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우리나라 원자력 아니고는 에너토피아 실현 힘들다”
[신년 인터뷰] “우리나라 원자력 아니고는 에너토피아 실현 힘들다”
  • 서울 이대형 기자
  • 승인 2022.01.0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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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 사장, 최대 해외공사 UAE 발전소 수주
‘꿈은 청년의 특권’ 책 통해 응원 ‘강제 전역 무효’ 45년 만에 한 풀어
박정기 전 한전 사장은 “젊은이들이여 시선을 항상 높은 곳에 두라”고 말했다.
박정기 전 한전 사장은 “젊은이들이여 시선을 항상 높은 곳에 두라”고 말했다.

열정~ 파워를 그대로 보여주는 ‘노익장’의 주인공! 올해 85세! ‘꽃중년’을 훨씬 넘겨 ‘꽃노년’의 매력을 한껏 보여주고 있는 박정기 전 한국전력 사장. 울끈불끈한 근육질 몸매와 함께 온화한 미소는 인터뷰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벌크업 몸매로 다부진 수트 자태’에다 보타이를 즐긴다는 그는 자신의 굴곡졌던 ‘군인-CEO-작가’의 인생 3막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놓았다. 은퇴를 모르는 영원한 현역으로 삶을 살고 있는 그는 ‘참으로 하루를 새롭게 할 수 있으면 나날이 새롭게 할 것이요, 또 날로 새롭게 할 것이다’.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편집자 주>

 박 전 사장은 원자력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1980년대 원전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를 최강국으로 우뚝 솟게 한 장본인이다.

- 우리나라 원자력계의 거목으로 통한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원자력 아니고는 에너토피아의 실현이 불가능했다. 원자력은 쉽게 말해 동화에 나오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이다. 원자력 기술을 일단 완성하기만 하면 쓰고 난 우라늄을 재생해서 무한정 쓸 수 있다. 한국과 같은 무자원 국가에겐 그야말로 꿈의 에너지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한전이 원자력 발전소를 10여 년 운영했지만 원자력 발전소의 부품제작이나 건설기술은 전적으로 미국의 벡델, 웨스팅 하우스가 독점 운영했다. 또 원자력 기술은 세계적으로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만이 보유하고 있는 고도한 기술이다. 기술자립은 험난했다. 갖은 반대와 모함이 난무했다. 뜻을 굽히지 않았고 마침내 3년 후 꿈은 실현됐다. 지난 2009년 단군 이래 최대 해외공사인 UAE 원자력 발전소 건설(40억 불) 수주를 성공했다. 지금도 원자력계의 전설로 남아 있다”

- 염원하던 ‘에너토피아’에 한발 다가선 것인가?

 “에너토피아란 ‘에너지 유토피아’의 신조어다. 곧 에너지가 풍족한 사회, 에너지 사용에 불편이 없는 나라를 이룩하자는 것이다. UAE 원자력 발전소 건설은 순수한 한국형 원자로 4기를 우리가 설계하고, 우리가 부품을 만들고, 우리가 건설한 것이다. 우리나라 기술자립이 10년 후 꽃을 피웠다. 이제 미국의 반대만 걷히면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확보해 한국 총 에너지 소요의 30-40%는 국산화가 가능해진다. 마침내 ‘에너토피아’ 성취를 바짝 당긴 것이다”

- 당시 두산중공업을 살렸고, 한국전력 사장으로 임명되는 쾌거를 이뤘는데…

 “1980년초 우리 정부의 최대 골칫거리가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이었다. 계속된 경영실패로 부채만 4000억 원으로 늘어났다. 자고 나면 1억 원이 넘는 빚의 이자가 계속되자 정부는 회사를 폐기처분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1981년 온갖 악재가 겹쳐 있는 한국중공업 사장으로 임명된다. 부임 후 단행한 첫 조치가 임원진 50%를 퇴출시키고 직원 임금을 30%를 인상하는 등 기발하고 단호한 조치가 이어졌다. ‘망해가는 회사가 직원 봉급부터 올리느냐’는 비아냥 속에서 취임 후 8개월 만에 5억 불의 해외수주를 달성해 경영정상화의 기틀을 잡았다. 상상을 초월한 그의 리더십은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 전설로 남아 있다. 이후 1983년 정부에서 한국 최대 공기업의 경영쇄신을 기대하면서 한국전력공사 사장으로 임명했다. 각료 출신의 전유물과 같은 자리를 군 출신이 맡으면서 우려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군 리더십을 더해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데 주력했다. 3달에 1번꼴로 전국의 지점과 지사 직원들과 등산을 함께 하며 소통을 강화했다. 부임 6개월 ‘일반직 사원 1계급 특진’과 기상천외한 결단으로 가장 능력 있는 기관으로 변모하는데 성공했다. 한전의 궁극의 목표는 에너토피아의 건설이라고 사원들을 설득했고, 결국 한전사장 취임 1년 차에 원자력 기술자립을 착수하게 됐다”

- 문재인 정권의 탈핵에 맞서 ‘원자력살리기 국민연대’를 결성해 왕성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력살리기 국민연대 발기인으로 참가했다. 국민연대는 현 정부의 불합리하고 무리한 탈원전 정책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준국산 에너지인 원자력발전소의 정상적인 건설과 운영을 보장하고 원자력에너지를 더욱 안전하게 이용하기 위한 연구개발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앞으로 범국민적 운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원자력산업에 관련된 최첨단 설비, 건설, 철강, 기계, 재료,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 국내의 모든 산업을 활성화시키고,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데 한몫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자력은 종합과학으로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과학이라는 점이다”

- 차기 정부에서 원자력 개발 등 에너지 정책에 대해 조언한다면?

