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9 12:30 (화)
설날 풍경
설날 풍경
  • 이은정
  • 승인 2022.02.13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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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수필가
이은정 수필가

오랜만에 가족들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힘들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설 명절 준비를 했다. 설날 사흘 전에 아들 내외가 왔다. 연말에 다녀가서 한 달 만에 보는데도 오래 만나지 못한 것처럼 반갑다. 여러 가지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은 후에 며느리가 "어머니! 설날 제사비랑 용돈 방금 보냈으니 확인해 보세요"했다. 폰뱅킹으로 확인하니 예상보다 숫자가 많아서 "며느님! 감사합니다"하니 며느리가 인사는 신랑한테 하라고 한다. 아들보다 며느리한테 인사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는 내 말에 한바탕 웃음꽃이 핀다.

 다음날 아침, 본격적인 설 준비에 가장 바쁜 날이다. 하지만 며느리는 오전 11시까지 일어나지 않는다. 벌써 오래된 습관이다. 시가에 와서도 태평스레 늦잠 자는 며느리가 신기해서 탓하지는 않는다. 아들은 새벽부터 일어나서 마당을 쓸고 집안 청소를 한다. 나는 나물을 볶고 산적을 만들고 여러 가지 하고 나면 서너 시간이 지나간다. 그제야 일어나는 며느리에게 한마디 던진다. "며느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하고 나면 이제 며느리는 죽었다. 마루에다 며느리가 해야 할 일거리를 주르르 늘어놓고 침대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다가 아들과 외출을 한다. 주문해 놓은 떡을 찾고 마트에서 빠진 재료랑 과일을 사고 느긋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그 사이 며느리의 작품이 완성됐다. 질서 정연하게 정돈된 여러 가지 전들이 날 보라고 쳐다본다. "참 잘했어요. 동그라미 다섯 개." 치켜세우는 건 돈도 안 들고 힘든 일도 아니라서 잘 써먹는 편이다.

 설날 아침, 잠꾸러기 며느리도 늦잠 못 자는 게 고소해지는 날이다. 엄중한 코로나 시대, 조카들도 손자들도 못 오고 시동생 내외 포함 모두 여덟 명이 모였다. 여덟 명 전원 코로나 백신 3차까지 완료한 착한 사람들이다. 제각기 준비해 온 선물을 교환하고 병풍을 펴고 제사상을 차린다. 제기에 음식을 멋지게 담아내는 상차림 전문은 큰동서, 보조는 며느리와 막내동서, 총괄 감독은 큰 시동생, 아들과 삼촌들은 보조, 이 노친네는 허리가 아파서 엉덩이 받침대를 깔고 조상님 드릴 뜨거운 고봉밥 여덟 그릇을 퍼 담는다. 어머님이 보셨다면 밥그릇을 더 높이라고 하실 것 같지만 요새는 조상님들도 시대를 따라 변했을 거라고 나름대로 핑계를 댄다. 큰동서는 무릎이 안 좋아서 절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나는 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거룩하게 차려진 차례 상을 보며 사진을 찍는다. 참석 못한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제사의식이 끝나고 음복하며 덕담을 나누는 시간이 행복했다. 마산 어시장에서 사 온 문어와 전복요리가 인기가 있었고 나도 수고했다며 스스로 위안하고 술 한 잔을 비웠다. 시끌벅적 아침 식사 후 깨끗하게 비워진 빈 그릇들이 고맙다. 설거지 도사 며느리는 연륜이 더해질수록 실력이 늘어나서 그릇들이 반짝반짝 윤기가 흐른다.

 점심식사 후에는 과일을 들면서 이야기판이 벌어진다. 올해 `칠 학년`으로 올라오는 시동생에게 같은 학년 축하한다고 힘차게 악수를 했다. 흰머리가 생기고 나이 들수록 아버님을 닮아가는 큰 시동생에게 "아버님 만수무강하세요"하고 농담을 던졌다. 부자 되시라는 덕담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돈보다 건강이 제일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시라고 인사를 한다. 가족들이 모여 웃음꽃을 피우는 시간, 이 시간의 행복이 또 한 해를 살아가는데 조그만 힘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해거름에 시동생들이 떠나고 느지막이 아들네도 떠나고 나니 안도감과 피로함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임인년 새해, 또 한 해를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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