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02:40 (수)
하면 된다 ③
하면 된다 ③
  • 박정기
  • 승인 2022.03.07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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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얘기가 나온 김에 내가 아는 역대 우리 선수 중, 타고난 신체조건이 뛰어난 사람은 손기정(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패자(覇者)), 최윤칠(1950년, 보스턴 마라톤 3위), 그리고 황영조(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패자)이다.

 최윤칠은 1948년 런던 올림픽 마라톤에서 20㎞ 지점부터 최선두로 나서서 다른 선수들을 멀리 떨쳐버리고 골인 지점을 향해 달리다가 불과 4㎞를 남겨 두고 기권하였다. 당시 올림픽 관계자에 의하면 최윤칠의 우승이 확실한 것처럼 장내 방송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권 이유가 어처구니없다. 탈수증에 의한 근육 마비가 원인이었다. 탈수증의 원인은 물을 안 마셨기 때문인데, 물을 안 마신 이유가 더 어처구니없다. 당시 코치가 물을 못 먹게 했기 때문이다. 마라톤 풀 코스 (4만 2195㎞)를 물 없이 뛰는 게 당시 우리 훈련법이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수는 3리터의 땀을 흘린다는데… 재수 없으면 탈수증으로 죽기도 한다. 지금은 매 5㎞마다 급수대를 설치해 선수들에게 물을 공급하고 있다. 50년 가까이 선수들을 지켜보면서 절실히 느낀 게 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실력 차 때문이다. 물론 실력이 큰 놈이 이긴다. 그런데 아무리 신체조건이 뛰어나도, 아무리 담금질을 잘해도, 운 좋은 놈을 못 당한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나는 다음 공식을 믿고 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실력≠체질+훈련>, <실력=체질+훈련+운 >

 세코 토시히토란 일본 마라토 선수가 있었다. 1956년생, 2시간 8분 27초가 자기 최고기록, 70년대 말부터 80년대 말까지 10년간 일본의 모든 마라톤대회는 물론 웬만한 세계 중요 마라톤대회란 대회는 모두 우승을 하여 가히 세계 1인자란 평가를 받던 선수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육상계는 오래전부터 흥분상태였다.

 그 사람들에게는 간절한 숙원이 있었다. 다름 아니 남자 마라톤의 금메달 획득이다. 왜냐하면, 요즘 우리 여자 골프와 같이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일본 마라톤은 `세계 Best 10`에 일본 선수가 서너 명은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따는 게 숙원사업의 하나가 되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는 세코가 영글기 전이라 출전을 못했다. 다른 선수가 출전, 20위와 21위에 그쳤다. 그러나 4년 동안 세코의 실력은 정상에 도달했다. 기다리던 대망의 1980년, 모스크바에서는 세코가 숙원을 이루어줄 것으로 국민적 기대를 모았다. 사실 세코가 이때 출전만 했으면 금메달은 틀림없는 것이었는데, 이게 웬 조화인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응징한다고 자유 진영에서 올림픽 참가를 보이콧해버렸다. 일본도 자유 진영과 보조를 같이할 수밖에 없었으니, 금메달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일본의 불운이요, 세코의 불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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