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순두부
아내와 순두부
  • 김병기
  • 승인 2022.02.07 22: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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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가락시종친회 사무국장
김병기 가락시종친회 사무국장

평생을 숭조목종(崇祖睦宗, 조상을 숭배하고 종친 간에 화목을 도모)의 정신으로 살아오신 숭안전(가락국 2대부터 10대 왕을 모신 곳) 참봉을 역임하신 종친회 지도위원이 오셨다. 몇 달 전에 저녁 운동을 나선 반려자인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고 외로운 기러기 되었다면서 아내가 다른 일은 간섭해도 꽃씨를 심고 가꾸는 일은 좋아했다는 한 송이 국화꽃을 매년 종친회에 들고 오시는 분이다. 반갑게 새해 인사를 올리자 "하는 일이 잘 풀리고 건강하라" 덕담을 건네면서 여직원에게 세뱃돈을 주셨다. 한 달에 두세 번은 오셔서 가르침을 주셨는데 오늘따라 아무런 말씀이 없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먼저 온 족장이 "참봉님 올해 나이가 어찌 되시는지?" 묻자, 그냥 일곱이라 하신다.

 팔십하고 일곱이면 아직 걸음마 단계 나이로 백 세까지는 한참 남았는데 일 년이 지나면 새장가를 가실 것인지를 물으며 농을 한다. 그래도 되겠냐며 힘 부쳐 어렵겠다면서 상처한 탓에, 수로왕릉 참배는 못 하지만 새해라 종친회에 오셨다 하신다. 먹을 것이 흔하지 않던 시절, 고단한 농사일을 마치고 논두렁에 심은 콩을 잘 씻어 불린 콩을 담아놓고 일 년에 한 번 쓰는 맷돌을 헛간에서 꺼내 위 맷돌(암맷돌)과 아래 맷돌(숫맷돌)을 잘 씻어 대청마루에 놓고 한 손으로 어처구니(맷돌 손잡이)를 돌리며 한 손으로 콩을 집어 맷돌 아가리에다 넣고 간간이 콩이 잘 갈리도록 물도 넣어 두부를 만들어 먹었다. 맷돌에 간 뿌연 콩물을 가마솥에 넣고 저으며 간수 넣어 가벼운 불을 지피면, 뿌연 콩물이 어느새 엉기어 흐느적거리는 순두부가 된다.

 오동나무로 짠 사각형 틀에다 흰 광목천을 깔고 흐느적거리는 순두부를 담아 광목천으로 감싸 다디미돌(다듬잇돌)을 얹어 물을 빼면 시간이 지나면 맛난 두부가 되는데, 가마솥에서 뜬 순두부 한 그릇에 몇 시간 맷돌을 돌린 고단함이 녹았다. 큰 며느리와 둘째 며느리가 콩을 씻고 맷돌을 돌리느라 분산한 가운데 사랑방 할아버지는 연신 곰방대에 불을 댕기며 헛기침으로 시간을 가늠하는데 소식이 없다.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지게 진 큰아들이 들어오자 큰 며느리가 박 바가지에 순두부를 가득 담아준다. 할아버지는 헛기침에 죄 없는 곰방대만 두드린다. 읍내 나간 둘째 아들이 들어온다. 둘째 며느리도 질세라 순두부를 가득 담아 어서 맛을 보라 한다. 사랑방 죄 없는 놋쇠 재떨이 두드리는 소리 요란한데, 손자를 업고 마실 간 할머니가 들어와 "벌써 다 되었느냐, 아이고, 순두부는 너희 시어른이 제일 좋아하시는데, 드시도록 했는지" 물으며 호들갑이다. 곰방대 두드리던 할아버지. "그래, 나도 마누라 있다" 하시며 담백하고 몽글몽글한 순두부 맛을 입안 가득 담으며 늘어진 수염을 몇 번이고 쓰다듬으며 빙그레 웃는다.

 "검은 머리 파뿌리(흰머리) 되도록 변치 말자"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먼저 하늘나라로 간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귓전을 울리는데, 곱게 차려입은 한복 옷고름이 오늘따라 곱다. 빈손으로 왔다가 옷 한 벌은 건졌다면서 서러워 말라는 외침도 하늘에 흰 구름이 모였다 흩어짐의 이치도 남의 일 같은데 어찌 그리 쉽게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걸까. 부처님과 예수님 등의 가르침을 믿으면 안다고도 하는데. 먼저 살다 간 눈 밝은 분들도 그리하셨는데 범부인 나로서는 마땅히 그리해야 할 터이고 홀로 된 지도위원님께 사는 동안 건강하시라고, 순두부 맛이 든 얼마 전에 출간한 책을 선물로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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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2022-02-09 21:56:02
맷돌의 손잡이는 어처구니나 어이가 아니라 '맷손'입니다. 이는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표준국어대사전 등에 정식으로 등재되어 있고 실제로도 사용되고 있는 말입니다. 어처구니나 어이가 맷돌 손잡이라는 인터넷이나 영화 베테랑 등의 엉터리 기사에 대해서는 국립국어원에서도 부인하고 있습니다.어처구니나 어이는 맷돌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이에 대한 어떤 문헌적 근거도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