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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에 의한 정당개혁을 기다린다
2030에 의한 정당개혁을 기다린다
  • 김은일
  • 승인 2022.02.0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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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일 변호사
김은일 변호사

혹자는 국가를 필요악이라고 하기도 한다. 필자도 어느 정도는 이 말에 동의를 하지만, 다행히도 현대 민주주의 제도는 국가가 악의 존재가 되지 않게 할 방법이 있다. 국가가 악이 되는 이유는 결국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에서 비롯되는데, 더 나은 사람들이 국가 운영에 참여하게 되면 국가는 최대한 선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 국가 운영에 참여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답은 이미 수천 년 전 그리스에 살았던 어떤 남자도 알았을 정도로 어렵지 않은 것인데, 플라톤은 "정치에 무관심하면 가장 저급한 인간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로 그 방법을 알려 준 바 있다. 저급한 인간의 지배를 허용하게 되면 국가는 필요악이 아니라 악 그 자체인 지경까지 치닫게 되고 국민뿐 아니라 그 후손의 삶까지 파괴하게 됨을, 우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먼 나라부터 가까운 나라까지 그 예를 수도 없이 보아 왔다.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와 관련해 선거에서 처음 등장하는 단어가 많다. 초유의 비호감 대선이라느니 차악이라도 뽑아야지 어떡하겠나 하는 말들이다. 이런 선거가 한 번만 더 반복되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짚어보면 선거가 이렇게 추락한 것은 단지 후보나 정당만의 탓은 아니다. 우리 국민들에게 만연한 정치적 냉소주의와 정치혐오증이 더 나은 인재들의 정치권 진입을 막아온 것이 큰 이유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정치에 대한 무기대와 냉소주의가 정치 무관심을 유발하고, 인재가 유입되지 않으니 정치는 더 못난 놈들의 판이되고, 못난 놈들은 더 나은 사람을 기를 쓰고 배척하게 마련이므로 종국에는 뽑을 만한 사람이 아예 씨가 마르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의 말을 다시 되새겨야만 한다. 그런데 플라톤이 말하는 정치에의 관심은 현대 사회에서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플라톤이 살던 시대의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에 가까웠기 때문에 플라톤이 말한 정치에의 관심은 현대 정치에서 말하는 관심 정도의 수준의 것이 아니라 직접적 정치참여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국민들의 직접적 정치참여가 아니면 민주주의 제도의 순기능을 최대치로 끌어내기 힘들다.

 물론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모든 국민이 생업을 팽개치고 정치에 뛰어들 수도 없고 국민이 국가정책을 직접 결정할 수도 없어 직접적 정치참여는 한계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지금 보통 생각하는 수준, 즉 정치 소식을 찾아보고 투표를 빠짐없이 하는 정도로는 정치에 대한 제어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생각하는 방법은 정당에 대한 참여다. 플라톤식의 "정치에의 관심"은 현대 사회에서는 "정당에의 참여"라는 말로 치환돼야 한다. 현대 민주정치는 정당정치인데, 우리나라처럼 진영 논리가 강한 양당 독점 체제에서는 정당이 국가 운영자를 사실상 정하기 때문이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국민들도 정당에 대해서는 진영으로만 생각하지 그 자체를 인격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정당의 기능과 활동에 대한 능동적인 국민의 참여는 매우 저조하다. 그런 이유로 저급한 인간에 의한 지배가 이뤄지기 가장 쉬운 곳이 바로 정당이다. 안에서, 또 밖에서 수십 년간 정치개혁을 외쳐봤자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정당이 국민의 감시와 통제의 사각지대에 계속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젊은 세대들이 정치에 대한 효능감을 알게 되고 정치 참여의 필요성을 자각해가고 있다. 이러한 자각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 정도에 머물러서는 절대로 안되고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이자 참여자라는 인식에까지 미쳐야 한다. 그 출발점이 바로 정당에 대한 참여다. 단순히 당원 증가 정도가 아니라 젊은 세대들이 정당의 책임당원으로 압도적인 숫자가 쏟아져 들어가서 기존 정치권을 윽박지를 수 있어야 한다. 선거에 나가면 좋고 아니라도 정당의 주인으로서 운영과 활동의 자기 몫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썩은 늪과 고사한 고목 같은 정치 영역에도 새 물이 흐르고 푸른 싹이 돋아날 것이다. 경쟁에 의해 못난 놈들은 퇴출될 것이다. 5ㆍ16 군사혁명으로 30, 40대가 국가의 중추가 되었듯이 이제는 이 세대가 정당혁명에 나서야 한다. 우리는 이제 더 나은 길을 걸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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