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3:42 (목)
[춘추탐방] 지도자다움의 품격
[춘추탐방] 지도자다움의 품격
  • 이광수
  • 승인 2021.12.0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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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중국 송나라 정치가이자 대학자인 서산 진덕수(眞德秀)가 쓴 <대학연의(大學衍義)>는 사마광이 쓴 <자치통감(資治通鑑)>과 함께 제왕학의 핵심 교본이다. <대학연의>는 사서오경(四書五經)의 하나인 <대학(大學)>의 깊은 뜻을 알기 쉽게 풀어서 쓴 책으로 중국은 물론 조선조의 임금뿐만 아니라 모든 관리들이 곁에 두고 필독한 제왕학의 으뜸서이다. 독서광인 세종대왕은 이 책을 항상 곁에 두고 100독이나 했다고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임금다움(德)과 예(禮)를 사서오경은 물론 여러 경전과 전적들에 기록된 글들을 골라내어 올바른 왕도의 길을 제시한 책은 드물 것이다. 필자 역시 <대학>은 접해봤지만 뒤늦게 <대학연의>를 읽고는 온몸에 전율을 느낄 만큼 깊은 감동을 받았다. 모범사례로 든 각종 전적의 글들을 <대학>의 `다움`과 `예`에 맞추어 자유자재로 풀어낸 진덕수의 유려한 명문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학연의>의 요체는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으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해야 한다는 <대학>의 핵심을 각종 경과 전적의 사례를 들어 임금께 고한 형식의 글이다. 이런 방대한 내용 중 <서경(書痙)>에서 제왕의 근본을 논한 `중훼지고(仲훼之誥)`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은나라(상나라) 신하 중훼가 탕왕에게 어떻게 해야 임금다움의 근본을 세울 수 있는지를 고한 글이다. "임금다움(德)이 날로 새로워지면 사방 각국들이 우리 임금을 흠모하고, 반대로 뜻이 자만해지면 구족(九族:고조, 증조, 조, 부, 나, 자, 손, 증손, 현손)이 그 즉시 떠나 버릴 것입니다. 왕께서는 큰 다움(大德)을 밝히시어 백성들에게 중도(中道:표준)를 세우십시오. 의로움(義)의 잣대로 국사를 처리하시고, 예(禮)로 마음을 다스리셔야 후손들에게 넉넉함을 드리울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들은 바를 말씀드리면 능히 스스로 스승을 얻는 자는 왕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보다 못하더라도 깔보고 무시하는 자는 망한다고 했습니다. 옛말에 묻기를 좋아하면 여유가 있고, 자기지혜만 고집하면 작아진다(소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진덕수는 이를 다시 세세하게 풀어서 <서경> `중훼지고`의 깊은 뜻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상나라 신하 중훼는 탕왕으로 하여금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데 힘쓸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사양지심(辭讓之心)이 항상 몸에 배이도록 하여 마음이 공효(功效:보람)를 나타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몸에 임금다움(德)을 닦아 배도록 해 날로 새로워지게 하고(又一新)그치지 않는다면, 사방 각국과 만백성이 우러러 흠모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자만하여 하루하루 태만해지면 임금들이 제대로 일을 끝내지 못하게 되고, 다스림(治世)과 난세(亂世)가 나눠지는 것도 결국은 자만과 나태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힘써서 밝고 큰 다움을 밝힌다(明明德)는 것은 그 다움이 나날이 새롭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는 무소대덕(懋昭大德)으로 늘 힘써 밝히려고 한다는 것으로 <대학>에서 반명(盤銘:목욕탕에 새긴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 무소대덕은 몸을 닦는 수신(修身)을 뜻하는 것으로 명명덕과 같은 뜻입니다." 임금의 중도는 백성이 중도가 생겨나는 원천으로 무릇 임금은 후세들이 본받을 모범이 되어 수신해야 함을 뜻한다. 자신의 선(善)을 너무 과시해서도 안 되니 이는 선이란 자질에 의해 흥할 수도 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텅 빈 마음(虛心)으로 묻기를 좋아한다면 그것은 천하의 선이니 모두가 자신을 따르게 해 결국 그 덕이 자기에게 귀착된다. 반대로 자만하면 자기 혼자만의 선이니 그런 선은 따름의 선이 아니다. 은나라 탕왕은 빼어난 성인이었지만 그의 충신 중훼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배움을 통해서 탕왕을 더욱 훌륭한 임금이 되도록 인도한 것이다. 뒷글은 필자가 서산 진덕수가 고한 내용을 요약해서 재정리한 것이다.

 <대학연의>의 글들은 3000년 전의 일을 기록한 것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처한 정치사회현실과 비교해 봐도 하나도 틀린 말이 없다. 대통령부터 각급 지자체장은 물론, 기업체의 CEO, 각종 사회단체장까지 지녀야 할 리더다움과 예의 근본을 제시한 금언이다. 예나 지금이나 성군이나 명군, 명현도 있었지만 다움과 예를 망각한 폭군과 아둔한 지도자로 인해 그 백성과 국민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핍박을 받았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칭 대통령감이라고 사자후를 토하는 후보자 중 <대학연의>에서 말한 `다움과 예`의 품격을 갖춘 자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정책대결은 실종된 채 흑색선전과 마타도어가 난무하는 선거판에 실망감을 금치 못한다. `무식 무능 무당`과 `무법 무정 무치`는 바로 우리정치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현주소이다. 정치인들에게 `다움과 예`를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다름없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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