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0:22 (토)
공직에 임하는 자세
공직에 임하는 자세
  • 이광수
  • 승인 2021.12.19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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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필자가 공직에 입문한 70년대 초는 공무원에 대한 정신교육이 정기적으로 실시되었다. 박봉 탓(?)이기도 했지만 공직사회에 만연된 부조리가 쉽사리 근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정신교육 필수기본교재로 자주 활용된 책이 다산 정약용이 지은 목민심서(牧民心書)였다. 목민관(공직자)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자세와 청렴성, 위민봉사정신 등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중요 구절은 거의 외우다시피 하였다. 목민심서는 다산이 신유박해(신유사옥)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현지에서 느낀 농민들의 비참한 생활상과 가렴주구를 일삼는 탐관오리들의 부패상을 보고 공복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덕목과 자세를 기록한 것이다. 한편 그의 3대 명저인 1표2서(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는 국가경영의 기본방향을 제시한 경세서이다.

 15세기 조선 후반기에 중국의 주자(朱子)와 여조겸(呂祖謙)이 공동 집필한 <근사록 (近思錄)>은 사서(대학, 중용, 논어, 맹자)와 도학, <심경>과 함께 조선 성리학자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근사록>은 주자의 <사서집주> <사서장구>와 더불어 성리학 이해에 필수적인 교본이었기 때문이다. <근사록>은 오랫동안 유불선(儒佛仙) 3교가 융합을 거쳐 새롭게 등장한 성리학의 요점들을 정선(精選)한 것으로 사서를 외경(外經)이라고 한다면 <근사록>은 내경(內經)이라 할 수 있다.(이범학 역주ㆍ근사록)<근사록>은 14권에 총622조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이다. 때가 때인 만큼 시의적절하게 제7권 출처(出處:관직에 나아감)편 39장 중 제1장 `도를 실천할 수 있을 때에만 관직에 나아갈 것`의 내용을 살펴본다. 주역 의리학파의 종지 정이가 <이천역전>에서 주역 산수몽괘 단전(彖傳)을 해석한 내용을 인용해 설명했다. `현자가 벼슬하지 않고 있을 때 어찌 스스로 나아가서 군주에게 관직을 구할 수 있겠는가. 만약 스스로 관직을 구한다면(청탁한다면) 군주는 그를 믿고 쓰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군자가 훌륭한 정치를 펼 수 없을 것이다.`고 했다. 이는 공보다 사를 따르면 공정인사의 원칙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현실정치에서 대통령이 각료를 임명할 때 청와대의 인재풀이나 당의 천거에 의해 적임자를 낙점한다. 그러나 각료 후보자로 지명된 사람이 막상 국회인사청문회에서 허점투성이의 부적격자로 밝혀져 청문동의서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장관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권한으로 국회 동의와 상관없이 임명할 수 있다. 그것은 국회동의절차는 통과의례일 뿐 의무준수사항이 아니라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이다. 물론 임명권자나 여당 입장에선 야당이 괜한 몽리를 부린다고 하겠지만 그건 핑계에 불과할 따름이다. 장관다운 자질과 인품을 갖춘 후보자가 국회인사청문회를 통과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사리에 맞지 않는 억지변명에 불과하다. 이 정부 들어서서 무려 25명이 장관 후보자로서 부적격자라는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사권자의 권한으로 임명되었으니 유구무언이다.

 <근사록> 제7권에는 39조 항에 걸쳐 관직에 임하는 관리의 자세(道)를 세세하게 명시하고 있다. 모두가 공직자로서 필히 실천해야 할 과제와 공복의 자세를 각종 경전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발취해 제시하고 있어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다. 주 내용이 바로 공직에 임하는 자의 올바른 몸가짐과 태도, 수신제가 후 치국평천하해야 한다는 구구절절 교훈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세상이 바뀌어 공무원노조까지 생겼다지만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직자의 기본자세와 책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근사록>은 1~14권에 622조의 세부항목으로 많은 인용사례를 담고 있다. 1권은 도체(道體)로 우주론과 존재론에 해당하는 주돈이의 태극도설과 이기론에 대해 논한다. 2권 위학(爲學), 3권 치지(致知), 4권 존양(存養), 5권 극치(克治)편은 대학의 기본강령인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수신(修身)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격물치지(格物致知)가 주 내용이다. 6권 가도(家道)편은 제가(齊家: 집안을 다스림)이다. 7권 출처(出處), 8권 치체(治體), 9권 치법(治法), 10권 정사(政事)편은 모두 `치국평천하`에 해당하는 경세사상과 그 구체적 방법론이다. 11권 교학(敎學), 12권 경계(警戒), 13권 변이(辨異), 14권 관성현(觀聖賢)은 앞 권에서 언급하지 않은 주요사항들을 보충해 기술했다.

 인간의 심성에 관한 심오한 내용으로 다소 현학적인 내용도 있지만 좋지 않은 이웃을 대하는 법, 운수가 불길할 때 대처하는 법 등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에 대한 답변과 조언들도 많은 생활경세서이기도 하다. 국가지도자, 기업가, 조직의 리더, 공직자라면 항상 곁에 두고 숙독할 가치가 충분한 보석 같은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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