 “탈원전을 타파하고 안정적인 전력공급과 에너지안보를 차기 정부 에너지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정치적 논리가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실리를 따져 실현 가능한 탄소감축 목표를 제시해야 하며 우리 산업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국민 부담과 감축비용, 파급효과 등을 정밀히 분석해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김 전 사장은 제14기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무인’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군 생활은 생각만큼 순탄치 않았다. 잘 나갈 것으로 여겼던 군 생활이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바로 ‘윤필용 사건’에 휘말린 것이다. 분명 원했던 것은 아니다. 억장이 무너진 느낌이었고 그 순간은 받아들이기도 결심했다. 언젠가 바로잡겠다는 다짐을 가슴에 새겼다. 그 억울함은 45년 만에 대법원을 통해 풀어졌다.

- 어린 시절 군에 몸담았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른바 ‘윤필용 사건’에 연루됐는데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육군사관학교에 가서 국가에 충성하는 영원한 군인이 되고자 했지만 대대장 재직시절 갑자기 강제로 예편당했다. 당시 연금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가족들이 많은 고초를 겪었다. 10년 전 미군과의 만찬에서 한 연설이 군에 대한 한결같은 내 마음이다. ‘친구 여러분, 나는 여러분의 군복이 부럽습니다. 그것은 목숨을 바쳐 국가에 헌신하겠다는 고귀한 약속의 징표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군복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명예로운 심벌의 하나입니다’”

 “나는 월남전 참전(1968-1970) 때 맹호부대 사단장이셨던 윤필용 소장님과 우연치 않게 인연을 맺었다.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재직 시 1년여간 비서실장으로 근무했다. 윤필용 사건은 1973년 당시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술자리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노쇠했으니 형님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가 쿠데타설로 번진 사건이다. 이로 인해 윤필용 및 장교 10여 명에게 1~15년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윤필용과 가까운 장교 30여 명의 군복을 강제로 벗게 했다. 이때 나도 보안사령부에서 갖은 강요와 협박, 폭행을 당하면서 강제로 예편됐다”

- 가슴속 ‘응어리’가 무려 45년 만에 풀어졌다. 그때 심정은?

 “너무 감개무량했다. 사필귀정이랄까. 무엇보다도 당시 강제 전역이 무효라고 판결을 받은 것이다. 만 37세 때의 일이 거의 반세기만인 팔순 중반에 규명됐으니 얼마나 감개가 무량한지”

- CEO 재직시절 체육, 특히 육상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현재까지도 후학 양성에 매진 중인 것으로 아는데

“육군사관생도 시절 4년 내내 럭비선수로 뛰었다. 스포츠광인 셈이다. 86 아시안게임을 1년 앞두고 정부는 대한육상연맹을 맡겼다. 86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하나밖에 예상못했던 육상이 무려 8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더욱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주요 대회에서 획득한 메달 수는 올림픽 마라톤의 황영조 금메달, 이봉주 은메달을 포함해 모두 48개를 획득했다. 한국육상 창설 이래 이같은 성공신화는 없었다. 이는 대한육상연맹 회장 재임 기간 1985년부터 1996년 12년간 모두 이뤄진 것이다. 한국체육의 불모지인 육상에도 꽃을 피웠다”

 그는 성공을 향한 야망과 첫사랑을 향한 애틋함 사이에서 갈등하는 심리를 무척 갈구했다. 1989년부터 작가로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누구보다 파격적인 변신으로, 모두의 시선을 강탈하는 할아버지로서 미래세대와의 공존을 꿈꾸고 있다.

- 이미 ‘어느 할아버지의 평범한 이야기’(1989년)는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바 있다

 “약 35만 권이 팔렸다. 손녀딸들이 태어났을 때 손주들을 위한 일종의 훈계서였다. ‘어느 할아버지의 평범한 이야기’는 주로 개인이 갖춰야 할 소양, 윤리, 도덕 등에 초점을 뒀다”

- 후속작인 에세이 ‘WAKE UP KOREA!’(2021년)도 지난달 출간했다. 미래세대의 필독서로 꼽히고 있는데

 “이번 신작 에세이 ‘WAKE UP KOREA!’는 증손자를 본 계기의 후속작으로 선진국 문턱에 와있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했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사는 젊은이들이여 나라 밖을 보라. 넓은 세상에 눈을 돌리자. 국제무대는 정글이다. 힘의 논리만 통하는 냉혹한 세상이다. 이웃 욕할 것 없다. 못나면 당한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선진국 사례들이 담겨 있다”

- 이번 신작에는 젊은이들에게 백발의 할아버지로서 자신이 겪은 진솔함을 이 책에 잔뜩 담아낸 것이 눈에 띈다.

 “꿈은 청년의 특권이다. 터무니없는 꿈이라도 좋다. 살다가 보면 기적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자신 스스로를 철석같이 믿고 줄기차게 달려야 한다. 성공의 기법은 신념이다. 신념은 열정을 낳는다. 세상의 일은 열정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 신념과 열정은 젊은이들을 성공으로 이끄는 엔진이다. 젊은이들이여 시선을 항상 높은 곳에 두라. 그래야 발전한다. 현실에 머물지 말라. 벽을 넘어 앞으로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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