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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신문]특별한 존재ㆍ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우리는 ‘한국인’이에요
[다문화신문]특별한 존재ㆍ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우리는 ‘한국인’이에요
  • 이정민 기자
  • 승인 2021.11.18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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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자ㆍ이민자ㆍ귀화자 그들은 누구

 국내 이주민은 약 200만 명, 다문화 가족은 약 35만 가구가 살고 있으며, 이 중 김해시 이주민의 수는 3만 1744명으로 경남에서는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다문화 가구는 총 3683가구에 이른다. 편견과 차별 속에서 국내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이주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으며 그들은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짧게는 12년, 길게는 18년간 국내에서 생활한 농협 은행 김해시지부 통역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태희(38) 씨, 의료ㆍ경찰서 민간 통역 등 프리랜서 통역사 및 보험설계사로 활동 중인 귀화자 양은진(36) 씨와 경찰서 민간 통역 등 프리랜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영주권자 양잔나(28) 씨가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이다.

김태희 씨
김태희 씨

<김태희 김해 농협은행 통역사>

한국남편과 결혼 후 2004년 이주
한국어 사용 위해 센터ㆍ집에서 공부
다른 외모ㆍ옷차림 속 따가운 시선 느껴
한국말 이해ㆍ직접 선거권 획득ㆍ투표로
진정한 한국인으로 거듭났다고 생각

 농협 김해시지부에서는 외국인들의 통역을 맡은 김태희(38) 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태희 씨는 2004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기 전까지 베트남에서 태어나고 자란 베트남인이다. 한국에 오면서 꽃길이 펼쳐진 것은 아니었다. 한국어가 서툴고 발음이 어려워 2년 동안 김해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현 김해시가족센터) 개소와 동시에 한국어를 공부했고, 또 집에서도 철저한 예습과 복습을 하며 한국어를 익혀나갔다고 한다. 이후 김해시가족센터에서의 강사 생활, 아동 양육지원자 활동 등을 하며 점차 한국 문화, 언어에 녹아들며 2014년부터 농협은행 통역사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언어, 문화 등 힘든 점이 없었냐고 묻자, 태희 씨는 “많죠,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아직 다문화에 대해 익숙하지 않으셔서 그런지 옷차림, 말투 등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택시를 탈 때 어딘가 모르게 멀리 돌아서 가는 경우도 있었어요”라며 “그러나 지금은 다문화 관련해 인식이 많이 변화해서 현재는 그런 상황을 겪는 경우는 드물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안 좋은 경험을 겪은 그녀에게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네, 있어요. 처음에 한국을 왔을 때 안 좋은일을 겪어서 당연히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처음에 한국어를 아예 몰랐던 제가 현재 남편의 말이나 직장 동료들의 말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답변을 해줄 때 내가 진정한 한국인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덧붙여 “그리고 베트남에서는 정치인들에 대한 투표를 할 수 없었고,그런 기회가 없었는데, 한국서 선거권을 가지고 제가 직접 대통령, 시장 등 정치인들을 내 손으로 뽑는다는 것이 제가 진정한 한국인이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해요”라고 말했다.

양은진 씨
양은진 씨

<양은진 고려인 통역ㆍ보험설계사>

남편과 함께 한국행ㆍ2006년 귀화해
18년간 다양한 업무ㆍ아이 양육하며
한국사회 구성원 자리매김ㆍ인식전환
한국 교육, 자유롭고 분위기 좋아

 양은진(36) 씨는 아버지ㆍ어머니가 모두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고려인이자 본인도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이다. 은진 씨는 2003년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왔으며, 2006년 귀화 신청을 통해 한국 국적을 갖게됐다.

 그녀는 김해시가족센터에서 3년 동안 통역 업무를 맡았으며, 그 이후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해 커피숍 근무, 경찰서 민간 통역 업무, 2014년부터 보험설계사로 활동하며 한국어를 하며 산 지는 18년이 훌쩍 넘어 이제는 한국어로 일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도 가끔 한국인과 다른 발음이나 억양을 이유로 “너 외국인이지?”란 말을 듣기도 한다. 또한, 의료 통역사로 다른 이주민의 병원 진료에서 통역을 할 때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과 비슷한 외모, 능숙한 한국어 실력을 갖춘 은진 씨에게도 “너 외국인이지?”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외모 지적으로 기분이 나쁜 것일까?라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면 그녀는 단호하게 “아니요. 외모 지적으로 기분이 나쁜게 아니라 저는 이미 한국인인데 저를 그분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으로 ‘다른 국적의 사람’이라고 보는 게 기분이 나빠요”라며 “처음에는 우즈베키스탄의 문화와 한국사회의 문화가 조금은 달라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다양한 업무를 접해보고 한국에서 3명의 아이를 출산ㆍ양육을 하며 자연스럽게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매김 한 것 같아요”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목소리에서 한국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이어 그녀는 “우즈베키스탄은 너무 주입식 교육이고, 외워야 할 게 많다면, 한국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또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다르기도 하고 아이들에게는 좋은 학습 환경인거 같다”고 한국 교육에 대해 칭찬하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양잔나 씨
양잔나 씨

<양잔나 혼혈 프리랜서 통역사>

어머니 구직활동 위해 함께 한국행
조금 특별한 외모로 시선 많이 느껴
영주권자 면접 위해 한국 역사 공부 중
한국인이란 인식 마음 속에 자리 잡아

 이어,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으로 두 국가의 피가 흐르고 있는 영주권자 양잔나(28) 씨에게 한국 생활의 경험, 한국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등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잔나 씨는 2008년 어머니가 일하러 한국에 오며 같이 넘어오게 되었고, 2012년 영주권자 면접을 통과 후 한국 영주권을 가지게 됐다. 그녀는 경찰서를 출입하며 통역을 하는 프리랜서 통역사로 영주권자 면접에서도 한국어를 구사하는 데 큰 어려움 없이 통과했지만 이국적인 외모로 버스를 탈 때 옆자리에 착석하지 않는 등 이방인으로 보는 시선이 늘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그럴때마다 잔나 씨는 “처음엔 기분 나빴지만 이젠 내 외모가 남들 눈에는 튀어 보일 수 있지”라는 긍정적인 사고로 넘겼다고 웃으며 말했다.

 조금은 특별한 외모를 지닌 잔나 씨에게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당연히 저는 한국인이죠. 혼혈이라는 점이 가장 제가 한국인이라고 느끼는 부분 중 크게 작용하지만, 영주권 면접을 위해 한국 역사, 애국가 등 한국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내가 한국인이다라는 생각이 마음 속에 자리 잡았고, 면접관들 앞에서 애국가 완창한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라며 면접을 위해 노력했던 추억들을 덧붙였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김태희 씨, 고려인 한국 귀화자 양은진, 영주권자 양잔나 씨와의 인터뷰 속 느낄 수 있었던 점은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이나 이주배경이 있는 내국인은 이제 특별한 존재가 아닌 우리의 이웃이자 동료, 가족이다. 또한,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민여성, 다문화가족, 이주노동자, 귀화자 등 다양하게 불렀던 이들의 이름은 ‘새로운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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