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20:29 (토)
대장동, 고려 대장공주 그리고 `대` 장군차
대장동, 고려 대장공주 그리고 `대` 장군차
  • 김중걸 편집위원
  • 승인 2021.10.06 2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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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미로
김중걸 편집위원
김중걸 편집위원

`대장`이라는 낱말이 나쁜 이미지로 민심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대장(大庄)동`은 단군 이래 최대 부동산 게이트이라는 질책의 목소리와 함께 경악할 만큼의 주변인들과의 개발이익 나눔 잔치는 국민에게 괴리감을 주고 있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제2의 수서비리`라는 지적 등 정치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대장동은 경기도 성남시의 한 동네다. 서민의 내집마련 꿈 뒤편에서 서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개발이익을 내고 자기들끼리 돈 풍년놀이에 가가 찬다. 분양자와 성남시민에게 돌아가야 개발이익이 개발업자와 법조인, 언론인, 유력 정치인 자녀 등 주변인들의 배를 불렸다는데 국민은 허탈해하고 있다. 이들이 결합해 설계를 하고 이익을 나눠 가진 이 같은 토건 비리는 대한민국의 주택 정책 등 각종 건설개발에 암적인 요소다. 대장동 사건은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털고 가야 할 문제다. 털지 못하면 주택 개발은 민간이 아닌 공공이 맡아 집값과 공급을 안정시켜야 한다.

영화 `대장 부리바`가 떠오르는 대장`이라는 낱말이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보통 우리는 `대장`이라는 말을 들으면 `골목대장`을 떠올린다. `골목대장`의 말뜻에는 군대의 계급이 담겨 있다.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 연대장, 대대장으로 불리는 대장(隊長)이라는 의미는 한 부대 등 집단을 책임지는 리더라는 뜻이다. 그렇듯이 군대에서 최고의 지위는 대장(大將)이다. 별 4개 사성장군인 대장은 군대의 장관급 장교의 사실상 최고 단계인 계급이다. 거의 모든 나라 군대에서 제복 군인 최고봉의 존재이다. 물론 별 5개인 원수가 있기는 하지만 보통 명예직으로 취급을 받는다, 대장(大將) 역시 한 무리의 책임자 또는 싸움 대장 등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불린다. 좋은 의미의 `대장`은 음이 같은 `대장동`으로 인해 불편한 오해를 받고 있다.

성남시 대장동의 한자 장(庄)은 `농막`, `전장`, `평평하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장동의 본래 이름으로 알려진 장(莊) 또한 `풀이 성한 모양`, `초목으로 뒤덮인`으로 풀이된다. 장(庄)은 장(莊)의 속자라고 한다. 주역학자들은 대장동 개발을 독식할 사업체명인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은 주역의 괘 가운데 하나라는 설명을 한다. 성남의 변두리 산동네 이름인 대장동은 `뇌천대장` 괘의 대장(大壯)과 한지 표기가 같다고 한다. 이 때문에 대장동 개발을 독식할 사업체명을 `주역`에 일가견을 가진 어떤 비상한 두뇌가 의도적으로 지어냈다는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개발지역으로 지정된 대장동의 어원적 의미를 `주역`의 괘사에서 찾아내고 거기에다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의 괘를 교묘하게 갖다 붙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역의 좋은 괘가 분에 넘치는 무리한 개발이익을 쫓는데 이용된 나쁜 사례가 되고 있다.

대장동은 경남 창원에도 있다. 진해구에 속하는 법정동인 대장(大壯)동은 힘센 사람이 많이 나온 마을이라 대장동으로 불렀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원래 웅천군 동면에 속한 지역으로 1908년(융희 2년) 창원군 웅동면에 편입되었다가 1910년 마산부에 편입되는 등 숱한 행정구역 변천과정을 거쳤다. 2010년 진해시가 창원시에 편입되면서 창원시 진해구 대장동이 됐다. 1912년 간행된 `구한국 지방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 힘센 사람이 많이 나온 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대장`하면 또 생각나는 명칭은 제국대장공주와 계국대장공주, 노국대장공주이다. 이들은 원나라 공주 출신의 고려의 왕비다. 제국대장공주는 고려 후기 제25대 충렬왕의 제1왕비이며 계국대장공주는 제26대 충선왕의 제 1왕비, 노국대장공주는 제31대 공민왕의 왕비이다. 이들 대장공주는 국력이 쇠퇴한 고려의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명사이다.

이제 대장의 음을 `대장군`(大將軍)으로 넓히면 우리에게 와 닫는 것이 있다. `장군차(將軍茶)`다. 김해시의 특산품인 장군차는 오랜 유래를 갖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재배됐다는 장군차의 이름은 역사가 담겨져 있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충렬왕이 김해에 들렀다가 차의 뛰어난 맛과 향을 보고 이름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가락국 때 왕비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져온 차 씨앗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김해시는 2017년 김해 동상동에 있는 가야시대 차나무 재배지를 경남도 기념물로 지정했다. 장군차는 화장품으로도 개발돼 화장품계의 `장군감`을 꿈꾸고 있다. 김해 `장군차`는 이제 국민 복장을 치게 하는 `대장동`의 나쁜 이미지를 불식시킬 `대장군차`로 자리 잡아야 한다. 장군차 샴푸 등 장군차 등을 활용한 장군차 화장품은 장군차와 함께 국민의 심신을 달래주는 힐링으로 승화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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