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된다 ②
하면 된다 ②
  • 박정기
  • 승인 2022.02.21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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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나는 국가대표 코치 계획을 바로 취소하고, 한전(韓電) 선수단 전담 코치로 모시기로 하였다. 이오키 선생이나 다카하시 선생에겐 미안하게 됐다. 처음 약속과는 달라져서. 일본에 갔다. 다른 일도 겸해서 두 분께 정중히 사과했다. "박 선생, 나는 당신 보고 도와준 것. 당신이 편한 게 내가 편한 거요." 아오키의 말이다. 나는 귀국 즉시 제주도에 한전 훈련 캠프를 설치했다. 제주 화력발전소 아파트 두 채를 잡아 선수들을 그리로 수용했다. 다카하시 선생이 매번 비자를 안 받아도 되는 제주도가 편하기 때문이다.

 선생은 한 달에 두어 번 제주에 머물면서 선수들을 지도했다. 그때 다카하시 선생의 주목을 받은 선수가 지금 한전 및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있는 김재룡 씨. 선생은 김 선수를 보고 대뜸 내게 `저 선수는 2시간 10분 이내 선수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땐 2시간 15분대 안팎의 기록인데도….

 김재룡은 훗날 황영조와 함께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해 10위로 골인한다. 다카하시 예언대로 그는 세계적 선수로 성장했다. 올림픽 당일, 황영조는 기량도 뛰어났지만 운도 좋았다. 김재룡도 운만 따라줬으면 메달의 주인이 될 수도 있었다.

 다카하시 선생의 두 마리를 잡는 기술은 바로 이거다. 먼저 타고 난 사람을 찾아야 하니까, 일정 거리와 특정 시간을 정해 그 조건에 선수를 몰아넣는다. 가령 30㎞를 100분 이내에 몇 번 달리게 한다. 몇 번의 시도로 금방 판단이 선다. 안 되는 선수는 탈락시킨다. 이 평가 방법의 핵심은 `되느냐 안 되느냐?` 의 종합 실력의 평가이다. 즉 스피드와 지구력이 단번에 평가된다는 점이다. 100분 내 못 들어와도 떨어지고(스피드), 30㎞를 완주 못 해도 탈락이다(지구력).

 이렇게 기본이 되는 (스피드와 지구력) 선수를 먼저 고른 다음 담글질이다. 겁나는 담금질을 해야한다. 다카하시의 기법은 냉정하고 가혹했다. 정말 숨넘어가기 직전까지 사람을 민다. 인간의 한계점까지 몰아붙인다. 이 담금질을 못 견디면 가차없이 탈락시킨다. 경쟁의 무대는 가혹한 법. 이기려고 하는 짓인데, 안 되는 물건은 과감히 버려야지.

 몽땅 다 탈락하면? 그만둬야지. 운이 없는 거다. 노예로 살든가, 죽어 살든가, 이도 저도 싫으면 다른 길을 찾아야지. 어차피 세상은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선택은 각자의 몫. 다카하시 선생의 기법은 우리 장거리계(長距離界)에 전파됐다. 80년대 후반, 우리 육상계는 두 가지 행운을 얻는다.

 첫째가 코오롱의 이동찬 회장, 두 번째 정봉수 감독. 코오롱의 이동찬 회장이 아니었으면 마라톤 금메달은 없었을 것이다.

 그분은 우리 마라톤계를 위해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정봉수의 별명은 독사였다. 독사는 확실히 `괴물`이었다. 원래 장거리 선수 출신이 아니다. 옛날 그저 무명 선수로 좀 뛰다가 그만둔 사람이다. 그의 담금질이 얼마나 가열했는지 한 번은 선수들이 견디다, 견디다 못해 이런 해프닝도 있었다. 황영조가 90㎞ 달리기를 하다가 꼭 죽을 것 같았다. 참다, 참다 못해 자전거로 옆에서 독려하는 독사를 힐끔 보더니 뛰던 걸음을 멈추곤 독사를 보고 휙 돌아섰다.

 "야, X할, 정말 못해 먹겠다. 니가 뛰어봐라!" 황영조 같은 타고난 신체도 한계를 넘는 담금질이다. 독사 코치에 그 독사 선수다. 바르셀로나 금메달은 이런 가혹한 훈련을 통해 이루어 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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