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07:31 (목)
허황옥 신행길의 새로운 발견 ③
허황옥 신행길의 새로운 발견 ③
  • 도명 스님
  • 승인 2021.10.18 2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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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 정 담(山寺情談)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가야를 개국한 김수로왕의 아내가 된 허황옥 공주는 2000년 전 인도로부터 25000여 리의 바닷길을 건너 이 땅에 왔다. 망산도에서 그녀의 배가 처음 조망된 이후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허황옥 신행길의 지점들을 하나씩 탐색해 보고자 한다.

승점(乘岾: 승재)

승점(乘岾)은 승재(乘岾)로도 발음이 가능하다. 다만 `승재`라 했을 때는 고개를 지칭하는 명사이고, `승점`이라 했을 때는 고개 또는 지역(땅 이름)을 지칭하는 명사로 활용된다.

『가락국기』에서 수로왕은 유천간에게는 망산도, 신귀간에게는 승점으로 가라고 지시한다. 이에 따라 유천간이 공주가 탄 배가 오는 것을 보고 망산도에서 횃불로 신호를 하면 신귀간이 이를 확인하고 수로왕에게 보고하려는 장소가 승점이다.

공주가 도착할 때 "유천간이 망산도 위에서 횃불을 올려 공주가 왔다는 사실을 알렸고, 신귀간이 이를 바라보고는 대궐로 달려와서 왕께 아뢰었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승점은 망산도와 앞 바다를 잘 조망할 수 있는 육지의 한 지점이라야 하는데 그곳은 오늘날 녹산동 관음사 뒤쪽 언덕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가락국기>에 승점은 연하강야(乘岾輦下岡也)라고 나온다. 승점은 공주가 산 바깥 별포 나루터 입구에 배를 대고 산령에게 비단바지를 바치는 폐백을 위해 공주의 가마를 내린 언덕이다.

유주지(維舟地)

공주가 탄 배가 처음 정박한 곳이 말무섬 동쪽, 현재 유주비각이 있는 `유주지`이다. 유주지는 별포 나루터 입구 높은 언덕에 위치한 승점에서 보면 정박한 공주의 배가 잘 보이는 지점이다. 처음 배는 정박했지만 선원들과 공주는 내리지 않은 걸로 보인다. 이후 공주의 도착 보고를 받은 수로왕이 환영 사절로 구간(九干)들을 보내나 공주는 "나는 평소 그대들을 모르는 터인데 어찌 감히 경솔하게 따라갈 수 있겠는가"하고 거절하였다. 이후 수로왕이 직접 마중 오겠다는 전갈을 받은 공주는 하루를 배 위에서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종궐(從闕)

공주가 구간으로 구성된 환영 사절을 거절하자, 수로왕은 자신이 직접 관리들을 인솔하여 종궐에 온다. 이때 `종`(從)의 의미는 「궐을 따라」라는 동사의 의미도 있지만 신답평에 있는 본궐(本闕)에 종속된 지방의 관청이란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수로왕은 행차하여 종궐 서남쪽 60보쯤 되는 곳에 `만전`을 설치하고 공주를 기다렸다. 그는 종궐 인근에 공주를 맞이하기 위한 천막 궁전을 짓는다. 다만 기존 연구자들은 대체로 태정 응달리를 만전의 위치로 지목하면서, 서남쪽 60보(六十步)를 육천보(六千步)의 오자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가락국의 궁궐로 추정되는 봉황대에서 태정 응달리는 1만 보(약 7㎞)가량 떨어져 있으므로 6000보의 오자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종궐의 규모를 생각해 보건대 공주와 함께 온 20여 명 이상의 수행원과 15명의 사공이 유숙할 만한 숙사(宿舍)의 기능을 갖추었을 것이다. 여기서 종궐이 자리했던 곳은 현재 보배산(보개산) 아래 주포마을의 어느 지점으로 추정된다.

별포(別浦) 주포(主浦)

별포는 공주가 가락국 경내에 와서 배를 대느라 닻을 내린 곳이다. 그리고 공주가 처음 배를 대고 내린 곳은 별포진 입구(別浦津頭)인데, 이 땅의 토지신에서 입국 신고식을 치렀고, 그 절차가 산령에게 비단바지를 폐백한 것이었다.

공주는 험난했던 긴 항해를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감사를 올리기 위해 그 일대에서 가장 큰 산인 보배산 산신에게 비단바지를 폐백으로 올린다. 「가락국기」에 나타난 몇 구절 안 되는 공주에 대한 묘사는 공주가 덕스러우면서도 매우 지혜 있는 여인이란 것을 엿볼 수 있는데 목숨 걸고 그 먼 길을 오면서 도착 이후의 행동과 계획은 배에서 내리기 전 이미 수립되어 있었다. 그녀는 환영 사절인 구간에 대한 거절, 수로왕의 직접적 영접과 산령에 대한 감사의 의례를 자신의 계획에 따라 실행하였던 것이다.

별포진두는 공주가 승점에 오르기 전에 내린 지점이며 산 밖 별포나루 입구라고 한 곳으로 높은 고개인 승점의 아래쪽인 현 가주터널 부근 어느 지점으로 보인다. 공주가 배를 처음 댄 곳은 별포나루 입구 어디쯤이나 별포는 어떤 지점이 아닌 나루 전체를 지칭하게 되었다.

나루가 포함된 마을을 도두촌(渡頭村)이라 하였는데 그곳이 오늘날 주포마을이다. 원래 별포였다가 공주(公主)가 내린 곳이라 하여 주포(主浦)가 되었고 또 다르게 옥포(玉浦)라고 한다. 그것은 아마 공주의 이름이 허왕옥(許黃玉)인데서 기인한 걸로 보이며 아직도 이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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