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23:19 (토)
인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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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형칠
  • 승인 2022.02.17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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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칠 수필가
오형칠 수필가

인사에 관한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나는 어린 시절 약 30가구가 사는 동네에 살았다. 윗동네에 안경 쓰고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 한 분이 살았다. 아이들만 보면 `이놈들 ××까자` 하면서 나타나 무서워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할아버지를 보면 인사해봐라." 그후 골목에서 할아버지가 보이면 일부러 가서 인사했다. 2번 만나면 2번, 3번 만나면 3번 그랬다. 시간이 흘러갔다. 그 후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고 녀석 참 착하네." 그렇게 인사는 습관이 돼 중학교까지 계속되다가 머리가 커지자, 흐지부지됐다.

 오래전, 선배 P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너는 왜 사람을 보고 인사하지 않냐?" 그 말을 듣고 미안했다. 당연한 말이었지만, 당시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이 말 한마디가 이 인사 개념을 바꿔놓았다. 그 후 어디를 가든지 먼저 보면, 먼저 인사하게 됐다.

 그저께다. 초면인 청년이 왔다. "안녕하세요." 약국 문을 나서려는 그에게 어째서 들어오면서 먼저 큰 목소리로 인사했냐고 물어보았다. 자신이 대접받고 싶어서라고 했다. 오후 7시경, 한 청년이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약국에 왔다. 얼핏 보니, 00처럼 보였다. 물약 소화제를 달라고 했다. 약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000 아닙니까?", "맞는 거 같아요.", 엄마 K가 가끔 구매하는 약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녀 아들이 아닐까 해 청년을 다시 올려다보았으나, 아니었다. 키가 컸다. 요즘 마스크 때문에 얼굴을 못 알아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1시간 후에 K한테 전화가 왔다. "우리 아들 많이 컸죠?", "아, 그렇다면 아까 온 그 청년이 00이었나? 나는 몰랐어." 나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이 모자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어릴 적에 자기 엄마와 함께 자주 약국에 왔다. 자기 가게와 살림집이 약국과 가까운 탓이다. 어릴 적부터 명석해 과학고나 외국어고등학교에 가서 서울 명문 대학에 진학할 줄 알았다. "아이고, 우리 00" 이렇게 말하면서 번쩍 들어주기도 했다. 내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K는 `에이 그 녀석이`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인사, 인간관계에서 작은 일 같지만,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다음 날 K가 왔다. 먼저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에게 왜 인사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내가 자기를 아는 줄 알고 그랬단다. K는 나를 만만한 사이로 생각하고 있지만, 아들 00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그가 다섯 살 적에 큰 역할을 한 적이 있다. K가 나를 찾아왔다. "우리 헤어져야겠어요." 아이를 봐서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적극적으로 말렸다. 아이는 어릴 적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말과 행동이 어른스러웠다. K가 평소에 아들이 하는 말을 가끔 들려줬다. "그 녀석 정말 어른스럽다." 내가 그를 성숙한 사람으로 과대평가한 탓이다. 약국을 나서면서 K가 말했다. "아직 21살밖에 먹지 않았어요." 맞다. "00아, 너를 이해한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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