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7:13 (금)
붕정만리(鵬程萬里)
붕정만리(鵬程萬里)
  • 허성원
  • 승인 2022.01.04 22: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업무상 많은 스타트업들을 접한다. 대개 컨설팅이나 멘토링을 위해서이지만 가끔 중책을 맡아 깊이 관여하기도 한다. 창업이란 새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것과 같다. 창업에 의해 새로 태어난 `업`은 사람과 사회에 다양한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험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생존, 성장 및 지속을 추구한다. 창업자들은 사업의 밝은 면에만 주목하고, 자신이 벌인 일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 여정이 얼마나 험난할 지를 잘 모르거나 애써 외면한다.

 창업은 붕(鵬)새의 구만리 여정(鵬程萬里)에 비유된다. 장자(莊子)는 이런 이야기로 시작한다. `북명(北冥)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은 곤(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곤은 변하여 새가 된다.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붕의 등은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떨쳐 일어나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남명(南冥)으로 이동한다. 남명은 하늘의 연못(天池)이다.` 북쪽 바다 북명(北冥)은 춥고 어둡다. 다들 그렇게 춥고 어두운 곳에서 시작한다. 곤(鯤)은 한낱 물고기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분연히 떨쳐 일어나 하늘을 나는 붕(鵬)으로 변신한다. 그게 바로 스타트업이다. 곤의 크기는 꿈의 크기이다. 몇천 리인지 알 수 없는 그 꿈은 그대로 붕의 비전이 된다. 물고기가 하늘의 새로 변신하는 데 어찌 고통이 따르지 않겠는가. 지느러미는 날개가 되고 아가미는 허파로 되며, 헤엄치는 능력은 공기를 가르는 날갯짓으로 되어야 한다. 변신에 실패하면 곤으로도 붕으로도 살아갈 수 없다.

 붕으로 튀어 오를 때는 물을 3000리나 쳐올린다. 이륙하는 힘이 약하면 도로 추락하고 말 것이니, 혼신의 힘을 다해 물을 내리쳐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며 도약한다. 일단 튀어 오르면 바람을 타고 9만 리는 날아오른다. 얕은 물이 큰 배를 띄울 수 없듯이, 떠받치는 바람이 충분히 두텁지 못하면 그 큰 날개를 떠받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9만 리를 올라야만 푸른 하늘을 등지고 남쪽으로 날아갈 수 있다. 3000리 파도를 만드는 도약의 힘은 창업자의 도전 의지이고, 9만 리 바람의 두께는 스타트업의 핵심 역량이다. 그 의지와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스타트업을 붕정만리 여정에 올려놓을 수 있다.

 붕이 날아가는 그 하늘은 푸를 것인가(天之蒼蒼). 하늘이 푸르고 창창한 것은 땅에서 올려다보는 자들에게나 그렇게 보일 따름이다. 하늘은 한없이 깊고 어둡고 적막하다. 내려다보면 온갖 살아있는 것들이 내뿜은 아지랑이와 먼지만 보인다. 그 지독한 외로움과 두려움은 어설픈 치기로 덤벼들어서는 결코 감당할 수 없다. 그리고 붕은 언제나 바람에 거슬러 날아야 한다(大鵬逆風飛). 게을리 바람에 몸을 맡겨서는 제 길로 가지 못한다.

 그걸 보고 매미와 메추라기가 비웃으며 말한다. `우리는 기껏 날아올라도 느릅나무 가지에 머물고, 때로는 거기에도 이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지는데, 무엇 때문에 구만리를 날아 남쪽으로 가는 것일까?` 근처에 마실 가는 사람은 세끼 밥을 먹고 돌아와도 배가 여전히 부르고, 백 리를 가는 사람은 자기 전에 양식을 찧어두어야 하며, 천 리를 가는 사람은 석 달 치 식량을 모아야 한다. 그러니 작은 벌레와 같은 존재가 어찌 붕의 뜻을 알겠는가. 그리고 정작 붕은 잘 알고 있는가. 자기 자신의 여정에 담긴 뜻을.

 붕이 가는 곳은 밝고 따뜻한 남쪽 바다 남명이다. 하지만 붕이 남명에 도착하여 잘 먹고 잘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장자는 남명을 `하늘의 연못`(天池)이라 하면서, 먼 곳이라 결코 이르지 못할 곳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붕의 여정에 그 끝이 없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스타트업의 운명이 그러하다. 일단 하늘에 오르면 잠시 날아보는 것만으로 끝낼 수는 없다. 업이기에 영원히 하늘을 날아야 할지 모른다. 땅에 내린다는 것은 아마 죽음을 의미할 것이다.

 원추라는 새가 있다. 붕과 달리 남해에서 일어나 북해로 날아간다. 원추는 오동나무가 아니면 내리지를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않고, 감로수가 아니면 마시질 않는다. 그런 엄격한 자기 관리와 절제는 원대한 목표를 가졌기에 지킬 수 있다. 스타트업은 그 절제를 먼저 배워야 한다. 고결한 비전을 세우고 그에 따라 사람, 일, 이익을 엄격히 가려 취하여야만 흔들림 없는 여정을 지속할 수 있다. 비전과 절제가 붕정만리의 참된 동력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