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4:51 (금)
예언을 맹신하는 사람들
예언을 맹신하는 사람들
  • 이광수
  • 승인 2022.02.20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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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오는 3월 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본격적인 선거 유세전이 펼쳐지고 있다. 2강 1중 1약의 여론조사결과를 두고 2강의 균형추가 어디로 기우느냐가 관건이다. 2강이 1중1약과의 합종연형이냐 아님 각자도생이냐에 따라 당락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계산기를 두들기며 고심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권력 지분안배와 차기 권력담보가 협상의 쟁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선 결과에 따라 6월 1일 실시되는 지자체장과 기초의원선거에도 영향을 미쳐 지방정가의 정치지형변화가 예상된다.

 얼마 전 필자는 모 주역학자의 역서를 보다가 그가 재야 한 역인을 만나 전수받은 비서(秘書)로 역리에 달통했다는 글을 읽고 그가 말한 <송하비결(松下秘訣)>이라는 예언서를 구해 읽어 보았다. 2003년 초판 발행 후 2008년 개정 4판까지 발행된 오래된 책이었다. 이 예언서가 한때 유명세를 탄 것은 2004년까지 예언한 내용들이 상당히 적중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1년 9ㆍ11미국테러, 노무현 대통령 당선과 탄핵정국, 2004년 총선 결과, 북한 핵문제 등이었다. 우연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다들 비서에서 예언한 대로 일어난 사건이어서 믿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2004년 말부터 비서의 예언들이 빗나가자 이 예언서의 신빙성이 떨어졌다고 한다. 필자가 책을 읽어보니 천학비재해서인지 경천동지할만한 신통한 예언들은 없어보였다. 재야 역술인이 세옹(世翁)으로부터 전수받아 연구했다는 이 비서의 예언들은 <정감록>처럼 역사적 사건들을 견강부회해 추론한 궤변처럼 느껴졌다.

 우리나라는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경제자립을 하는 과정에서 비민주적 정치형태와 부패한 권력, 도덕적 해이에 빠진 기업들의 불법행위, 남북대치로 인한 내부 이념갈등과 남북 간 무력충돌 등을 겪었다. 이런 일들은 정세 분석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전문가라면 능히 예측 가능한 사건들이었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역술인들의 말에 귀기울이며 자문을 구하는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이 있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정치의 계절이 오면 전국적으로 신통하기로 소문난 역술인들의 산방엔 정치 지망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하니 아이러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시대상황이 혼란스러울 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도인이며 예언가임을 자처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상담을 받거나 자문을 구한다.

 서양의 경우 대표적인 예언가는 노스트라다무스이다. 그의 이름은 인구에 회자될 만큼 우리 일상 속의 대화에서 자주 언급되는 예언가의 대명사이다. 그의 사후 1568년 완간된 예언서 <백시선>은 1555년부터 3797년까지의 역사적 사건과 대규모 재난들(전쟁, 자연재해, 전염병 등등)을 예언하고 있다. 그에 대한 관심은 1980년대부터 고조돼 1999년 절정에 달하다가 다소 식었지만, 2001년 9ㆍ11 미국테러 적중 이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그의 예언서는 점성학의 비합리성, 역사적 사례입증부족, 임의적인 해석, 궤변의 문제 등에서 시간적으로 검정받지 못 했다고 비판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99년 일곱 번째 달 거대한 공포의 대왕이 하늘에서 내려오리라"는 종말 예언이 허구로 끝나 버렸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은나라 말부터 주나라 초에 발흥한 주역에 가탁한 수많은 도인과 역술인들이 도참설(圖讖說)에 근거한 예언들을 쏟아내 혹세무민했다. <주역내전>의 저자 왕부지는 이들이 공자가 정립한 <역전>을 방술로 둔갑시켜 주역의 철학적 의미를 훼절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한 종리권과 여암의 도설을 취한 <선천역>의 소강절, <주역참동괘>의 위백양, <태현>의 양웅, <잠허>의 사마광, 괘효사를 점사로 해석한 주자까지 싸잡아 역을 폄훼한 술사라고 혹평했다. 역리를 왜곡한 사문난적(斯文亂賊)에 비유한 것이다. 주역은 점을 처서 괘를 짓지만 예언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의 경우 이율곡 예언, <정감록> 예언, 남사고의 <격암유록> 예언 등도 <송하비결>의 아류로서 역사적 고증과 합리적 근거가 부족한 도참설에 불과하다. <송하비결>에는 1992년 임신년을 시작으로 갑신년, 병신년, 무신년을 거쳐 2043년 경신년에 <송하비결>의 말세론이 종식될 거라고 한다. 과연 이 예언이 맞아 떨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종말론 예언의 비근한 예는 2012년 12월 21일~12월 23일까지 지구는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마야력의 말세론이었다. 그때 한국에도 5000여 명의 종말론 추종자들이 전북 무주로 이주해 은거했지만 그들이 맹신한 종말론은 단지 마야력의 끝일 뿐 허구로 끝났다. 3월 9일 대통령선거 당선자는 민의의 엄중한 심판으로 결정될 것이다. 어설픈 사술로 당선을 예언하는 것은 천명(天命)을 거역하는 혹세무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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