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0:54 (토)
가야불교의 성격② 소승과 밀교
가야불교의 성격② 소승과 밀교
  • 도명 스님
  • 승인 2022.03.07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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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스님 산사정담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불교를 분류하는 대표적인 방식이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로 나누는 것이다. 이는 불교 수행의 성격과 궁극적 목표에 따라 나누는 방식이다. 흔히 대승(大乘)불교는 많은 이들을 해탈로 이끄는 큰 수레이고 소승(小乘)불교는 개인적 해탈을 중시하는 작은 수레로 비유한다.

 또한 지역을 기준하면 티벳과 한, 중, 일이 대승 불교권에 속하고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는 소승불교권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소승불교권이라는 동남아의 불교국가들에 가보면 소승불교라는 용어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대승불교가 우월하다고 자부하는 이들이 이론과 출가 승려 중심의 경향인 `소승불교`를 상대적으로 열등한 개념으로 인식하고 용어를 규정했음을 알 수 있다.

 가야불교에는 대승뿐 아니라 소승불교의 요소도 보이는데, 이 땅에 불교를 처음 전한 `해동 초조(海東 初祖)` 장유화상의 행적이 적힌 <가락국사 장유화상기적비>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화상은 신부의 친정 사람으로서 부귀 보기를 뜬구름 같이 여기더니 드디어 진세(塵世)를 초월하여 불모산에 들어가 길이 노닐며 돌아오지 않으니 세칭 `장유화상`이라 함은 이 때문이다" 여기서 장유화상은 세속을 초월하여 살림에 들어가 은둔 수행을 한 것으로 묘사된다. 칠불사 연기설화에도 장유화상이 일곱 명의 조카를 데리고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 와서 함께 수행하며 지도한 스승으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화상이 수행했다고 전하는 은하사, 장유사, 흥부암 등이 산속의 넓지 않은 터에 자리 잡은 점을 감안하면 최초에는 자그마한 토굴 수행터일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장유화상과 7왕자의 은둔 수행은 소승불교의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수행 방식이다.

 한편, 신라시대 당나라에 유학하여 국제적인 지식인으로 인정받았던 고운 최치원이 지은 `봉암사 지증대사탑비`(보물 138호)에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우리나라의 불교 전래 기록과는 다른 주목할만한 내용이 나오고 있다. `지증대사비문`에는 대승과 소승이 전래된 시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교(불교)가 일어나는데 비파사가 먼저 이르렀으니 곧 사군으로 사체의 바퀴가 달렸고 마하연이 뒤에 이르니 한 나라에 일승의 거울이 빛났다" 보통 비파사는 소승(小乘)으로 마하연은 대승(大乘)으로 번역하는데 위의 기록은 비파사인 소승이 먼저 들어온 후 마하연인 대승이 나중에 왔다고 말하고 있다. 일연스님의 인식과 마찬가지로 최치원도 대승보다 소승이 먼저 전해졌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 불교는 종교적 법통(法統)을 매우 중요시하고 소승이란 말만 나와도 화들짝 놀라며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나 종교적 법통과 역사적 사실을 따로 분리해서 봐야지 연결하여 종교적 도그마에 빠지는 우를 범해선 안 될 것이다. 불교에서 진리를 깨달은 스승이 제자에게 진리를 전하는 과정을 법통이라 하는데, 진리의 전승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진리를 전하는 법통과 불교의 역사는 별개로 보야야 한다. 법통은 법통이고 역사는 역사인 것이다.

◇밀교적 요소

 우리 불교의 요소 중 부처의 깨우친 진리를 은밀하게 표출하는 밀교(密敎)가 있다. 밀교는 현생의 성불(成佛) 뿐 아니라 개인과 국가의 재난을 물리치고 안녕을 기원하는 수행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에 민중이 위기 상황에서 불교의 힘을 빌리고자 했다는 기록이 등장하는데 `삼국유사`의 수로왕 대목에도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삼국유사 권2 탑상편 `만어사 어산불영조`에는 수로왕이 독룡과 나찰로 인해 농사가 되지 않을 때 그들을 굴복시키려고 주술(呪術)을 사용하였다는 구절이 나온다. "오곡이 되지 않았다. 왕이 주술로 이것을 금하려 하였으나 능히 금하지 못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를 청하여 설법한 후에 나찰녀가 오계를 받았는데" 이 기사는 독룡과 나찰녀(여자 악귀)의 영향으로 농사에 피해를 입자 수로왕이 주술을 행하여 그들을 굴복시키려 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안 되어 부처께 청하여 해결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수로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기도 했지만 제정일치(祭政一致)의 고대 사회에서 뛰어난 영적 능력을 지닌 제사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나찰녀들이 오계를 받았다고도 나오는데 이는 우리나라 불교 최초의 수계에 대한 기록이다. 이를 통해 가야불교에는 바른 삶의 규범을 제시하는 `계율불교적 요소`도 녹아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삼국유사` `가락국기`에서 수로왕과 석탈해가 환술(幻術)을 펼치는 신통 대결도 다분히 밀교적 요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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