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뒷모습
아버지의 뒷모습
  • 이광수
  • 승인 2021.11.0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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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Arthur Miller)가 1949년 발표한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 man>은 그해 드라마 부문 퓰리처상과 토니상, 뉴욕비평가 상을 수상했다. 1930년대 미국의 경제대공황을 배경으로 뉴욕 브루클린의 평범한 세일즈맨이 실직 후 좌절과 방황 끝에 자살한다는 이야기다. 한 인간의 인생이 가정과 나라의 역사까지 관통하는 것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처절한 붕괴를 보여주는 한 가족의 비극사이다.

작품 속의 주인공 로먼은 주변에서 아무리 자신을 무시해도 두 아들 비프와 해피의 뒷바라지를 위해 살아간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급료가 낮아져 궁핍한 생활을 계속하다 경제대공황을 만나 회사로부터 해고당한다. 설상가상으로 자기 인생의 마지막 희망인 두 아들마저 낙오자 신세가 되자 실망스러운 두 아들과 매일 다툰다. 실직자의 신세를 면치 못한 그는 장남에게 보험금을 남겨줌으로써 아버지로서의 위대함을 보여주려고 두 아들과 화해한 날 밤 과속으로 자동차를 몰아 자살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장례식 날 아내 린다는 집 할부금 불입을 다 끝내고 빚에서 해방된다. 그녀의 어깨를 평생 짓누르던 무게에서 벗어난 순간, 그 집엔 살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자 남편의 무덤을 향해 울부짖는다. 이 희곡의 부제인 `어떤 2막의 사적회담과 진혼가`가 말해주듯이 모순투성이의 인생은 슬픈 진혼가로 막을 내리는 것 같다. 아버지와 아들은 어떤 관계일까. 세 아들의 아버지인 필자 역시 아서 밀러의 희곡 속 주인공처럼 세상과의 통쾌한 복수충동에 휩싸인 적이 있다. 제 어미를 지켜주지 못한 못난 아비로서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할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세상사는 개인의 사적인 일과는 상관없이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 같다. 지금 아들 셋은 결혼해 나름대로 자신들의 성을 쌓으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17세기 영국의 신학자이자 시인인 허버트는 `아버지 한 사람이 교장 선생님 백 명보다 났다`고 했다. 이는 교육의 원점은 가정에 있으며 아이가 인생에서 맨 처음 만나는 스승은 부모이기에 아이의 사회성을 길러주는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일본의 저널리스트이자 교육자인 가와기타 요시노리는 그의 저서 <아빠 아닌 아버지가 되어라>에서 아버지와 아이는 절대 친구 사이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요즘의 자녀교육 방식과 비교해 볼 때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세대 차이는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필자 같은 구세대는 보다 엄격한 훈육방식을 선호했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부자관계를 친구사이처럼 편안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명작에게 길을 묻다>의 작가 송정림은 오늘날의 아버지에 대한 자화상을 연민이 가득한 시선으로 이렇게 그리고 있다. `세상의 모든 자리가 다 어렵고 고단하지만 아버지의 자리만큼 무겁고 고단하고 외로운 자리는 드물다.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세우고 싶어도 세상 안에서 차지한 당신의 자리는 너무나 작다. 큰소리 한번 치고 싶어도 가진 지갑이 너무나 얇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싶어도 돌봐야 할 식솔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어도 무능한 신세가 되어 두 어깨가 자꾸만 아래로 처져 내린다. 세상 속에서 키가 너무 작아져 버린 우리들의 아버지.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도 차마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아버지. 쓸쓸히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그림이다. 아니 가장 슬픈 노래다. 아버지에게는 단지 가을 아니면 겨울이라는 두 계절만 존재할 뿐, 따뜻한 봄날과 낭만의 계절 여름은 꿈조차 꿀 수도 없는 가련한 신세다` 오늘날의 아버지상을 너무 비관적으로 표현한 면도 있겠지만 고령사회를 맞은 은퇴 후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 그대로이다.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의 자리는 좁아지고 그 권위는 추락하고 있다. 자기 못사는 게 모두 아버지 탓이라며 원망하고 아버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차도 모르는 패륜이 판치는 시대. 독거노인의 쓸쓸한 죽음을 배웅하는 사람은 동사무소의 복지담당공무원이라는 현실이 서글프다. 최근 통계청에서는 우리나라 전체가구의 40%가 독거세대이며 머잖아 서구처럼 50%를 넘어 설 것이라고 한다. 백세장수시대를 맞아 독거노인의 비율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아버지라는 존재의 평가절하는 인구에 회자되는 `삼식이 남편은 이혼대상 제1호`라는 말이 증명하고 있다. 아버지의 일생을 할부인생으로 묘사한 아서 밀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한 오늘날의 아버지상은 허망함과 무기력이 혼재된 정체성 부재의 허상이다. 자신의 신체마저 제 새끼들의 먹잇감으로 남겨주고 일생을 마감하는 가시고기 수놈처럼 형해(形骸)만 남은 아버지의 뒷모습은 외롭고 쓸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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