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0:57 (금)
백래시, 시대 변화의 행진곡
백래시, 시대 변화의 행진곡
  • 허성원
  • 승인 2021.10.26 23: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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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의 여시아해(如是我解)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걸음이 불편한 노인이 앞서 걷고 있다. 길 폭이 어중간하여 지나치지 않고 뒤따라 천천히 걷는데, 한 젊은이가 나를 툭 치며 빠르게 지나쳐 가서는 노인도 스치며 지나간다. 그때 노인이 적잖이 휘청이다 겨우 바로 선다. 젊음에 추월당하며 위태롭게 흔들리는 기성세대의 모습, 이 사회의 백래시 현상을 연상케 한다.

`백래시`(backlash)는 기계 전문가들에게 매우 익숙한 용어다. 기어와 같이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기계요소는 운동을 전달하기 위해 구동측과 피동측이 서로 접촉하는 곳이 있다. 그 접촉점의 반대편에는 약간의 여유 틈새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런 틈새가 없으면 양측이 서로 꽉 끼여 움직일 수 없다. 양측의 상대적인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그 틈새가 바로 `백래시`다.

구동측과 피동측이 제 기능을 지키면 한쪽 방향으로 접촉이 유지되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역할이 서로 바뀌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오르막을 오를 때는 구동기어가 피동기어에 구동력을 제공하지만, 내리막에서는 중력의 작용으로 오히려 피동기어가 구동기어에 역방향의 힘을 작용하게 된다. 이같이 구동과 피동의 역할이 전환되면 백래시가 문제를 일으킨다. 그 틈새 간격만큼 순간적으로 동력전달이 중지되고, 그 틈새를 메우기 위해 양측은 충격적으로 부딪힌다. 이때 소음과 진동이 발생하고 파손까지 일어날 수 있어 백래시는 가능한 한 작은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정리하면, 백래시는 ① 이끄는 쪽과 이끌리는 쪽 사이를 구분하는 단절된 틈새로서, ② 서로의 움직임을 허용하기 위한 반드시 존재하여야 하며, ③ 역할 변경 등 흐름의 변화가 생길 때 소음이나 파괴의 원인이 되니, ④ 가능한 한 최소로 유지되도록 면밀히 관리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 때문에 `백래시`는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자주 등장한다. 사회는 경제적, 사상적 혹은 정치적으로 나름의 흐름이 존재한다. 그 흐름에는 흐름의 에너지를 제공하여 이끄는 구동측과 그에 수동적으로 이끌려가는 피동측이 있기 마련이며, 그 사이에는 서로를 구분하는 갭이 존재한다. 그 갭이 사회적 `백래시`다. 이에 의해 갑을 관계, 노사 관계, 빈부 격차, 정치성향 등이 비교적 선명하게 구분된다.

백래시가 문제 되는 것은 사회적 변화가 급격히 일어날 때다. 주도 세력의 힘이 약화되거나 변화에 대한 사회적 에너지가 증폭될 때, 그동안 이끌려가던 집단이 변화를 주도하는 입장으로 앞서 나서게 된다. 구동과 피동이 역전된 상황인 것이다. 이때 기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백래시 소음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흑인 인권, 페미니즘 등이 대두되면, 그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반사적으로 나타나 변화를 거부하고 반발하여, 시끄러운 소음이 생겨난다.

백래시 소음은 모든 변화에 어김없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결국 사회는 변화하고, 우리는 그 변화를 부득이 받아들여 적응하거나 고맙게 누리며 살아간다. `야간통금 폐지하면 안보가 불안하다`, `두발 자유화는 교육을 파괴시킨다`, `주5일제로 나라 경제가 망한다` 등 한때 요란했던 그 백래시들은 이제 기억에서조차 아련하다. 최근에는 `군대의 휴대전화 허용, 군대가 개판 된다`, `주52시간제가 제조 기업들의 탈한국을 조장한다`, `선거 연령 18세로 낮추면 고3 교실이 정치판이 된다`, `탈원전 탓` 등의 백래시가 요란하다. 이들 대부분은 머지않아 추억 속의 소리로 사라질 것이다.

가정의 백래시도 집집마다 소란을 일으킨다. 커가는 자녀들을 과거의 사고방식으로 통제하려는 부모의 잔소리가 바로 백래시 소음이다. 기업에서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핵심역량의 변화를 앞서 추진하려 하면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 세력의 백래시도 만만치 않다. 기업의 백래시는 기업의 시대 적응적 변신을 방해하여 결국 그 존립을 위협한다.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수많은 백래시 잡음을 듣고 성가시게 여기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닥친 변화에 저항하며 자신의 백래시 잡음을 스스로 생성하여 보태기도 한다. 그렇게 역사는 온갖 백래시 소음을 흘러간 헛소리로 만들어버리며, 사회 모습을 새로이 구축해가는 것이다.

그러니 백래시는 그저 시끄럽기만 한 소음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를 앞서 일러주는 고적대의 행진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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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1-10-27 23:42:24
좋은 글 감사합니다

또치 2021-10-27 00:11:28
헛소리ㅋㅋ'남녀는 다르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배려해야한다'와 같은 당연한 이야기를 백래시 취급하면서ㅋㅋㅋ나치에 반대해도 백래시냐? 한국에서 페미니즘에 반대하는건 당연한 정의이고 상식이다. 페미니즘이 젊은이들 사이에 성평등을 방해하고 비혼주의를 퍼뜨리고 있는데, 아직도 페미니즘이 좋은건줄 아는 사람이 있다니ㅋㅋㅋ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