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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장려했던 김해부사
학문을 장려했던 김해부사
  • 경남매일
  • 승인 2022.03.0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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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부사 이야기
최학삼 김해대교수 사회복지상담과
최학삼 김해대교수 사회복지상담과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은 서당, 서원, 향교, 성균관 등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지방 유학의 최고 교육기관은 향교였다. 김해에도 향교, 양사재, 취정재 등의 교육기관이 있었다. 이 교육기관을 건립 및 관리하여 학문의 장을 마련해 준 김해부사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교육기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관리하여 학문을 적극 장려한 김해부사도 있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이행익 부사(재임 기간: 1686년 12월~1688년 11월) 김해향교는 태종 8년 고짐산 아래 고정에 창건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전소하였다. 숙종 14년 향사 김후수의 발의로 이행익 부사가 대성전과 동서무를 새로 지었다.

 ② 한익세 부사(재임 기간: 1689년 5월~1691년 7월) 숙종 15년 4월 한익세 부사가 문묘를 이안하고 동서대도 지었다.

 ③ 이하정 부사(재임 기간: 1691년 7월~1693년 7월) 숙종 19년 이하정 부사가 명륜당과 남루를 지었다. 영조 45년 또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되었기 때문에 영조 46년 송악산 아래 현 위치(대성동)로 이건하였다.

 ④ 심능필 부사(재임 기간: 1800년~1801년 전후) 정조 24년 옛 함허정 터에 심능필 부사가 양사재를 처음 건립하여 이곳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배우는 곳으로 삼았다.

 ⑤ 이진복 부사(재임 기간: 순조 초기 순조 초) 이진복 부사가 양사재에 논 17두지를 기진하여 흥학을 꾀하였다.

 ⑥ 유태좌 부사(재임 기간: 1821년 전후 순조 211년) 유태좌 부사가 양사재를 북문 밖의 향교아래에 이전하였다.

 ⑦ 권 복 부사(재임 기간: 1829년~1831년) 권 복 부사는 인재 양성과 학문 장려를 위해 향교에서 공부하는 유생에게 10일마다 시문 시험인 순제를 백여 회나 시행하였다. 또한, 문반뿐만 아니라 무반에 대한 독려에도 힘을 기울여 학습 성적에 따라 상을 주고 또 공여당에서 독서하고 제술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관내의 인력을 배치하여 이를 보조할 수 있게 함으로써 문무 양 방면에서 공히 인재를 양성하고자 노력하였다.

 ⑧ 정현석 부사(재임 기간: 1870년 6월~1873년 12월) 고종 7년 정현석 부사가 양사재를 다시 중건하였다. 정현석 부사는 재임 중 향교도 중수하였다.

 한편, 양사재는 일제강점기 때인 1942년에 취정재로 개칭하여 전 김해부사 성재 허전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 정현석 감해부사

 정현석 부사는 역대 김해부사 중에서 고려 말의 박 위 부사와 더불어 가장 역사적 업적이 많은 부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서에서는 가장 많은 양의 지면에 할애해서 검토해 보고자 한다.

 정현석 부사는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었다. 본관은 초계, 자는 보여, 호는 박원으로 고종 때 후릉참봉을 시작으로 조정 내에서도 많은 부서에서 일했고, 지방 10개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는 동안 업적이 무수히 많아 그가 일했던 거의 모든 고을에 선정비가 세워졌다.

 음성현감, 함경도 고원군수, 삼가현감을 지냈고, 진주목사 재임 시에는 의기사를 중건하였으며, 진주목사 재임 시부터 쓰기 시작한「교방가요」를 김해부사 재임 중에 완성하였다. 특히 김해부사 재임 기간에 많은 업적을 남겼고, 동래부사, 경주부윤, 울산부사도 지냈다. 함경도 덕원부사 겸 원산감리 재임 시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학교인 원산학사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동지돈녕부사, 첨지중추부사, 동지돈녕부사, 공조참판, 한성부좌윤, 형조참판, 호조참판, 황해도관찰사, 황해도병마수군절도사 등을 지냈다.

 김해부사 재임 시절에 봉황대 구축과 명명, 양사재 중건, 분산성 재축성, 흥부암 중창, 현충사 재건, 가락루 중수, 연자루 중수, 사충단 건립, 사충단비각기 기록, 금관충렬단 절목 제정, 송군순절암기 기록, 「교방가요」 완성, 덕원부사 겸 원산감리 재임 시절 원산학사 설립 등이 대표적인 업적이다.

 정현석 부사의 수많은 업적 중에 봉황대 구축과 명명이 있다. 정현석 김해부사가 봉황대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에 이곳에 올라보니 구릉의 생김새가 봉황이 날개를 편 모양과 같다고 하여 봉황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곳 봉황대는 회현리 패총과 통합되어 김해 봉황동 유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작은 구릉이기는 하지만 곳곳에 금관가야의 전설이 녹아 있고 복원된 시설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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