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4:23 (금)
유천간이 올린 망산도의 봉화
유천간이 올린 망산도의 봉화
  • 도명 스님
  • 승인 2022.01.10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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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스님 산사정담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인간이 문명화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불의 사용이었다.

 불로 추위를 막고 음식을 익혀 먹었으며 구리와 철강석을 녹여 다양한 도구와 무기를 만들 수 있었다.

 전근대까지 불의 또 다른 용도 중 하나는 불빛과 연기를 이용한 봉화(烽火) 같은 신호 체계로 활용이다. 고대 국가에서는 적의 침입이나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면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을 이용해 빠르게 소식을 전달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봉화에 대한 이른 기록은 서기 48년으로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타난다. 여기에는 수로왕의 아내가 될 허황옥 공주가 가락국에 도착했을 때 이를 알리기 위해 망산도에서 불을 올렸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가락국기`에는 수로왕이 48년 7월 27일 아침, 유천간에게 날렵한 배와 빠른 말을 주어 망산도로 보내고 신귀간에게는 승재(승점, 乘岾)로 가게 했다고 한다. 이윽고 공주의 배를 발견하고 `유천간 등이 먼저 망산도 위에서 횃불을 올리니, 나루에 닿자마자 곧바로 육지에 내리어 다투듯 뛰어오므로-留天等 先擧火於島上 則競渡下陸 爭奔而來`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필자는 공주의 배가 처음 관측되었을 때 유천간이 올린 봉화를 신호로 하여 다투듯 뛰어간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 궁금했었다. 그래서 `가락국기`에서 의문이 생긴 부분과 생략된 행간에 대해 필자의 상상을 가미하여 풀어보고자 한다.

 이전에 필자는 "나루에 닿자마자 곧바로 육지에 내리어 다투듯 뛰어온다"는 대목의 주체를 공주와 함께 온 일행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공주 일행들이 오랜 항해 끝에 육지에 도착하여 기뻐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뛰어온 주체는 공주 일행이 아니라 유천간과 함께 망산도에 가서 배를 타고 봉화 신호를 기다리던 이들로 보인다. 당시 망산도에 있던 유천간이 공주의 도착을 횃불로 신호하면 섬에 정박했던 그들이 급하게 노를 저어 육지에 도착한다. 결국 `가락국기`에 나오는 경쟁 대목은 배에서 내린 이들이 신귀간에게 도착 소식을 알리기 위해 다투듯 뛰어가는 모습인 것이다.

 만약 망산도에 배 몇 대가 대기했다면 공주의 도착을 먼저 전하기 위해 배끼리 경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후대의 민속놀이로 미루어 보면 배들간이 아닌 배와 말의 경합임을 알 수 있다.

 `가락국기`를 보면 고려 시대까지 이 지역민들은 허왕후 도래를 알리는 이날의 상황을 민속놀이로 즐기고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매년 7월 29일에 토착인과 서리 그리고 군졸들이 승점에 올라 말과 배가 서로 경쟁하며 주포에 먼저 닿는 내기를 하며 놀았다"는 대목이다.

 이러한 민속놀이를 소급해 유추해보면 공주가 오는 것을 관측하기 위해 유천간은 배와 말, 두 패로 나누어 날렵한 배(輕舟)는 자신과 함께 망산도에 갔고 다른 무리인 빠른 말(駿馬)은 또 다른 곳으로 보냈다. 망산도는 섬이라 말을 보낼 수 없었고 말은 조망하기 좋은 육지 끝으로 갔는데 그곳이 바로 진해 용원의 욕망산(慾望山)이다.

 욕망산의 다른 옛 이름은 육망산(陸望山)인데 육지에서 바다를 망보기 좋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욕망산은 망산도 보다 공주의 배가 처음 나타났다는 가덕도 서북단의 기출변이 가까워 공주의 배가 먼저 관측되는 곳이다. 여기서는 발견 즉시 말을 달려 신귀간에게 보고했으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락국기`에는 망산도에서 먼저 유천간이 공주의 배를 관측하고 봉화를 올렸다고 나온다.

 이런 정황을 보면 욕망산에 있던 말 탄 이들이 공주의 배를 먼저 보았지만 출발하지 않고 대기하였다가 망산도의 봉화를 보고서야 열심히 말을 달려 신귀간에게 향했다고 볼 수 있다. 허왕후 도래 당일 망산도로 가서 배를 탔던 이들과 육지의 욕망산으로 갔던 말을 탄 일행이 망산도에서 올린 횃불을 신호로 한껏 경합했던 것이다. 그리고 후일 이러한 과정들이 민속놀이가 되었다. 사실 이러한 경합은 수로왕이 미리 계획한 결혼 작전의 일환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대궐에서 구간들이 규수를 천거할 때 수로왕은 "오늘 하늘이 점지한 신부가 온다"고 말했는데, 이를 통해 공주의 도래를 알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로왕은 사전에 아유타국과 교감이 있었고 공주가 도래하는 날을 정확히 알아서 유천간과 신귀간을 보내 공주를 맞이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충분한 포상을 내걸고 말과 배의 두 팀을 경합시키며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는데 이러한 일련의 계획은 왕비를 애타게 기다리던 신하와 국민들을 위한 수로왕의 지혜였다. 그는 구지봉에서 자신의 탄생을 신비스럽게 연출한 것처럼 결혼 프로젝트를 통해 또한 번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인 `기획의 달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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