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의 이로움인가, 일시의 방편인가
백세의 이로움인가, 일시의 방편인가
  • 허성원
  • 승인 2021.11.1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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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의 여시아해 (如是我解)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최근 눈에 띄는 몇 가지 기사가 있다. 먼저,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의 엔진 결함 은폐 사실을 고발한 내부고발자가 미국에서 280억 원이라는 거액의 포상금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개인은 횡재를 했지만, 거액의 벌금 및 이미지 실추와 함께 백수십만 대의 차량을 리콜한 기업의 입장은 무척이나 곤혹스러울 것이다.

 입찰담합으로 인해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물었던 한 대기업 건설사의 주주들이 전직 대표이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 승소하였다. 특히 대표이사 외에 나머지 이사들에게까지도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사들은 담합 사실을 알지 못했거나 알 수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판결은 대표이사의 업무 집행을 적극적으로 감시하여야 할 이사회의 의무를 강조하면서 그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때 일본의 대표기업이었던 근 150년 역사의 도시바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고 한다. 문어발식 사업 확장의 부담이 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수년 전에 발생한 회계부정이 몰락의 치명타가 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 기사는 모두 윤리 혹은 준법을 어긴 경영 결과에 관련된 것으로, `이익`과 `옳음` 사이의 선택의 갈등에 기인한다. 이런 갈등에 시름하는 리더들은 진문공(晉文公, 재위 BC636~628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씨춘추(呂氏春秋) 효행람(孝行覽)에 나오는 기록이다.

 진문공은 춘추시대 두 번째 패자다. 그의 패자 등극은 당시의 강대국인 초나라를 상대로 한 성복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덕분이다. 이 전투를 앞두고 진문공은 측근의 충신인 구범(咎犯)을 불러 물었다. "초나라는 병력이 많고 우리는 적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구범은 "신이 듣기로는 예(禮)를 좋아하는 임금은 겉치레를 지나치다 하지 않고, 전쟁을 자주 하는 임금은 속임수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임금께서도 그런 속임수를 쓰는 것이 마땅합니다"라고 답하였다. 그러자 구범의 말을 들은 옹계(雍季)가 말했다.

 "연못의 물을 다 퍼내어 고기를 잡는다면 어찌 고기를 잡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다음 해에는 물고기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숲을 불태워 사냥한다면 어찌 짐승을 잡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다음 해에는 짐승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속이는 술책을 쓰면 비록 지금은 훔칠 수 있겠지만 다시는 되풀이할 수 없을 것이니, 올바른 방책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옹계는 소위 `갈택이어(竭澤而漁, 연못의 물을 말려 고기를 잡다)`의 비유를 들어 속임수를 쓰지 말고 정당하게 전쟁에 임할 것을 간언한 것이다. 하지만 진문공은 그 간언을 듣지 않고 구범의 말을 채택하여, 초나라를 성공적으로 무너뜨렸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논공행상에서는 승리의 계책을 제언한 구범을 제쳐놓고 그 계책에 반대한 옹계를 으뜸 공신으로 올렸다. 그러자 좌우 신하들이 그 부적절함을 간하였다. 이에 진문공이 답하였다. "옹계의 말은 `백세의 이로움`이지만, 구범의 말은 `일시의 방편`이다. 어찌 `일시의 방편`이 `백세의 이로움`에 앞설 수 있겠는가." 옹계의 `옳음`은 `백세의 이로움(百世之利)`이고, 구범의 `속임수`는 `일시의 방편(一時之務)`이라 분별하였다. 전쟁에서는 이기거나 살아남기 위해 적을 기만하는 속임수를 쓸 수 있다. 손자병법에서도 `전쟁은 속임수(兵者詭道也)`라고 하고, `정공법으로 대적하여 편법으로 승리하라(凡戰者 以正合 以奇勝)`고 가르친다. 하지만 `속임` 즉 일시의 방편은 임기응변의 불가피한 선택이어야 한다. 속임의 방편으로 만대에 이어져야 할 나라의 사직을 지킬 수 없다. 그래서 진문공은 비록 `옳음`을 버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지만 그 `옳음`의 귀한 가치를 높이 존중하여 으뜸상을 내렸던 것이다.

 기업의 결함 은폐, 담합, 회계부정은 순간의 이익을 구하는 `속임`이다. 그것은 `연못을 말려 고기를 잡는 일`이다. 이제 갈수록 기업의 부정한 일시의 방편은 법률적 사회적 압박을 더 강하게 받게 되고, 그 지속가능성을 더욱 위협할 것이다. 이익은 눈앞에 있고 옳음은 멀리 있다. 그러나 기업의 지속을 원한다면, 가까운 이익에 마음이 흔들릴 때 반드시 멀리 있는 옳음을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見利思義).

 그러니 모든 선택에 앞서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백세의 이로움인가 혹은 일시의 방편인가. 그리고 또 한 가지 꼭 물어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귀 조직에는 `그름`을 밝히며 `옳음`을 간하는 진정한 사람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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