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불교의 흔적 진국사지(鎭國寺趾)
가야불교의 흔적 진국사지(鎭國寺趾)
  • 경남매일
  • 승인 2021.12.1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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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 정 담(山寺情談)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창원의 진해 용원지역에는 인근의 바다를 잘 조망할 수 있는 산이 하나 있는데 보배산 또는 명월산이라고 한다. 보배산은 그 주위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등성이는 일자 주봉으로 동남쪽으로 향해 있으며 산 아래에는 주포와 옥포마을이 있다. 그 보배산 자락에는 수로왕과 허왕후가 처음 만난 만전이 있었는데 지금도 이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이 여기 주포마을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정수탑이 있고 벽에 그려진 두 사람이 만나는 그림은 그 사실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김해 명월사 사적비>에는 수로왕과 허왕후가 만전에서 만나 신혼을 보낸 후 그들이 처음 만난 이 산을 기념하여 수로왕이 명월산(明月山)이라 이름 짓고 훗날 절 세 곳을 세웠다 한다. <"길이 나라를 위해 축원하는 도량으로 하였는데 신국사는 세자를 위해 세운 것으로 산 서쪽 벼랑에 있고, 진국사는 허왕후를 위해 세운 것으로 산 동쪽 골짜기에 있으며, 흥국사는 왕 자신을 위한 것으로 산 가운데 있으니 곧 이 절로서 지금은 삼원당(三願堂)이라 부르는데 두 절은 다만 터만 남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작년 2020년 봄, 김해의 향토 사학자 정영도 선생과 주포 마을에 탐사차 갔는데 별 소득 없이 마을을 나오다 우연히 밭에 일하시는 70대 초반의 어르신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송일성이란 분으로 주포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을 벗어난 적이 없는 토박이셨는데 그분을 통해 주포 마을의 내력과 사라진 옛 절터에 대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어르신께 수로왕과 허왕후에 대한 얘기를 물으니 눈을 반짝이며 신나게 말씀하셨다. 이분이 젊었을 때 마을의 노인들 하시는 말씀이 여기 주포마을에서 수로왕과 허왕후가 만났다 하였다. 그리고 주포마을이 옛날에는 배가 들어오는 포구였고 마을 아래의 논밭들도 바다였다고 하였다.

 마을 아래의 논밭을 `뜨물뜰`로 불리는데 과거 마을 뒤에 있었던 큰 절에서 법회 때 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은 그 물이 아래의 논까지 내려와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였다. 그리고 어르신이 젊었을 때 산에 나무하러 가면 옛 절터를 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산림이 울창해져서 어디가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다 얼마 후 지인의 소개로 주포 마을 출신의 도예가 웅천도예 대표인 사기장(沙器匠) 최웅택 선생을 만났다. 그를 통해 진국사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며 5월 초에 향토 사학자 정 선생과 둘이서 답사를 하였다. 답사 중 만난 산나물 캐는 할아버지의 안내로 산 정산 8부 능선쯤에서 오래된 축대를 발견하였다. 하지만 산 동쪽 골짜기에 있었다는 진국사 기록과는 부합하지 않는 위치여서 그날은 답사를 중단하고 하산하였다. 그래도 새로운 터를 발견하였고 여러 점의 기와 조각과 도자기 파편만으로도 답사의 수확이 있었다.

 일주일 후 최웅택 대표와 그의 후배 이승주 학예사, 그리고 정 선생과 나 네 명이 다시 진국사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우리는 <명월사 사적비>의 기록을 따라 보배산 동쪽 골을 탐색하던 중 드디어 허왕후를 위해 지었다는 진국사지로 추정되는 터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터는 두툼한 언덕 위에 자그마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주변의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져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주변으로 석축의 흔적이 몇 군데 있었으며 그 방향은 정동향이었다. 사지에서는 3~4m 간격으로 자연석 주춧돌이 여러 개 있어 건물지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시기가 다른 다양한 종류의 기와 파편과 도기 조각이 흩어져 있었는데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번 가람을 증축했다고 추정할 수 있었다.

 이후 몇 번의 답사 끝에 대한불교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에 연락하였더니 한 달이 좀 지난 6월 말 학예실장과 세 명의 관계자가 와서 대략적인 조사를 하고 갔다. 관계자의 말로는 정확한 것은 시굴조사나 발굴조사를 해봐야 하나 기와 파편과 터의 위치로 보면 절터임은 분명하고 폐사지 조사사업에 등록시키겠다고 하였다.

 300여 년 전의 <명월사 사적비> 기록에는 진국사가 이미 폐사되었다 하였고, 그 이후 근래까지 보배산 동쪽에 또 다른 사찰을 지었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이 터는 진국사지임이 유력해 보인다. 옛 기록을 따라 탐색해 보니 그 기록은 허망하지 않았고 유래된 지명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득은 산 동쪽에 있었다는 이 진국사지의 발견으로 인해 산 서쪽에 있었다는 신국사지의 존재도 확신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비록 절은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지고 땅과 인연했던 모든 사람들도 떠났지만 빈터에 흩어져 있는 기와 조각들과 주춧돌, 허물어진 돌 축대가 `말 없는 말`을 하며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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