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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방담]마지막 마음공부-심경
[춘추방담]마지막 마음공부-심경
  • 이광수
  • 승인 2021.12.12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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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사람의 마음 다스림을 연구하는 학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학자들의 관심사였다. 서양에서는 자연과학의 한 분야로서 인간과 동물의 심적 현상에 대한 연구로 심리학(Psychology)이 발달하였다. 심리학은 혼자 있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있는 개인의 마음과 법칙을 규명하는 과학이다. 그러나 동양의 경우 마음의 이치를 객관적(과학적)으로 밝히려는 이론적 심리적인 심리학은 없었다. 마음 수양과 도의 추구 또는 새로운 의식 상태를 목표로 하는 심학(心學)이 오랫동안 발전되어 왔다. 동양심학연구의 본류는 유교경전인 사서육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때까지 경전에서 부분적으로 다뤄졌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집대성한 것은 중국 송대의 정치가이자 유학자인 서산 진덕수(眞德秀)이다. 그는 서경, 시경, 주역, 논어, 중용, 대학, 예기, 악기 등 사서육경의 경전과, 주돈이, 정이, 범준, 주희 등 송대 성리학자들의 저술에서 심성수양과 관련된 글을 뽑아 37장으로 편집된 <심경(心經)>을 편찬하였다.

 <심경>은 한유(漢儒)이래 형성되어 온 도통(道統)의 관점에서 유가적 도통의 내용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 도통(道統)은 인간의 마음은 본래 하늘이 명한 본성으로 선한 도덕성(맹자의 성선설)을 갖추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한 도덕성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심법(心法: 마음을 다스리는 법)인 도통은 요임금 순임금, 우왕 탕왕, 문왕 무왕 주공, 공자, 맹자를 거친 후 대가 끊어졌다. 그 후 송나라 때 주돈이, 정호, 정이, 주희를 중심으로 한 성리학자들에 의해 계승된 것이다. <심경>은 도덕적 인격수양과 관련된 삼경(三經)의 여러 구절과, 인(仁)이라고 하는 내면적 인격성에 관한 공자의 반성적 통찰과 실천방법론으로 인간의 마음을 수양하는 유학의 핵심적인 이론들을 망라하고 있다.

 <심경>은 명대에 이르러 정민정이 주석과 해설을 붙여 <심경부주(心經附註)>를 저술 했는데 그는 양명학적 요소를 반영하여 <심경>을 재해석해 주를 달았다. 중국 송대~명대를 거쳐 확립된 <심경>과 <심경부주>는 조선조 성리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성리학에서 중요 탐구와 토론의 주제였던 심성론(心性論) 중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과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은 바로 마음의 수양과 방법론인 <심경>과 일치하였다. 이런 이유로 조선에서는 15세기 후반 <심경>을 <소학> <근사록>과 함께 성리학의 필독서로 인식되었다. 16세기 중반 퇴계 이황이 <심경후론>을 저술한 후 <심경>에 대한 조선 학자들의 연구와 주석서가 우후죽순 출간되었다. 조선조 <심경>관련 대표주석서로는 이황의<심경후론> 이함형의<심경강록> 송시열의<심경석의> 이익의<심경질서> 정약용의<심경밀험>등이 있다.(이광호 외ㆍ국역심경주해총람)다산 정약용은 `자찬 묘비명`에서 `나는 일생동안 육경과 사서로 나의 몸을 닦아 왔다. 그리고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심서>로 천하국가를 경륜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했다. 이로써 나는 학문의 본말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아주는 이는 적고 비판하는 이는 많다. 만약 하늘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저 횃불로 내 모든 책을 모조리 태워버려도 좋다.`고 썼다. 그는 명군 정조임금과 함께 조선의 문예 부흥기를 이끌다가 신유박해로 18년 동안 유배생활의 고초를 겪었다. 그는 <소학>과 <심경>에 심취해 이 두 책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어<소학지언>과 <심경밀험>을 지었다. 다산은 <심경밀험>의 머리글에서 `…오직 <소학>과 <심경>이 여러 경전들 가운데 특출하게 빼어났다. 진실로 이 두 책에 침잠해 힘써서 소학으로 외면을 다스리고, 심경으로 내면을 다스린다면 거의 현인(賢人)의 경지에 이르지 않을까…<심경밀험>은 몸으로 체험하여 스스로 경계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죽는 날까지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힘을 다하고자 하며 경전을 공부하는 일은 <심경>으로 끝맺고자 한다.`고 했다.

 긴 유배생활과 형제들의 죽음으로 다산이 마주했던 마지막 삶의 주제는 바로 마음을 다스리는 <심경>임을 고백하고 있다. 500여 권의 저서를 펴낸 불세출의 천재 다산 정약용. 그의 허한 심중에서 우러나는 처연한 울림이 비수처럼 다가온다. 하루하루 의미 없이 보낸 정리되지 못한 삶의 미련들은 시간이 가면 독이 되어 차곡차곡 쌓인다. 내 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마음의 독. 그 독을 다스리는 일이 인생 마지막 마음공부이다. 마음공부는 내 마음을 나다운 것으로 채우는 과정이다. 조선의 대유학자들이 인생의 마지막 경지에서 왜 그토록 <심경>에 침잠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을 사람다운 인격체로 다스리는 마음공부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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