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된다 ①
하면 된다 ①
  • 박정기
  • 승인 2022.02.14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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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되게 하려면 먼저 마음을 사야
일본인 마라톤 대표 코치 영입 난관

`하면 된다.` 흔히 하는 말이다. 말은 쉽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안되는 것도 있다. "안되면 되게 하라." 우리 특전사의 모토이던가? 정말 일을 되게 하려면 처음부터 일이 되게 준비하고, 분위기를 만들고,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사야 한다. 무엇하지만 내 얘기를 하겠다. 필자가 대한육상경기연맹을 맡고 있을 때(1983~1996) 마라톤 재건을 위해 힘쓴 적이 있다.

 손기정 선생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후 남승룡, 서윤복, 함기용 등 한동안 마라톤 선배들이 세계 마라톤계를 휩쓸었다. 내가 회장을 맡은 1980년대에는 우리 선수들은 국제무대에 아예 출전조차 못했다. 마라톤 전통 한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우리 선수의 최고기록은 2시간 20분대, 세계 일류 선수들의 기록은 2시간 7분대, 무려 13분의 기록차. 13분을 거리로 환산하면 거리 차는 약 5㎞. 게임이 안된다는 얘기다. 부임하자마자 나는 마라톤 재건 10개년 계획을 세웠다. 과거 선배들이 세계를 제패했다면 우린들 못할 게 어디 있느냐는 생각에서였다. 더구나 일본 선수가 2시간 7분대라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으로 마라톤 재건 계획을 수립하자, 이론(異論)이 분분했다. `현대 마라톤은 스피드 마라톤의 시대다. 스피드 위주로 훈련해야 한다. 아니다! 마라톤은 역시 지구력이 좋아야 한다.` 나는 솔직히 알 수가 없었다. 스피드가 중요하단 말도 맞고, 지구력이 좋아야 한다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누구 말을 들어야 하나? 모를 때는 전문가 말을 듣는 게 중요하다. 일본 육상연맹 회장을 만났다. 아오키(靑木) 회장, 일본 체육회장을 겸하고 있는, 일본 체육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나보다 더 20년 존장(尊長)이다. 아오키를 만나면 나는 꼭 큰절을 했다. 내가 엎드려 절을 하면 그도 엎드려 답례한다. 우리와 같은 옛 예절을 일본은 아직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절을 하는 사람이나 절을 받는 사람의 마음이 숙연해지는 우리의 아름다운 예절이다. 우린 버린 지가 오래인데, 일본 상류 인사들은 여전히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큰절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 상대에 대한 호감이 생긴다. 그 사람이 마음에 든다. 그냥 좋다. 무어든 도와주고 싶다. 사람의 심리다. "아오키 선생, 마라톤 전문가 한 사람 추천해 주십시오." 한 달 후 다카하시(高橋)란 분을 소개해줬다. 60대의 노인, 인품이 훌륭한 분이다. 내 나이 51세 때다. 일본의 올림픽 마라톤 최초의 은메달리스트를 키운 코치. 또한 한국 마라톤이 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쥐게 한 은인이다.

 그의 이론은 이랬다. "스피드, 중요합니다. 지구력, 없으면 안 되죠. 둘 다 해야 해요. 그게 실력입니다." 그의 `실력론`이다. "실력이란 상대와 비교, 상대적 우위를 점하는 겁니다, 기록도 중요하지만 이기는 게 더 중요해요. 어차피 세상은 투쟁의 마당이니까 이기면 되는 겁니다, 이기는 게 실력입니다. 문제는 두 마리를 `어떻게 다 잡는가`입니다. 어렵지요. 그러나 됩니다. 여기 비법이 있습니다." 속주머니에서 A4 용지 두 배 정도의 종이를 꺼내 내 책상 위에 놓았다. 1년 365일 훈련 계획이 날짜별로 빼곡히 적혀 있다. 미안하지만 우리 전문가한테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훈련 계획이다.

 내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일본 선수의 2시간 7분이 거저 되는 게 아니었구나! 잠시 내 정신이 혼미해졌다. 다카하시 선생의 요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좋은 선수는 기량을 타고 난다. 기량을 타고 나도 다듬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그러니까 좋은 재목을 찾아서 두드리고 두드려야 한다. 믈건이 될 때까지. 이 계획이 바로 그 방법이다. 핵심은 좋은 놈을 어떻게 고르는가, 두들기는 방법은 무언가를 여기 기록했다.` 일주일 후 다시 만나기로 하고 선생을 보냈다. 나는 즉시 마라톤 국가대표 코치로 모시기로 맘먹고,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의외의 난관에 봉착한다. 일부 우리 전문가들이 반대한다. 놀랬다. 모처럼 선생님을 모셔 왔는데 퇴짜를 놓아? 화가 났다. 도대체 무엇이 불만인가. 여러분! 그들의 요지는 이거다. `우리가 그래도 마라톤은 종주국인데, 왜놈 선생이 말이 되느냐`이다. 알았다. 그만두자. 싸움도 상대를 봐가며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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