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9 11:50 (화)
대단하게 만드는 꾸준함
대단하게 만드는 꾸준함
  • 이영조
  • 승인 2022.02.03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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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동그라미 심리상담센터장
이영조 동그라미 심리상담센터장

대단해지는 게 어려운지
꾸준해지는 게 어려운지
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하나

"카톡!" 반가운 울림과 함께 초대장이 도착했다. 나는 카톡 울림에 늘 반가움을 느낀다. 카톡 알림 소리는 내가 살아있다는 확인음으로 재해석된다. 나의 뇌 구조가 그렇게 세팅된 모양이다. 반가운 마음에 카톡 창을 확인했다. `이런 헐~`, 황당하게 느껴지는 문자 내용에 나도 모르게 이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출판기념회에 초청한다는 친구의 초대다. `이 친구가 책을 냈다고?` 친구의 마음속까지 훤히 다 들여다볼 정도로 서로에 대해서 잘 아는데, 이 친구가 책을 냈다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내가 아는 친구는 책 좀 그만 보라고 구박하던 친구였다. 그런데 출판기념회라니 아무튼 반가운 소식이다. 조촐하게 마련된 자리는 가까운 친구와 지인들이 초대되었고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책 한 권을 받아 양손에 들고 책갈피를 펼쳐 보며 저자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순서를 기다렸다.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어찌 된 일이야?" 친구는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친구가 일으킨 기적의 스토리가 궁금했다. 친구는 음료수 잔을 들어 입술을 축이고 차분하게 말문을 열었다.

 "어느 날 글이 쓰고 싶더군, 무조건 컴퓨터 앞에 앉았지", "그래, 글이 써지던가?" 친구의 대답은 심플했다. "1년을 계획하고 하루에 1장씩 글을 쓰겠다고 작정했다네" 그 결과 300쪽이나 되는 책을 써냈다고 했다. 농담처럼 던진 말에 말문이 막혔지만 친구의 말속에는 시크릿이 들어있었다. "하루에 한 장" 친구의 말을 들으니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평범한 비밀, 사람들은 친구에게 연신 대단하다는 말을 건네주었다. 내심, `그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겠네,`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글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벌써 글쓰기를 며칠째 빼먹었다. 글을 쓰는 게 대단한 걸까, 컴퓨터 앞에 앉는 게 대단한 걸까, 퇴근 후 식사를 하고 나면 하루 종일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짐꾼같이 온몸이 휴식을 달라고 아우성을 처댔다. TV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 경연 프로가 진행 중이다. 출연자가 부르는 노래의 미세한 소리까지 들으려고 볼륨을 최대한 올리고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려는 듯 화면이 뚫어져라 주시한다. 옆에서 아내가 소리 좀 줄이라고 핀잔을 주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입에서는 감탄과 비평을 혼잣말처럼 쏟아내고 있다. 나는 이미 심사위원이 되어있었다. 문득,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글쓰기 한 장, 머릿속에 기억이 떠올려지지만 그 주문은 수 십 킬로미터 밖에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약한 소리로 느껴졌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 20분이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그 시간은 이미 알고 있다. 이 음악 오디션 방송이 끝나면 그 시간이다. 낮에는 일하느라 체력을 소진하고 밤에는 음악방송이 뇌의 에너지를 모두 빼앗아 갔다. 내일을 위해서 수면에 들어가야 한다. 한 장의 글쓰기는 자동 순연이 되고 말았다. 내 의지가 잠시라도 멈추면 안 되는 숨처럼 자율신경으로 조절됐으면 좋겠다. 잠자리에 몸을 누인 내 육체는 머릿속 이성의 끈은 저 멀리 놓아 보내고 죽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과 죽음은 같거나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깨어나고, 그렇지 않고의 차이가 있을 뿐, 눈을 뜨면 다시 내일이 오늘 돼서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오늘을 산다. `오늘은 꼭 한 장의 글을 써야지.` 마법의 주문을 외우며 하루를 시작하지만 마법의 주문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도록 마법을 부린다.

 대단해지고 싶다. 그런데 꾸준해지지 않는다. 대단해지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은데, 꾸준해지면 대단해지는데, 꾸준해지는 게 어려운 건지, 대단해지는 게 어려운 건지, 나는 어느 것을 먼저 해야 되는 건지, 어려운 문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나는 상담 온 학생에게 하루에 영어단어를 10개씩 외우면 1년에 3650개의 단어를 외울 수 있다고 도전해 보라고 했다. 친구는 신대륙을 발견한 듯 눈을 덩그러니 뜨고 당장 시작하겠다고 호언한다. 그리고 그 친구는 서울의 대학에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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