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1:14 (금)
복수의 기억법이 서서히 힘을 쓴다
복수의 기억법이 서서히 힘을 쓴다
  • 류한열 기자
  • 승인 2021.11.24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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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내년 3월 9일 대선을 앞두고 여야는
프레임을 들고 나올 공산이 크다.
지지율 차이가 벌어지면 옛날 기억법을 동원하는데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정권이 바뀌면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의 장이 항상 열렸다. 여당은 전 정권의 적폐를 들춰내 바른 정치를 세우는 명분을 삼고, 야당은 과거를 들춰 애꿎은 사람을 잡는 보복 정치라고 날을 세운다. 청산과 보복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라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기 때문에 칼을 쥔 쪽이나 방패를 든 쪽이나 피할 수 없는 한판이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을 내세워 칼을 휘두르는 장면은 어떤 정권에서도 봤던 판박이일 수도 있는데, 이번 적폐 시리즈는 너무 길다. 아무리 내용이 알차도 끝 모르고 진행되는 이야기는 심드렁해지기 마련이다. 여당은 초기에 이명박 정부를 사찰 공화국, 댓글 공화국이라고 몰아부쳤다. 여당과 정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공세를 하고 있다. 어쩌면 예외 없이 모든 정권이 비슷한 정치 행위를 한다. 앞으로 정권이 바뀌면 다시 한풀이 칼이 춤추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청산과 보복이라는 프레임 싸움을 하다 보면 본질은 날아가고 이슈 선점에 집중하는 경우가 잦다. 양측은 프레임 싸움을 주도하기 위해 온갖 논리를 갖다 붙여 상대를 꺾으려 한다. 프레임 싸움은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 모호하기 때문에 목소리가 크면 정의롭게 비친다. 그래서 사생결단식 싸움이 벌어진다. 프레임 싸움에서는 힘 있는 여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잊을만 하면 나오는 반일 프레임은 당연히 여당에 힘이 된다. 여당은 이 프레임을 필요할 때면 선거에 활용할 수도 있다. 정치 감각이 있는 사람은 내년 대통령 선거의 승패는 강력한 프레임을 거는 쪽이 이긴다는 말까지 한다.

 정치판에서 복수의 기억법은 단순하면서 상대를 오직 죽이는데 매몰되기 십상이다. 복수자는 칼을 정의의 이름으로 들지만, 칼끝에 한이 맺혀 있기 때문에 막무가내식이 될 수 있다. 복수자의 칼은 상대를 정확히 겨룬다. 거기에 자비나 망설임이 없다. 복수자는 거대한 프레임 싸움에서 자신을 정의의 기사로만 여긴다.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 프레임이 아직 힘을 쓰는 시점에서 여야는 자신들의 정치 기억법을 떠올린다. 청산과 보복의 프레임에 끼워 넣는 또 다른 프레임은 복수자의 기억법을 따라야 한다. 프레임으로 일어서면 언젠가 프레임 때문에 무너진다는 걸 알면서도 철저하게 기억법을 따른다.

 이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는 놀라운 반전이 있다. 병수는 망상 속에서 착각을 했을 뿐 모든 사건을 자신이 저질렀다. 살인자의 기억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충격적인 반전에 많은 독자가 짜릿한 전율을 막판에 느낀다. 정치인들도 자신의 기억법이 거대한 프레임 속에서 자신을 속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치인의 기억법이 `교과서`대로 돌아오는 날이 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내년 3월 9일 대선을 앞두고 여야 어느 쪽이든 거대한 프레임을 들고 나올 공산이 크다. 지지율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 사생결단식 옛날 기억법을 동원하는데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치가 만든 복수의 악순환을 세우지 못해 돌아가는 형국에서 선거 승리는 지상 명령이다. 정치판이 부드럽지 못하고 칼끝처럼 서슬 푸른 마당에 승리만이 답이다. 앞으로 여든 야든 선거 승리 후 복수자의 기억법을 동원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현재로서는 부정적인 생각이 짙다.

 복수의 기억법이 더 힘을 쓰는 시간이 오고 있다. 아름다운 이름을 하고 가장 추한 목적을 위해 기억법은 다시 한 번 가동될 것이다. 눈을 뜨고도 당하는 이 기억법의 위세는 대단하다. 당하는 쪽의 피해가 너무 크지만 복수의 기억법을 단순히 추억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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