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한 칼로 선한 사람 잡는 세상
둔한 칼로 선한 사람 잡는 세상
  • 류한열 기자
  • 승인 2022.01.09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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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기자는 글로써 세상을 말한다. 기자란 직업은 참 멋지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제때 월급을 받고 있으니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살 만하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위세를 떨치면서 숨은 글쟁이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짧은 글쓰기와 논리 정연한 글 흐름이 감탄을 부른다. 시의적절한 예문은 설득력을 한껏 일으켜 세운다. 글쓰기가 직업인 기자를 위협하는 경우가 잦다. 강호에는 숱한 칼잡이가 일어나 스러지듯이 기자 세계에서 뛰어난 글쟁이가 왔다 갔다 한다. 요즘 진보ㆍ보수 프레임이 꽉 짜인 판에서 너무 글이 한쪽으로 꼬인다. 기자로서 바른 소리 대신 신음 소리는 내는 의심은 꼬리를 문다.

 대선 운동이 격을 제쳐두고 격해지면 기자들의 글도 춤을 춘다. 기자는 신문사에 소속돼 있어 진보ㆍ보수의 결을 따라 먹물이 흐른다. 기자는 대중들에게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판단할 거리를 줘야 한다. 미처 알지 못했던 대선 후보의 됨됨이를 일깨울 수 있고 오해했던 일을 풀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요즘 양측 진영을 대변하는 대부분의 신문에서 녹을 먹는 기자는 튈 수가 없다. 잘못 튀다 잘릴 수도 있고 세상살이 편하게 하려는 속물근성이 작용하기도 한다. 글로써 세상을 밝게 하려던 소싯적 꿈은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일 뿐이다.

 기자의 신문 글을 읽었는데 헷갈리는 경우는 기자가 글쓰기 공부를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공부를 안 한 기자는 독자에게 큰 죄를 짓는 경우다. 짧게 써도 무방한 글을 질질 늘인 경우는 글쓰기에 자신이 없어서다. 글을 수동 형식으로 이어가는 경우는 무식의 죄를 짓는다는 표시다. 신문 기사를 읽고 일희일비할 수 있는 힘을 제대로 아는 기자는 글쓰기가 두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프로 기자는 두려움을 벗고 자유롭게 하늘을 난다. `글은 칼보다 강하다`는 진부한 구절을 들먹이지 않아도 바른 기자는 자유롭다.

 유튜브 세상을 만나 글로써 세상을 휘어잡으려는 글쟁이들이 많다. "글 잘 쓸 수 있다"고 현혹하는 유튜버들은 오죽 많나. 어느 공식에 넣으면 좋은 글이 툭 튀어나올 것처럼 야단이다. 글쓰기로 가는 길에 작은 지식들을 이삭줍기하는 정도인데 글쓰기의 완성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 안 된다. `수학의 완성` 참고서를 보고 수학을 완성하는 수준에는 가지 못한다. 결국 피나는 노력이다. 일부 글쟁이는 글쓰기는 타고난다고 하는 데 전적인 동의를 얻기는 힘들다. 기자는 세상을 계도한다는 미친 소리를 나불거리면 더더욱 안 된다. 글의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칼을 조심스럽게 휘두르면 족하다. 여기에 무딘 칼로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 둔한 기자는 배워야 한다. 무딘 칼은 숫돌에 갈아야 한다. 두 달도 채 안 남은 대통령선거에서 둔한 칼이 행여 선한 사람 잡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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