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2:35 (금)
돼지우리 속의 원숭이
돼지우리 속의 원숭이
  • 허성원
  • 승인 2022.02.08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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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우물 속 개구리가 바다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것은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요, 여름살이 벌레가 얼음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것은 시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요, 비뚤어진 선비가 도(道)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것은 배운 것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물이라는 공간에 갇힌 개구리와 여름이라는 시간에 갇힌 여름살이 벌레는 그 공간이나 시간을 벗어난 바깥세상을 알 수 없다. 사람도 자신이 배운 것에 갇혀, 그를 가르치고 키운 인간이나 사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그가 속한 세 가지의 `사이(間)`, 즉 시간(時間), 공간(空間) 및 인간(人間)에 의해 그 한계가 규정된다. 시간, 공간 및 인간은 곧 천(天), 지(地) 및 인(人)에 해당하니, 만물은 우주의 근원인 삼재(三才)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오래전 한 중공업의 설계실에서 오래 근무하다 명예퇴직한 사람을 채용한 적이 있다. 일류 대학 출신의 엔지니어로서 장기간 기술 분야에 종사했으니 우리 업무에 쉬이 적응하리라 여겼다. 그런데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업무 적응을 위해 이것저것을 가르쳐도 도통 배워 내지를 못한다. 대화를 해보니 회사 업무 이외의 것들을 굳이 배우지 않더라도 직장 생활에 불편이 없어, 그가 속한 조직을 넘어선 바깥의 일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설마 그 정도일까라고 생각하겠지만 정치인 등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개성이 강한 닫힌 사회, 힘 있는 조직 출신들 중에 그런 예가 많다.

 `원숭이도 우리에 가둬두면 돼지와 같아진다.` 초식동물인 원숭이는 종일 부지런히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다니며 먹어야 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포식자에 대한 경계를 잠시도 게을리 할 수 없다. 그렇게 동작이 민첩하고 영리한 원숭이를 안전한 우리에 가둬두고 늘 먹이를 넉넉히 주면, 그 특유의 날렵함은 쓸모가 없어져 이내 퇴화하여 느리고 비대한 돼지처럼 변하고 만다. 안전과 먹이가 보장된 돼지는 먹고 자는 것 외에는 달리 욕구가 없다. 돼지는 머리를 처박고 먹을거리에만 집착하여 오직 죽을 때 한 번 하늘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세상이 얼마나 높고 넓은지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관심거리를 제외한 모든 것에는 지극히 무지하다.

 원숭이 같이 유능한 사람이 돼지처럼 변하기 쉬운 조직이 있다. 그곳은 힘이 센 곳으로, 주로 갑이라 불리거나 권력을 주무르는 곳이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을 뽑아 강한 힘을 부여하고 직위를 보장한다. 힘과 안전이라는 든든한 우리가 닫힌 사회를 만들어 그들을 가둔다. 그 속에서는 천적이 없으니 변화를 요구 당하거나 필요도 느끼지 못해 돼지와 같은 편향된 인격체가 되어간다. 사람은 그 본성이 원래 비슷하지만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의 습관에 의해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子曰 性相近也 習相遠也 _ 論語). 그 중에서도 일부 깬 사람만이 돼지로 변해가기를 거부하고 저항한다. 하지만 그런 저항에는 독한 변화의 의지가 필요하다.

 "사람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렇게 세 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건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일본의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의 말이다. 어제와 같은 곳에서, 같은 방식으로, 같은 사람들과 살면서 달라진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 공간, 시간, 인간을 바꾸어야 한다. 공간은 살고 있는 생활환경이고, 시간은 살아가는 행동 방식이며, 인간은 만나고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이들 중 적어도 하나를 확실히 바꾸었을 때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변화는 의심과 부정에서 출발한다. 주어진 환경이나 현실을 철저히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데카르트는 "나는 의심한다. 고로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Dubito ergo cogito, cogito ergo sum)."고 하였다. 자신이 속한 시공간과 조직을 의심하고 깊이 생각하는 자만이 자신을 가둔 닫힌 사회를 벗어나 변화할 수 있다. 변화는 견고한 성처럼 닫힌 사회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길을 내는 일이다. 그렇게 우리 속의 돼지로 변하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증명한다. 돌궐의 장수 톤유쿠크는 이렇게 말했다.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내는 자 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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