한 대기업이 하청 중소기업으로부터 기술 자료를 받아 자신의 특허로 등록받은 일로 거액의 과징금을 물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처럼 기술탈취는 주로 우월적 지위의 큰 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부정하게 입수하여 유용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큰 기업은 납품 거래 등을 위해 승인도면, 매뉴얼, 설비 목록 등의 기술 자료를 요구한다. 기술이란 것은 일단 전해지고 나면 정보의 성질상 결코 탄력적으로 원상복귀될 수 없다. 매사가 뜻대로 순조로우면 다행이지만, 계약 등은 성사되지 않았는데, 제공된 기술을 상대가 임의로 사용하거나 다른 기업에 유출하여 유용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피해 기업은 계약 실패의 실망에 배신감까지 얹어 고통을 겪게 된다.

 "옛날 진(秦)나라 군주가 딸을 진(晉)나라 공자에게 시집보낼 때 호사스런 예물과 함께 화려하게 차려 입힌 시녀 70명을 딸려 보냈다. 진나라에 이르자 진나라 공자는 그 시녀들만 아끼고 공녀는 천대하였다. 공녀가 아니라 시녀들만 시집 잘 보낸 꼴이 된 것이다. 초나라 사람이 정나라에 가서 구슬을 팔고자 하였다. 목란(木蘭)으로 만든 상자에 계초(桂椒)의 향기를 더하여 주옥과 붉은 구슬로 장식하고 비취를 새겼다. 그런데 정나라 사람은 그 상자만 샀을 뿐 구슬은 되돌려 주었다. 결국 구슬이 아니라 상자만 잘 판 꼴이 된 것이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매독환주(상자만 사고 구슬은 돌려주다)`라는 고사이다. 공녀 혹은 구슬이 돋보이도록 그들에 부수된 시녀와 상자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그런데 상대가 겉치레의 화려함에 현혹되어, 정작 실체인 공녀와 구슬의 의미나 가치를 상대에게 제대로 인식하게 하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원한 바 목적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서 공들인 시녀와 상자도 헛되어 빼앗겨버렸다.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제품을 잘 팔기 위한 것이다. 좋은 기술은 더 강한 시장 경쟁력과 더 큰 부가가치를 보장한다. 기술은 내 제품의 매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니, 제품을 빛나게 장식하는 보조적 요소이다. 매독환주의 고사에 비유하면, 제품은 공녀나 구슬에 해당하고, 기술은 그 제품을 부각시키기 위한 시녀나 상자와 같은 것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기술탈취는 매독환주 고사와 닮았다. 팔아야 할 제품은 제대로 팔지 못하고 그를 부각시키기 위한 기술만 빼앗기는 상황이다.

 기술탈취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적시에 특허를 취득하는 것이다. 특허에 적합하지 않은 기술이라도 적절한 비밀관리 조치를 취해두면 영업비밀로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영업비밀 보호에서는 `비밀관리`가 생명이다. 대부분의 영업비밀 분쟁은 `비밀관리`의 적정성 여부로 희비가 엇갈린다. `비밀관리`는 그야말로 업무상 관리 노력이다. 적절한 주의와 관심만 기울인다면, 필요할 때 제도와 기관의 협조를 받아 용이하게 대비할 수 있다. 그래서 기술탈취 예방의 명확한 키워드는 유비무환이다.

 기술탈취의 본질은 `배신`에 있다. 자료를 받은 쪽이 그것을 제공한 쪽의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렸기에 일어나는 일이 기술탈취이다. 귀중한 기술 자료가 오고 갈 때는 나름 거래관계의 신뢰가 이미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기술이란 원래 휘발성이 강한 것이다. 아무리 신비롭고 비밀스런 기술이라 하더라도 일단 보고 이해해버리고 나면, 그전까지 품었던 신비감이나 존중심은 사라지고 그저 나도 아는 보통 기술이 되고 만다. 바로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신뢰가 없이는 기술정보를 공유하기 어렵고, 신뢰가 있기에 배신 즉 기술탈취가 발생하는 것이다. 기술탈취의 피해로 인한 진정한 고통은, 그것이 적으로부터 당한 것이 아니라 신뢰관계 즉 믿었던 비즈니스 파트너의 배신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이다. `가까운 친구가 가까운 적이 될 수 있다.`는 속담을 기억하여야 한다.

 여하튼 모든 귀중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지킬 일차적인 책임은 그 주인에게 있다. 비밀은 언제나 자신을 통해 유출되는 법이니, 가장 중요한 경계 대상은 자기 자신 혹은 우리 편이다. 지혜로운 자만이 스스로로부터도 비밀을 지킬 수 있고, 어리석은 자들이 비밀을 잃고 나서 남들을 원망한다. 그래서 이런 말들이 있다. `두 종류의 비밀이 있다. 하나는 적으로부터 지킨 비밀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으로부터 지킨 비밀이다.` `훔친 죄가 하나라면 잃은 죄는 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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