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과 사람의 조건
인간의 조건과 사람의 조건
  • 이광수
  • 승인 2021.10.0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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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방담<春秋放談>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얼마 전 오랜만에 서점에 들렀다. 주구장창 주역서만 읽다가 볼만한 신간 한권을 사고 싶어서였다. 머리도 식힐 겸 필자의 본방인 소설코너를 섭렵하다가 30여 년 전에 읽은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정치가인 앙드레 말로의 소설 <인간의 조건>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읽으면서 받은 감동이 컸기에 다시 사 읽어보니 예전의 느낌보다 더 강하게 다가왔다. <인간의 조건>은 앙드레 말로의 역작으로 1933년에 발표해 그해 프랑스 문학의 최고 권위인 ‘콩쿠르상’을 수상했다. 장제스(장개석)가 공산당을 이용하여 상하이에서 북방군벌을 몰아내고 나서 공산당을 탄압한 1927년 상하이 쿠데타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연대적인 행동의 중심 속에서 고독감에서 헤어날 수 없는 중국인 테러리스트 첸, 고독에 사로잡히면서도 집단적 행동과 우애의 정신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혼혈아 기요,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닌 러시아 혁명가이자 의학도인 키토프, 기요의 아버지이자 아편중독자인 대학교수 지조르 등 네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신념과 죽음의 투쟁사이다.

앙드레 말로는 이 경험적 소설을 통해서 ‘인간은 어떻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를 네 주인공들의 투쟁과 죽음을 통해서 고발한다. 한 인물의 위대함은 말이나 사유가 아닌 행동으로 죽음을 맞는 모습에서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죽음으로써 인간의 조건을 뛰어 넘고자 했던 네 주인공들을 통해서 비로소 인간의 위대함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앙드레 말로가 ‘오랜 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한 말처럼 그는 동서양을 넘나들며 반제국주의와 파시즘을 증오하며 그 투쟁에 직접 뛰어들었다. 스페인내란에 참여했고, 인도차이나 반도의 캄보디아문화유적 발굴, 중국의 공산당 소탕작전에서 장제스 부대에 동참했으나, 공산주의자였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을 죽이고 탄압하는 장제스와 결별하고 프랑스로 귀국했다.

그는 <왕도로 가는 길>, <정복자> 그리고 장제스와 결별해 프랑스에 귀국한 후 에세이집 <서유럽의 유혹>을 썼으며, 1927년 <인간의 조건>을 발표했다. 그는 귀국 후 ‘위대한 프랑스’의 기치를 내건 드골 대통령의 열렬한 신봉자이자 친구로 문화부장관을 역임하면서 드골과 정치생명을 같이 했다. 이때 프랑스는 영국과는 달리 미국의 ‘팍스아메리카나’에 반기를 들고 가장 프랑스적인 것이 위대하다며 앙드레 말로에게 프랑스 예술 부흥의 전권을 위임했다. 앙드레 말로 재임 시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은 ‘예술과 유행은 프랑스 파리로부터 통한다’고 할 만큼 큰 업적을 남겼다.

<인간의 조건>에서 앙드레 말로가 추구한 사상을 살펴보자. 그는 전쟁과 혁명의 와중에서 인간은 희생자일 수밖에 없지만 절망적인 순간에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고 연대의식을 드러내는 진정한 영웅이 탄생한다고 했다. 서울대 유효식 교수는 ‘이 작품의 문학적 의미는 선택과 행위의 관계를 들어냄으로써 문학을 통해 역사속의 개인들을 형상화하고 역사를 통해 문학의 길을 제시한다’고 했다.

<인간의 조건>에서 소설속의 네 주인공은 폭동을 주도한 이상주의자들이다. 한 인물의 위대함이나 사유가 아닌 행동은 특히 죽음을 맞는 모습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시간의 흐름에 종속되어 있는 이 세상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이 바로 예술작품임을 알 수 있다. 지나간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이고 강렬하게 형상화함으로써 시간을 초월하여 현재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시대에 맞서 최선을 다해 사유가 아닌 행동으로 죽음을 무릅쓸 자신이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시인 안도현은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너는 누구에게 단 한번 만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냐’고 반문한다. 작가 송정림은 신념이든 사랑이든 그 무언가를 위해 소설속의 주인공들처럼 온몸을 뜨겁게 태워 본적이 있는지 묻는다. 간절한 열망, 내존재를 다 던져도 좋은 절절한 갈망, 그것을 이루어내려고 하는 처절한 실천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라고 했다.

사람과 인간은 비슷한 개념으로 통용되는 말이다. 그러나 엄격히 구별하자면 사람은 동물과 식물을 구분할 때 동물의 한 종으로 짐승과 구별되는 말이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듯이 이성적 인격을 갖춘 만물의 영장이 인간이다. 앙드레 말로가 말한 ‘인간의 조건’은 바로 인간다운 사람으로서의 인격을 갖추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했다. 인간자체가 판단의 기준이라는 말이다. 화천대유의 돈벼락 스캔들을 지켜보면서 ‘사람의 조건’과 ‘인간의 조건’이 어떻게 다른지 냉철하게 자문해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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