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18:31 (화)
“가난이 싫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는데 앞이 열리더라구요”
“가난이 싫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는데 앞이 열리더라구요”
  • 류한열 기자
  • 승인 2022.01.09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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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사람 진상준 씨 김해 모범택시 운전사
진상준 씨는 “가난이 싫어 앞만 보고 달려와 보니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남는다”고 말했다.
진상준 씨는 “가난이 싫어 앞만 보고 달려와 보니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남는다”고 말했다.

김해서 18년 동안 모범택시 몰아
가정에 충실 못한 점 크게 후회
배고픔 극복 험난한 삶 잘 이겨내
남모를 봉사는 삶에서 작은 기쁨
좌절 순간 극단적 선택에서 회복
“다시 악물고 살 것” 재다짐 계기
5년 후 고향 가서 전원생활 꿈꿔

 “가난이 싫어 앞만 보고 달렸다” 그래서 “성실하게 살다 보니 앞이 열리더라”고 말하는 보통 사람이 있다. 열심을 다한 삶을 뒤돌아보면서 긍정의 결과물을 내놓는 평범한 삶에서도 향기는 난다. 삶의 굽이굽이를 이리저리 부대끼며 산 사람은 자신의 삶을 예찬한다. 살아온 날보다 살날이 짧은 사람은 삶을 규정하는 한마디를 던질 수 있다.

 김해서 18년여 동안 모범택시를 모는 진상준 씨(60)는 “열심히 살았다. 지금 가장 후회하는 건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점이 걸린다. 이제부터는 종합병원이 된 아내를 위해 살겠다. 아내에게 마지막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진씨는 봉사가 몸에 배어 있다. 어르신이 택시를 탈 경우 그는 반드시 차에 내려 차문을 열고 짐을 받아 싣고 어르신 손님을 태운다. 내릴 때도 친절하게 안내하고 집 앞에서는 어르신을 계단 위 집까지 안전하게 모신다. 어르신 손님을 부모님처럼 모시는 자세에는 진정한 섬김이 묻어 있다.

 진씨는 전남 고흥에서 나서 아버지로부터 사막에 떨어져도 살아날 강한 정신력을 물려받았다. 20대 초에 가난을 벗어나려는 생각으로 적금을 깨 380만 원을 들고 부산에 갔다. 1984년 결혼 후 1994년 서울로 이사를 하고 다시 부산에 잠깐 살다 김해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떡 방앗간 등 자영업을 이어가다 ‘공기가 좋다’는 이유로 김해에 와서 쭉 살고 있다.

아내 최미경 씨와 결혼 모습.
아내 최미경 씨와 결혼 모습.

 진씨는 7살 때 쌀밥을 먹기 위해 외갓집에 가려고 새벽 5시에 집에서 떠나 4㎞를 걸어서 선착장에서 도착했다. 30분간 배를 타고 아침 8시 육지에 내려 해 질 녘에 외갓집까지 걸어서 도착했다. 외숙모가 “아이구 섬놈이 왔구나”하고 안아주면서 내놓는 쌀밥을 어른 서너 명이 먹는 양으로 거뜬히 먹어 치웠다. 다음 날 아침 하얀 솜이불에 지도를 그려도 야단을 치지 않았다. 그는 어릴 적 그런 추억이 강하게 남아있어 먹는 문제 해결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어린 아이가 하루를 꼬박 투자해 쌀밥을 마음껏 먹었다는 이야기가 그를 붙잡아 앞으로 달리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는 아버지가 심어준 강한 정신력 때문에 지금까지 술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 허투루 작은 낭비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최근 인간적인 배신감으로 좌절을 겪었다. 예민한 신경 때문에 화병을 부르고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겨우 잠잘 수 있었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정신이 돌아와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삶의 의욕을 붙잡았다. 입을 악물고 다시 살겠다는 의지를 이웃 선행으로 더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죽을 고비를 세 번 넘겼다. 3살과 6살 때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어린 나이에 삶의 굵은 선을 그었다. 진씨는 50살 전후에 8년 동안 입 냄새로 고통을 겪었다. 종합검진을 받고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남모를 고통의 세월을 멈추게 한 곳은 김해 수로한의원이었다. 수로한의원장이 침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침술로 3일 만에 80%의 치료 효과를 얻었다. 그는 “원장님은 생명의 은인이다”고 지금도 주위 사람들에게 말한다. 최근 수로한의원장이 주위에 할아버지가 한 분 계신데 생활하기가 어려우니 양아들이 돼 돌봐드리면 어떨까 라는 제안을 했을 때 그는 두말없이 승낙했다. 작은 섬김으로 한 어르신의 노후가 편하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진씨는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세상에서 돌봐 줄 가족도 없고 건강이 안 좋은 어르신을 따뜻하게 품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며 “각박한 세상에서 정을 나누는 삶은 고마운 일이다”고 말했다.

작은아들 유광 군 입대할 때 모습.
작은아들 유광 군 입대할 때 모습.

 

 그는 원장을 세 번째 생명의 은인이라 여기고 좋은 관계를 엮어가고 있다. 오랜 시간의 고통을 없애줬으니 원장을 매일 업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다.

 그는 “어려운 병을 겪는 여러 환자들을 제가 수로한의원으로 연결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특히 병명을 잘 모르는 병에 고통을 받는다면 한 번쯤 수로한의원에 들러보면 좋을 듯도 하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명의가 따로 없다. 원장님이 최고다고 생각한다. 한번은 제 소개로 수로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은 한 분이 제가 큰 절을 했다. 제가 수로한의원을 언급하는 이유는 저의 고통을 크게 줄여줬기 때문이지 별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진씨는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데 대해서 자기 일처럼 걱정한다. 그는 “이런 소리를 하면 오지랖 넓다고 타박할지 모르지만 정치인들이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해야 한다. 젊은이가 결혼을 하지 않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나. 현실에서 꿈을 가질 수 없는 사회구조가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이런 추세로 가면 이삼십 년 후엔 다문화 가정이 절반을 넘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야간운전하다 교통사고 정리 모습.
야간운전하다 교통사고 정리 모습.

 진씨는 아내 최미경 씨(57)를 향한 마음이 애틋하다. “그동안 잘잘못은 놔두고라도 그저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앞으로 부족한 부분은 채워가겠다”고 다짐했다. 큰아들 정훈(36)과 작은아들 유광(28)에게도 아버지로서 사랑을 더 주고 싶다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큰아들은 부모 말에 순종하는 착한 자식이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 해도 진씨는 큰아들 자랑을 끝도 없이 한다.

 손자 진현에게도 할아버지로서 부끄럽지 않으려고 열심히 생활에 매진한다. 진씨가 가장 존경하는 친형은 네 살 위다. 형의 말 한마디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법’으로 여기며 살았다. 진씨는 형이 삶의 그늘이 돼 준데 대해 감사한다.

 진씨는 5년 후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꿈을 꾸고 있다. 먼저는 아내를 위해 전원생활로 노년을 잘 꾸려나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오로지 앞만 보고 살아온 삶에서 37년 동안 결혼생활에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소중한 가정을 잘 지켜 마무리를 하고 싶은 소망이 강렬하다.

배고픔 이겨온 험난한 삶 앞만 보고 달려서 여기에
삶의 꽃 향기롭지 못해도 고난과 회환이 덧뿌려져 소중한 시간 여행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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