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에 `하마`가 있다
회의실에 `하마`가 있다
  • 허성원
  • 승인 2021.10.05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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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의 여 시 아 해(如是我解)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아프리카의 사파리 가이드들이 사자나 코끼리보다 더 두려워하는 동물이 있다. 그건 하마다. 하마는 덩치가 크고 굼떠 보여 온순하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그 덩치에 걸맞게 힘이 엄청나고 시속 50㎞ 정도의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다. 거기다 성격이 급하고 별 이유 없이 공격하기도 하여, 매년 하마에게 희생되는 사람의 수가 약 500명 정도에 이른다. 이는 사자 피해의 5배에 달한다고 하니 가히 두려워해 할 맹수라 할 것이다.

`하마`는 회의실에도 존재한다. 여기서의 `하마` 즉 `HIPPO`(Highest Paid Person`s Opinion)는 `최고 연봉을 받는 사람의 의견`이라는 뜻이다. 이 용어는 구글 부사장 출신으로서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라는 책을 쓴 조나단 로젠버그가 처음 사용하였다. 회의에 참석한 CEO 등 리더의 존재 혹은 그의 주장이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정글의 하마와 같이 위험하다는 말이다.

조직에서 한두 소수의 독단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이 명백하다.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집단의 지혜를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는 그 조직문화에 있다. 직원들이 리더의 의견에 저항하지 못하고 침묵하여 결국 독단을 허용한다면 그 조직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지할 수 없다. 조직원의 침묵은 반대의견에 대한 무언의 억압, 즉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특정의 방향으로 유도하는 사회적 압력에 기인한다.

그런 문화에서는 애빌린 패러독스와 같은 불합리한 결정과 행동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에빌린 패러독스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의사를 묵시적으로 배려하여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에 동의하는 모순이다. 혹은 `악의 평범성`으로 널리 알려진 홀로코스트 실행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사례에서처럼, 명령이 내려지면 아무런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성실하게 따르는 무개념의 조직원들이 득실거리는 조직일 수도 있다.

"군주가 싫어하는 것을 보이면 신하들은 그런 기미를 숨기고, 군주가 좋아하는 것을 보이면 신하들은 잘하는 척 꾸미게 된다. 군주가 원하는 바를 드러내면 그것을 바탕으로 신하들은 태도와 마음가짐을 취하게 된다." 한비자의 말이다. 그래서 "군주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거호거오去好去惡). 그러면 신하들이 본마음을 드러낼 것이니, 군주가 보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고 하였다. 군주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아야만 신하들이 속마음을 드러낼 수 있다는 한비자의 가르침이다. 회의장에서 `하마`를 없애어 직원들이 자유로이 의사 표현을 하게 하라는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리더를 대면하고 있는 현장에서는 그 영향을 원천적으로 제거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하마 방지의 효과적인 방법은, 회의를 열기 전에 이슈 사항을 미리 배포하고, 사전에 참석자들이 비대면 상태에서 각자의 의사를 자유로이 개진하고 첨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하마`의 영향을 원천적으로 줄이는 효과와 함께 회의의 생산성과 경제성도 제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다른 `하마` 대책은 아예 만장일치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만장일치는 공동묘지에서만 볼 수 있다`는 말처럼, 만장일치의 집단사고가 가져올 치명적인 위험에 대해 역사는 이미 많은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 그래서 로마 교황청에서는 오로지 반대의견만을 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악마의 변호인` 제도를 두고 있다. 만장일치를 근원적으로 방지하는 것이다. 이를 모방하여 많은 기업에서도 반대만을 전담하는 레드팀(Red Team) 혹은 블로커(Blocker)라는 특이한 직무를 두기도 한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월드워 Z`라는 좀비 영화에도 이스라엘의 `열번째 사람`(The 10th Man)이 등장한다. 그는 말한다. "나의 임무는 9명이 동일한 의견을 내더라도 어떤 이유를 찾아내어서든 그것이 틀렸다고 말해야 합니다. 9명 모두가 틀렸을 경우도 대비해야 하니까요."

회의실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조직은 이미 `하마`의 지배를 받고 있다. 피터 드러커는 "의견 불일치가 없는 상황에서는 일체의 결정을 중지하라"고 하였다. `하마`가 감지되면 일단 모든 결정을 멈추고 `하마`를 축출하는 데 집중하라. 그런데 혹 본인이 `하마`의 주인공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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