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14:05 (화)
처세의 미학 `욱리자`
처세의 미학 `욱리자`
  • 이광수
  • 승인 2022.03.06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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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했던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 지난지도 한 달이 지났지만 꽃샘추위의 위세가 따뜻한 봄기운을 무색하게 한다. 3월의 봄바람 따라 화려한 봄꽃의 향연이 펼쳐질 날도 멀지 않았다. 오미크론 공세로 방콕 신세가 되어 두문불출 책과 씨름하다 보니 바깥세상 소식은 TV로만 보고 듣는다. 토요일 휴일을 맞아 시내 서점에 들러 선 주문한 중국고전 <욱리자(郁離子)>, <귀곡자(鬼谷子)>, <후흑학(厚黑學)> 세 권을 찾았다. 한주일 동안 읽을거리가 생겼으니 밥보다 더 반갑다. 아들 셋이 매월 보내주는 용돈은 모두 책 사는데 쓴다. 미안한 생각도 들지만 아파서 병원 신세 지는 것보다 나은 것 같아 염치불구하고 받는다.

 중국 최고의 고전 중 하나인 <욱리자>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로 나라를 세우는데 크게 기여한 개국공신 유백온(劉伯溫, 유기)이 지었다. 그는 주원장 휘하의 인물 중 가장 학문이 깊은 신하였다. 명나라 초기 개국공신에 대한 토사구팽(兎死狗烹) 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한족 출신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지방관의 한직으로 전전하다 49세에 고향으로 낙향해 은거하면서 <욱리자>를 썼다. 그의 사후 130년이 지나 개국공신의 신격화에 힘입어 명나라 정덕제 때 조정대신 최고의 지위인 태사(太師)로 추존되었다. 21세기 현대까지 중국인들은 제갈량과 함께 유백온을 역대 최고의 지낭(智囊, 지혜가 풍부한 사람)으로 꼽고 있다. 천하를 셋으로 나눈 사람은 제갈량이고, 강산을 통일한 사람은 유백온이라고 말할 정도이니 그의 인물됨을 짐작할 수 있다. 제갈량이 뛰어난 책략으로 한나라를 구하는데 기여했다면, 유백온은 탁월한 방략(方略)으로 백성을 도탄에서 구한 사람이다. 이는 유백온의 처세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말해준다.

 <욱리자>는 중국문학사의 관점에서 보면 장자처럼 우화(寓話)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욱리자>에 나오는 우화에는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현명한 처세술의 규범이 될 만한 주옥같은 경구와 격언으로 가득하다. 그가 지은 우화 속에는 진실과 거짓, 탐욕과 파멸, 허세와 기만, 교만과 비굴, 근면과 나태, 현실과 이상, 착취와 도탄, 술책과 의리 등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부닥치는 모든 문제들을 테마로 삼고 있다. <욱리자>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우화로 풍자하며 신랄하게 질책하고 있다. 모순과 비리로 얼룩진 난세의 지난 역사에 대한 통렬한 비판정신이 살아 숨쉰다. 온갖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강인한 의지와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교훈과, 한 수앞을 읽는 처세술로 먼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의 예지, 위기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하는 임기응변의 중요성까지 일깨워 주고 있다.

 지금 세계는 미ㆍ중 양대 패권세력의 경쟁 속에서 열세에 밀린 러시아의 반동으로 3차 세계대전의 전운마저 감돈다. 나토동맹세력을 확장하려는 EU의 동진을 저지하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신냉전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로 패권 위상이 추락한 러시아는 강력한 독재체제를 구축해 미ㆍ중 양대 패권세력에 도전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 된다. 이처럼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는 우리나라의 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중러일의 틈새에서 샌드위치 상황에 처한 한국은 주변 강대국의 패권 다툼에서 힘의 균형이 깨지면 외교적으로 힘든 국면에 봉착할 수 있다. <욱리자>에는 국가지도자는 빠른 판단과 과감한 결단으로 미세한 조짐을 재빨리 감지해 어떻게 변신해야 국가안보를 지킬 수 있는가를 적시하고 있다. 벼랑 끝 전략이든, 줄타기 전략이든, 국가의 명운이 걸린 안보문제를 현명하게 대처하는 지도자의 리더십 발휘가 어느 때보다 긴요한 시점이다.

 천하에는 뜻밖의 행운과 복이 있지만 뜻밖의 화도 있듯이 이로운 면만 보고 해로운 면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의 편저자(신동준)가 <욱리자>181장 중 한 수 앞을 읽는 처세술인 우화의 절반정도를 추려서 재편한 내용을 보면 그 해답이 다 들어있다. 변화무상한 인심을 논한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파악하는 법`, 패망의 조짐을 언급한 `흥망의 조짐을 미리 읽는 법`, 처세의 방략을 논한 `상황의 흐름을 앞서 지배하는 법`, 용인술의 이치를 언급한 `관계의 우위를 선점하는 법`, 치국평천하의 도리를 논한 `임기응변으로 판을 미리 주도하는 법`등이다.

 소식영허(消息盈虛)의 천리(天理)에 순응해 허심무욕(虛心無慾)하고 안빈낙도(安貧樂道)하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가 별유천지(別有天地)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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