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나의 집" 홍콩의 딸 `매염방`
"홍콩은 나의 집" 홍콩의 딸 `매염방`
  • 김중걸 편집위원
  • 승인 2021.10.13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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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미로
김중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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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전설적인 엔터테이너로 `홍콩의 딸`인 `매염방`(梅艶芳. ANITA MUI)의 전기가 영화로 나왔다. 제목은 그녀의 이름을 딴 <매염방>(감독 렁록만ㆍ주연 왕단니)이다. 15일 오후 2021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폐막작으로 세계 최초로 상영(월드 프리미어)된다. 영화에서는 간판 등이 CG로 구현돼 홍콩을 추억하기 좋은 영화다. 가수 겸 배우인 `매염방`을 통해 `장국영`은 물론 옛날 홍콩 연예인과 연예계를 추억할 수 있다. 4살 때부터 언니 `매애방`(梅愛芳)과 함께 생계를 위해 야간무대에 올랐던 모습에서부터 본격적인 연예계 데뷔, 파격적인 무대매너를 통한 가수로서의 성공과 영화계에서 입지를 굳히게 되는 과정과 죽음까지를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20년에 걸친 배우 `장국영`과의 우정과 이별, 동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고자 했던 모습이 담겨있다. 배우 `매염방`이 인물 전기 영화로 제작된 것은 연예계에서 그에 대한 추모와 그리움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매염방`은 중국에서 다양한 연령층에서 모두 잘 알고 사랑을 받고 있는 인물이며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홍콩 연예인협회 창설자 중 한 명이자 첫 여성회장을 역임했다. 가수가 된 이후 5년 연속 `10대 히트곡 최고 인기 여가수상`을 받았다. 배우로 활동하면서 수차례 최우수 여배우상을 받아 `사료영후`(四料影后)로 불리고 있다. 1978년 개봉된 영화 <연지구>에서 `매염방`은 사람과 귀신의 끝나지 않은 사랑을 연기했다. 이 영화가 `매염방`에게 대만 금마장영화제, 홍콩 금상상 여우주연상 등 영화제에서 4개 부문 대상을 수상한 여배우가 되면서 `사료영후`가 됐다.

홍콩 침사추이 영화의 거리 성광대도에 있는 `매염방` 동상 아래에는 배우 유덕화가 쓴 `홍콩의 딸 매염방`(香港的女兒梅艶芳)이라는 글이 있다. 그의 이름에는 향기와 명성의 뜻이 담겨있다. 1982년 신인가요제에 첫 출전하면서 영문이름으로 `아니타`(ANITA MUI)로 지었다. A가 가장 먼저 불린다는 이유다. 대상을 차지했다.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병으로 숨지자 중1 때 자퇴하고 어머니가 운영하던 `금하가무단`에서 노래를 했다.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오빠들의 학비를 대는 등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했다고 한다. `의리의 큰언니`, `홍콩의 딸`로 불릴 정도로 홍콩의 국내외적 상황에 적극 목소리를 내고 행동했던 `매염방`의 다면적인 순간들을 조명했다.

올해 BIFF에 폐막작으로 홍콩영화가 선정된 것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홍콩의 딸인 `매염방`의 일생을 소재로 한 영화 초청은 단순히 홍콩영화 초청의 의미를 넘어 영화인들의 의리와 연대가 담겨있는 것 같다. 2019년 6월 홍콩사태 때 세계인과 세계 영화계는 홍콩과 홍콩민을 걱정했다. 홍콩민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에 나섰다. 아시아 영화를 중심으로 태어난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영화인들의 절대적인 호의와 응원 속에서 성장했다. 특히 홍콩영화와 홍콩영화인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콜드 워>는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갱스터의 월급날>(감독 리포청)은 제19회 폐막작으로, <칠중주:홍콩 이야기>는 제25회 개막작이었다. <콜드 워>는 렁록만 감독이 공동연출했으며 <칠중주~>는 홍금보, 허안화, 담가명, 원화평, 조니 토, 임영동, 서극 등 홍콩과 아시아 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감독들이 함께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다. 이 영화는 영화의 산실이었던 홍콩의 70년의 역사를 담은 작품이자 동시에 우리의 과거도 떠올리게 했다. 지난해에는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가>, 허안와 감독의 `사랑 뒤 사랑`(Love After Love), 앤슨 호이산 감독의 <친애하는 홍콩> 등 홍콩을 소재로 한 영화가 초청돼 홍콩을 추억하기도 했다.

`매염방`은 1963년 10월 태어나 2003년 12월 암으로 41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같은 해 4월 장국영이 세상을 떠나자 실의에 빠졌으나 일어나 마지막 공연을 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는 "여러분(팬)과 무대, 노래와 결혼을 했다"며 "안녕"을 고했다. 폭력배의 위협에 태국으로 피신한 `매염방`은 캐나다로 가자는 말에 "홍콩은 나의 집이다"며 홍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지금 홍콩은 떠나는 도시가 되고 있다. 이후 그는 공익자선사업 활동과 함께 자선재단을 설립했다. 사스 때는 공연을 열어 수익금을 의료진,희생자에게 지원하는 등 홍콩을 사랑했다.

`뉴노멀`, `원더우먼 무비`, `동네방네 비프` 등 색다른 시도로 감염병과의 싸움에 지친 국민에게 열흘 간 영화축제를 선물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코로나를 딛고 일어선 성공적인 축제의 역사를 또 한 번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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