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2:43 (목)
투표의 기준
투표의 기준
  • 김은일
  • 승인 2021.11.23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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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일 변호사
김은일 변호사

 1979년 5월 총선에서 대처의 보수당은 자신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전임 노동당 정권의 실정으로 거의 공짜로 집권했다. 대처는 집권하자마자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동조합 개혁, 국영기업 민영화와 함께 임대주택을 거주자인 사회 취약계층에 매각하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해당 주택이나 아파트에서 산 기간에 따라 많게는 시가의 반값 또는 최소 3분의 1까지 할인해서 불하받도록 했다. 대처는 이렇게 해서 임대주택 680만 가구 중 210만 가구를 팔아 치웠고 이 돈으로 적자재정을 메웠다. 이 정책은 적자 재정을 메꾸어 영국병을 치유하는 방안이기도 했으나 보수당의 정치 전략과도 맞아떨어지는 일거양득의 정책이었다. 이 정책으로 사회 취약계층 중 210만 가구가 자기 집을 소유하게 되었는데, 이후 불어닥친 주택가격 상승 광풍에 힘입어 엄청나게 집값이 올랐다. 대대로 취약계층으로 살아온 이들은 자신 이름으로 된 부동산이 생기고 값까지 올랐으니 흡사 중산층이 된 듯한 기분에 빠졌고, 전통적 노동당 지지자인 이들은 과반수 이상이 보수당 지지자가 되었다. 대처 보수당 정권으로 봐서는 재정적자도 메우고, 임대주택 관리비도 없어지고, 보수당 지지자도 늘리는 일거삼득의 효과를 얻었다.

 김수현이라는 사람이 있다. 배우 김수현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연이어서 부동산 정책을 총괄했던 사람이다. 그는 2011년 `부동산은 끝났다`라는 책을 쓴 적이 있는데, 이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한다. "자가 주택 소유자는 보수적인 투표 성향을 보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진보적인 성향이 있다"며 "자가 소유도 주거 형태에 따라 달라지는데 다세대 다가구 주택이 재개발되어 아파트 단지로 바뀌면 투표성향도 확 달라진다. 한때 야당의 아성이었던 곳이 여당의 표밭이 된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고. 서울은 박원순이 시장으로 들어선 10년 전부터 재개발 재건축이 올스톱되었고, 이 정부 들어서는 재개발 재건축 대신 도심재생사업이라는 주택공급이 되지 않는 정책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김수현 책의 내용으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본다.

 최근 친문 맘카페에서 집값 폭등으로 인한 박탈감으로 문재인 집권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글이 많이 올라왔다는 기사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는데, 노무현 정부에서도 집값이 폭등했고 그때도 김수현이 부동산 정책을 총괄했던 것을 기억하고는 이 정부 초기에 집을 산 사람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왜 좌파 정부만 들어서면 부동산 가격이 폭등을 하고 우파 정부 때는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까? 보수정당은 유권자들이 집을 가지는 순간 보수에 가깝게 변하기 때문에 집을 사도록 권장을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강남 보금자리 주택 공급과 박근혜 정부 때의 부동산 금융규제완화 정책이 대표적이다. 공급을 통해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고 금융지원을 통해 주택을 매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의 반대 방향에 있는 것이 현재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다. 조이고 틀어막아 집을 사지 못하게 만든다. 투기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다주택자들에 대한 규제는 어느덧 1주택자들에게, 이제는 무주택자들마저 규제의 틀 안에 넣고 있다. 애초 목적이 투기억제가 아닌 거다. 집을 팔지도 사지도 못하도록 만들어 놓고 임대주택 공급만 떠들어대고 있다. 신규 공급, 기존 주택 공급 모두 막혀 있으니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단순히 무주택자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정권의 지지층으로 고정시키는데 한계가 있으니 집값을 올리는 카드를 병행하는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불만이 가득한 사람이 늘어나게 해서 그 계층을 묶어두는 것이다. 특히나 강남, 다주택자 등 가진 자들을 구분해 편가르기를 하면 그 효과는 더 커진다.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라는 것은 지극히 냉정하고 현실적인 행위여야 한다. 누가 선하다 악하다, 옳다 그르다 판단할 필요도 없다. 나름의 선함과 나름의 옳음이 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수하지 않는 투표를 위해서는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하는 것이 나에게 더 유리한가, 내 삶의 만족도를 더 높여줄 수 있는가 하는 기준만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념이니 정의니 하는 헛소리는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원래 진리란 단순한 것이다. 내 집을 가지려고 절약하고 노심초사하는 노력을 하기 싫고 국가에서 주는 임대주택에서 평생 월세로 사는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좌파 정당에 투표하고, 절제하고 더 땀을 흘리며 살더라도 내 집이라는 내 자산을 가지고 싶은 사람은 우파 정당에 투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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