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
  • 이광수
  • 승인 2022.01.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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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인문학은 문(文)ㆍ사(史)ㆍ철(哲)로 통칭되는 문학, 역사, 철학을 말한다. 인문학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학문이 아니라 인간사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진실추구의 정신을 배우는 학문이다. 최근 대졸학생들의 취업난을 반영하듯 인문학계열의 학과통폐합이 진행되고 있어 우려된다. 합계출산율(0.83명) 저하로 학령아동이 줄어들자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대학교까지 입학생 미달사태가 벌어지자 각 대학들이 고육지책으로 인문학계열 학과를 다른 학과와 통폐합하고 있다. 수도권 대학은 물론이고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대학들은 입학생 미달사태로 대학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부산의 경우 부경대, 동의대는 인문계열을 사회대와 통폐합하고, 신라대는 중국어, 중국학과와 산업실무영어과의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다. 그 밖에 동아대, 동명대, 한국해양대도 인문계열 영어영문학과 중국어학과 등 어문학과를 다른 학과와 통폐합했다. 경남은 경남대가 영어, 사회, 한국어문학과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다. 그밖에 다른 시도의 경우도 부산 경남과 대동소이한 현상이라고 한다.

 지난해 말 교육부에서는 이 같은 인문계열 위축현상을 줄여보고자 제2차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해 발표했다. 생애주기별 인문학연구, 인문학 중심 융합연구, 인문학진흥을 위한 법제정비 등이다. 그러나 현재 각 대학이 처한 입학생 부족과 취업률이 연계된 상황의 근본적인 대처방안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힘입은 베이비붐 세대의 도래로 대학설림인가를 대폭 확대함으로써 대학진학률은 80%대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불과 20년이 지난 지금 교육부의 대학팽창정책은 인문학의 위기를 몰고 온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다. 교육부통계에 의하면 지난 2012년 976개였던 대학 내 인문계열학과수는 2020년에는 828개로 줄어들었으며, 학생 수도 4만 6108명에서 3만 7352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10년도 안 돼 인문계열 148개 학과 8756명의 입학정원이 사라진 셈이다. 그러나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공시준비생 40만 명 시대를 맞아 코로나19 이후 경제 사정의 악화로 상황은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지성인이면 모두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교양을 기르는 학문이다. 얼마 전 모 중앙지 논설위원은 그의 칼럼에서 "우리나라에서 문과의 위기는 `문송합니다(문과여서 죄송합니다)`로 표현한 그 분야 교수와 학생만의 위기가 아니다. 젊은 시절 인문사회과학적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정계, 관계, 재계로 진출해 지도층이 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는 사회 전반의 위기"라고 우려했다. 우리의 이런 상황과는 달리 프랑스의 사례는 우리가 당면한 인문학의 위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엄격한 선발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프랑스의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위의 대학`으로 불리는 그랑제콜(Grands E coles)에서 프랑스 인문학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우수한 인재만 입학할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인 그랑제콜은 파리정치대학, 파리경영대학, 국립행정학교(ENA)등으로 세분되어있다. 프랑스 각계 지도자급 인사들을 배출하는 그랑제콜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바칼로레아시험(수능)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준비반에 들어가 2년 동안 공부한 뒤 여러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매년 6월에 치르는 바칼로레아는 크게 인문, 사회, 자연과학을 세분해 수학, 물리ㆍ화학, 생물학, 경제학, 사회과학, 프랑스어, 철학, 역사ㆍ지리, 외국어 등 8개 분야다. 그중 가장 비중이 높은 과목인 철학시험은 4시간 동안 3문제 중 택1 해 논문형태로 작성해야 하는 난코스다. 철학시험은 그야말로 프랑스의 지성을 가늠하는 잣대로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 시험이 끝난 후 언론인과 사회단체의 유명인사와 시민들이 모여 철학시험문제를 두고 각종 토론회를 개최할 정도로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인문학과가 취직이 쉬운 실용학과로 통폐합되는 한국의 현실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현상이다.

 문ㆍ사ㆍ철의 위기는 학생들의 인식에서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 필요한 것이지, 그걸 전공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어느 학생이 SNS의 인문학 칼럼에 단 댓글이다. 밥벌이 취직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모르고 국가지도자나 기업가 사회단체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리더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갖춘 인격자라 할 수 없다. 지금 대통령 선거유세에서 각 후보자들이 반복하는 철학 부재의 언동에서도 인문학의 위기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단채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과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바꿀 수 없다`고 한 영국인의 자존심을 되씹어 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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