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생에도 당신의 아들입니다
내생에도 당신의 아들입니다
  • 김병기
  • 승인 2021.09.16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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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내외동 주민자치위원회 부위원장
김병기 내외동 주민자치위원회 부위원장

휴일을 맞아 제법 여유를 부리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등록된 요양병원이다. "보호자님 급히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님 상태가 많이 안 좋습니다." 전화를 끊고 차량을 몰았다. 중앙병원을 지나가는데 또 핸드폰이 울렸다. "급히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어머님께서 조금 전 운명하셨습니다." 처음 울림이 오전 9시 3분. 6분 만에 모진 세월 풍파를 온몸으로 버틴 어머님이 이리 황망하게 생을 이별할 줄이야. 언젠가 긴 이별을 해야 함을 알았지만, 너무 빨리 찾아와 그날따라 잘 터지던 신호조차 터지지 않았다. 간호사실 옆 병동, 어머님은 앉아계시던 자리에 가만히 눈 감고 누워계셨다. 간병인은 "오늘따라 아침밥을 많이 드시고, 기분 좋다 노래까지 하시더니, 좀 자야겠다."며 누웠는데 안색이 이상해 간호사를 찾았다 한다.

밀양 박씨 종가에서 시집오신 할머님은 화타요 점술가이셨다. 언제부터인가 집에는 배가 아파서, 다리를 절뚝이며 걷지를 못해 업혀서 오는 사람에다 마을을 돌며 앞날의 길흉을 점치는 무당들도 드나들었다. 할머님은 어려운 시기에도 정성스레 밥을 지어 신당에 올렸다. 86세로 104세를 사신 외할머님에 비하면 한참을 적게 사셨는데 저승에서 무슨 할 일이 많다고 왜 그리 빨리도 가셨는지? 먼저 가신 할머님과 아버님은 만나셨는지? 못다 한 자식의 효도는 어찌하라고 그리 한마디 말씀도 없이 떠나셨단 말입니까. 아버님은 9살이 적은 데 시집을 와 남들보다 3배의 일을 했다며 `내 죽거든 너희 엄마 일 못 하게 하고 잘 모시라` 하셨는데. 그 시절은 시집을 가면 출가외인이라며 친정 출입을 금했다. 죽더라도 시댁 귀신이 되라며 시집을 간 딸에 대한 매몰찬 냉대에 숨은 속 깊은 뜻을 풍요한 세대에 사는 요즘 우리네들이 어찌 짐작이나 하리오.

`난 보리밥이 싫다.` 쌀밥만 먹기를 투정하셨고 유난히 생선회를 즐겨 드셨다. 몰래 생선회를 가져다주면 잔주름 드리운 미소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드셨던 어머님은 어느 날부터 생선회도 맛없다 하셨다. 집에서 마지막 나들이 간 주간 보호센터에서 식욕이 떨어졌다 해 찾은 병원에서는 어머님의 담낭관이 막혀 즙을 배출하지 못해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수술을 권했다. 담낭과 간ㆍ폐 등에 이미 암세포가 자리를 잡아 수술해도 예후가 좋지 않다는 소견을 말씀하셨다. 어머님의 마지막 배웅 길을 병원에서 하지 않으려 했지만, 시술한 호스의 담즙 처리를 위해 부득이 요양병원에 모셨다. `대궐 같은 집을 두고 왜 여기 있니, 집에 가자` 하셔서 두 줄로 드리운 호스 때문이라 하자, 밤중에 몰래 호스를 빼 혼이 났었다. 장례식장에서 이리 자손이 많은 집이 처음이라며 남들은 종이 한 장을 채우지 못하는 직계 안내표를 세 장을 이어 붙였다. 막 글을 배운 증손녀들이 자기 이름 찾기에 나선다. 할머님을 다시는 볼 수 없음에도 모른 척하며 모처럼 모인 증손끼리 한 잔 술로 야단법석이다. "왔나, 좀 더 있거라, 내 죽거든 제사 지내지 말고"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도 자식 걱정만 하시던 당신, 오늘따라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못난 아들이지만 내생에도 당신의 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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