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이지신, 까닭을 익혀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라
온고이지신, 까닭을 익혀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라
  • 허성원
  • 승인 2021.10.1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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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의 여 시 아 해(如是我解)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임금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무슨 말인가?"라고 하니, 이유경이 "옛글을 익혀 새 글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라고 하자, 임금이 말했다. "그렇지 않다. 초학자는 그렇게 보는 수가 많은데, 대개 옛글을 익히면 그 가운데서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어 자기가 몰랐던 것을 더욱 잘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정조 1년 2월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이다. 논어 위정편의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에 관해 대화하고 있다. 우리는 이유경의 말처럼 `옛것과 새것을 고루 익혀 신구 지식에 대한 균형을 이루어야만 남의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배웠었다. 이에 대해 정조는, 그런 해석은 초보자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옛것을 익히다 보면 그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로 `온고지신`을 해석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어느 해석이든 썩 공감이 가지 않는다. 스승 노릇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옛것과 새것을 두루 익혔을 것이고, 그 과정에 어찌 새로운 앎이나 깨달음이 없었겠는가. 왜 굳이 공자께서 그 점을 스승의 조건으로 엄히 규정해두셨을까 싶다.

`온고이지신` 중의 `고`(故) 자는 공자 이후 근 2500년간 일관되게 `옛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런데 이 글자는 본래 `까닭 고`(故)이다. 그러니 그 본래의 뜻으로 해석해보자. 그러면 전체 문장은 이렇게 풀어진다. `까닭을 익혀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야만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 `까닭`이 무엇인가. 모든 결과의 원인이고 이유이며, 나타난 현상의 원리이고, 문제의 근원이다. 원인, 원리 등은 현상의 파악이나 문제 해결을 위한 열쇠가 되니, 노자가 말하는 `도`(道)가 그것이고, 이기론(理氣論)에서의 `이`(理)가 바로 그것이다. `까닭`은 또한 `Why`(왜)이다. `Why`는 `How`(어떻게)나 `What`(무엇)에 대응한다. `Why`(이유)의 규명은 존재나 행위의 근원적 의미를 파악하는 의미 중심적 접근 방법으로서, 과정(How)이나 결과(What)를 중시하는 시각에 비해 훨씬 통찰적인 상위의 사고방법이다.

`까닭` 즉 `왜`를 추구하는 근원적 사고는 모든 창의력의 출발점이다. `왜`는 현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기존 지식의 권위에 도전한다. 하달식, 주입식 지식 전달을 거부하고 상향적, 파괴적 지식을 창조한다. 그래서 `왜`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한다. 미국 제퍼슨 기념관이나 도요타가 다섯 번의 질문(5Why)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왜`는 존재나 행위의 이유 혹은 의미다. 개인이나 조직의 존재 이유 즉 가치관 즉 비전에 연결된다. 강한 조직일수록 조직원들에게 선명한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강력한 비전을 갖추고 있다. 스티븐 코비는 "이유(Why)를 가진 자는 어떤 목표(What)나 어떤 수단(How)도 감당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훌륭한 지도자일수록 `왜`(Why)를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바티칸 교황청에는 `서명의 방`이 있다. 그 네 벽면에는 라파엘로가 그린 신학, 법학, 철학, 예술에 관한 주제의 작품들로 각각 장식되어 있다. 철학을 주제로 한 동쪽 벽면에는 소크라테스 등 여러 고대 철학자들의 초상을 그린 `아테네 학당`이 배치되어 있고, 그 위의 천장화에는 여신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어린 천사가 서 있다. 두 천사가 메고 있는 글자판에는 `CAUSARUM`(인과, 원인)과 `COGNITIO`(인식, 지식)가 씌어 있다. 그 뜻은 `인과의 인식`이니, 즉 `까닭에 대한 깨달음`이라 고쳐 쓸 수 있다. 이는 곧 `온고이지신`(까닭을 익혀 새로운 깨달음을 얻다)이 아닌가.

거기다 가운데의 여신은 `NATURALIS`(자연)와 `MORALIS`(도덕)라는 책을 들고 있다. 결국 철학 벽면의 이 천장화는 `철학이란 것은 까닭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자연과 도덕에 대한 가르침을 널리 베푸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의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와 기가 막히게 일치한다. 동서양의 철학이 이처럼 우렁차게 공명하고 있다.

이렇게 두루 살펴보니 결국 `온고이지신 기이위사의`는 `까닭의 탐구를 통해 원리 혹은 의미 중심적인 사고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아야 하며, 그런 경지에 이른 자만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공자의 가르침`이라고 이 후학이 발칙하게 우겨본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까닭`을 익혀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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