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1:51 (금)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이기는 법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이기는 법
  • 허성원
  • 승인 2021.11.23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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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의 여시아해(如是我解)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마차를 말에 앞세워라(車在馬前 _ 禮記 學記篇).` 경험 없는 어린 말에게 처음부터 멍에를 씌워 마차를 끌게 할 수는 없다. 노련한 말이 끄는 마차 뒤를 한동안 따라다니면서 마차의 움직임을 충분히 몸으로 익히고 나면 비로소 멍에를 씌워 마차를 끌게 한다. 이처럼 모든 새로운 일은 앞선 누군가의 행위를 뒤따르며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비즈니스도 다르지 않다. 대부분 남들이 간 길을 답습하며 시행착오의 리스크를 줄인다. 하지만 그저 남의 뒤만 좇아서야 언제까지나 추종자의 신세에 머물러야 한다.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이기지 못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의 역설(Paradox) 중 하나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인 아킬레스는 인간 중에서 가장 빠르다. 그런 아킬레스가 거북이와 달리기 경주를 한다면 공정을 위해 거북이를 상당 거리 앞세운다. 경주가 시작되고 아킬레스가 달려 거북이의 출발점까지 이르면 거북이도 어느 정도 앞으로 나가 있다. 아킬레스는 그 거리만큼 더 달려야 하고, 그동안 거북이는 또 조금 앞서 가 있다. 이러한 추적은 무한 반복된다. 그리하여 아킬레스는 거북이에게 한없이 가까워질 수는 있지만 결코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 제논의 논리이다.

 `아킬레스와 거북` 이야기는 일견 논리적으로 그럴 수도 있어 보이지만 실재할 수 없는 상상의 가설이다. 그래서 역설이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비즈니스 현장에서 종종 목격된다. 거북이처럼 앞서가는 선발기업이나 기존 산업이 있고 아킬레스처럼 그 뒤를 따르는 후발기업이 있다. 많은 후발기업은 다른 방향을 아예 보지 않고 앞선 모방 대상인 경쟁자를 추종한다. 거북이가 움직이면 함께 움직이고 멈추면 함께 멈추는 것이다. 이런 추종관계는 특히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퍼스트 무버(First Mover)와 그를 민첩하게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사이에서 많이 나타난다. 패스트 팔로워가 아킬레스처럼 뛰어난 역량을 가졌더라도, 맹목적인 추종전략으로는 아무리 느린 퍼스트 무버도 추월하지 못한다는 것이 제논의 가르침에 있다.

 앞서 달리는 퍼스트 무버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두려움과 위험을 감수한다. 하지만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며 그 시장의 패러다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지배력을 누린다. 이에 반해 추종자는 퍼스트 무버가 만든 패러다임에 따라 그 시장의 일부를 소극적으로 나누어갖는 데 만족한다. 하지만 따라잡아야 할 목표가 명확하고 대부분의 리스크는 앞선 퍼스트 무버에 의해 해소되거나 노출되어 있어 수월한 무임승차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한때 우리 기업들도 이런 추종전략으로 큰 성장을 이루었지만, 이제 시대의 변화는 그런 추종을 편히 즐기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추종은 그 자체로서 성장과 지속가능성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시대의 아킬레스는 어떻게 하면 추종의 덫을 벗어나 거북이를 이길 수 있는가. `추월하기 위해서는 거북과 `같은 길`을 따른다`는 제논의 전제를 과감히 뒤집어야 한다. `같은 길`은 퍼스트 무버가 설정해둔 패러다임이다. 그 패러다임은 좋은 배움 대상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을 곧 파괴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바로 창조적 혁신이다. 창조적 혁신에 성공하면 새로운 퍼스트 무버의 지위를 갖게 된다.

 선풍기나 다리미는 기술적 진보가 매우 더딘 대표적인 거북이 산업분야이다. 그러나 다이슨의 선풍기는 웬만한 붙박이 에어컨보다 훨씬 비싸고, 로라스타의 다리미는 한 세트의 값이 400만 원이 넘어 고급 의류관리기인 스타일러를 2대 사고도 남는 가격이다. 애플도 노키아 등이 탄탄하게 지배하던 휴대폰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어 대부분의 선발 주자들을 무너뜨리고 순식간에 휴대폰 시장의 지배적 강자가 되었다. 이들은 모두 기존의 질서를 깊이 파악하고, 새로운 가치를 시장에 제공하는 치밀한 파괴 전략에 따라 창의적 혁신에 성공하여 새로운 퍼스트 무버에 등극하였다.

 "난초를 그리는 데 있어서는, 법(法)이 있어도 아니 되고, 법이 없어도 아니 된다(寫蘭有法不可無法亦不可)". 법(法)은 모방이며 배움이다. 그래서 모방은 창작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모방 없이는 창작 또한 없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가르침이다.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이기는 법은 바로 여기에 있다. `거북이를 따라서도 아니 되고 거북이를 따르지 않아서도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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