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0:30 (토)
[서향만리] 정의로운 얼굴을 한 역사의 죄인들
[서향만리] 정의로운 얼굴을 한 역사의 죄인들
  • 류한열 기자
  • 승인 2021.11.04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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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힘은 집단 지성까지도 광기로 몰아넣는다는 역사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 바로 흘러간다

역사의 도도한 물줄기는 어느 한 굽이에서 소용돌이쳐 샛강으로 빠지기도 한다. 샛강으로 흐르던 물줄기가 다시 본류에 합쳐져 거대한 물소리를 내는 역사는 반복한다. 실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진실에 의문을 달 때가 많다. 그렇다고 곤곤한 역사의 외침을 다 가려낼 수도 없다. 시대를 달구는 잡다한 소리도 결국은 진실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묻히게 된다. 주류의 역사가 진실이라는 강요를 당하면서 순응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바른 역사가 뿌리내리기 전에 겪는 엄청난 혼란 속에 있다. `사회 정의가 무언가`라고 묻기도 민망할 뿐 아니라 `사회정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재판 거래 의혹은 개발 비리보다도 더 나쁘다. 사법부의 정의를 쉽게 의심하는 시대를 맞아 국가 정의 흔들고 있다. 재판거래의 사례가 의혹을 넘어 팩트가 된다면 사법부는 부끄러운 얼굴을 오랫동안 달고 다녀야 한다. 많은 사람이 사법부를 불신하고 있어 법의 정의가 위기의 끝에 서 있다. 2019년 초 사법 농단으로 법관 탄핵 명단이 난무했다. 당시 김경수 경남지사의 법정구속을 두고 사법부가 위기에 몰렸다. 사법 농단 연루 판사가 왜곡된 판결을 했다고 진보 측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이재명 재판 거래 의혹에 50억 클럽까지 가세하면서 이래저래 사법부는 `진도 9`의 지진을 맞고 있다.

개인은 도덕적인 사람이라 해도 사회 안에서 한 집단에 속하면 집단 이기주의자로 변할 개연성이 높다. 개인은 죽고 단체를 살리기 위해 개인이 손을 잡아 집단을 만들면 도덕성을 잃는다. 라인홀드 니버가 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들춰보면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민족적ㆍ계층적 충동이나 집단적 이기심을 생생히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니버의 예리한 통찰력이 지금 우리 사회에 그대로 먹히고 있다. 개인이 집단이라는 괴물에 속해 자기 목소리를 죽이고 단체에 조종당하는 모양새다. 옳고 그름은 없고 진영 논리만 힘을 떨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목소리를 상대보다 높여 현재의 역사를 샛길로 몰고 가려는 사람은 역사의 죄인이다. 역사는 역사 자체가 진리를 낳게 하지만 현 역사가 나중에 제대로 쓰일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언론학에서 자주 다루는 `어젠다 설정 이론`은 자칫 사실을 왜곡하는 수단이 된다. 한쪽으로 너무 기운 언론이 어젠다를 의도적으로 내세우면 대중은 그 어젠다에 현혹돼 사실이 아닌 걸 사실로 받아드린다. 지금 진보ㆍ보수가 목소리를 크게 내뿜는 건 대중의 마음을 뺏기 위한 작태라고 볼 수도 있다. 개인의 양심을 무뎌지게 하고 집단의 광기를 덧씌우는 비도덕적 사회가 한창 힘을 받고 있다. 참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최고 권력을 향해 가는 길에 온갖 추악한 일들이 춤을 추고 있다. 한 도시의 땅을 거덜내려고 했던 추악한 개발 의혹, 재판 거래와 검은돈 등등 숱한 비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권력의 힘은 집단 지성까지도 광기로 몰아넣는다는 역사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긴 역사가 던져준 교훈을 되새기며 정의가 힘을 쓸 수 없을 때, 그래도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는 소리 없이 바로 흘러간다고 믿어야 한다.

정의로운 얼굴을 한 역사의 죄인들이 큰판을 만들어 한탕을 하겠다고 벼르는 기운이 가득하다. 이런 기운은 느낌일 수 있다. 하지만 느낌이라고 대충 넘기기에는 실제하는 힘이 전해오고 있다. 우리는 촛불이 만든 일렁거리는 허망한 그림자를 보았다. 온 산을 태울 기세로 거대한 권력을 무너뜨리고 드러낸 실체는 그림자뿐이었다.역사의 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권력을 잡기 전에 가면을 찢어 민낯을 봐야 한다. 또 다시 촛불 그림자로 진실을 덮으려는 권력을 경계해야 한다.

길로 몰고 가려는 사람은 역사의 죄인이다. 역사는 역사 자체가 진리를 낳게 하지만 현 역사가 나중에 제대로 쓰일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언론학에서 자주 다루는 `어젠다 설정 이론`은 자칫 사실을 왜곡하는 수단이 된다. 한쪽으로 너무 기운 언론이 어젠다를 의도적으로 내세우면 대중은 그 어젠다에 현혹돼 사실이 아닌 걸 사실로 받아들인다. 지금 진보ㆍ보수가 목소리를 크게 내뿜는 건 대중의 마음을 뺏기 위한 작태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양심을 무뎌지게 하고 집단의 광기를 덧씌우는 비도덕적 사회가 한창 힘을 받고 있다. 참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최고 권력을 향해 가는 길에 온갖 추악한 일들이 춤을 추고 있다. 한 도시의 땅을 거덜 내려고 했던 추악한 개발 의혹, 재판 거래와 검은돈 등등 숱한 비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권력의 힘은 집단 지성까지도 광기로 몰아넣는다는 역사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긴 역사가 던져준 교훈을 되새기며 정의가 힘을 쓸 수 없을 때, 그래도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는 소리 없이 바로 흘러간다고 믿어야 한다.

정의로운 얼굴을 한 역사의 죄인들이 큰판을 만들어 한탕을 하겠다고 벼르는 기운이 가득하다. 이런 기운은 느낌일 수 있다. 하지만 느낌이라고 대충 넘기기에는 실재하는 힘이 전해오고 있다. 우리는 촛불이 만든 일렁거리는 허망한 그림자를 보았다. 온 산을 태울 기세로 거대한 권력을 무너뜨리고 드러낸 실체는 그림자뿐이었다. 역사의 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권력을 잡기 전에 가면을 찢어 민낯을 봐야 한다. 또다시 촛불 그림자로 진실을 덮으려는 권력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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