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왕후와 불교의 전래경로 ② 중국 안악현 보주설
허왕후와 불교의 전래경로 ② 중국 안악현 보주설
  • 도명 스님
  • 승인 2021.09.13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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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 정 담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인간의 삶은 현재를 통한 끊임없는 체험과 과거를 통한 수많은 기억, 그리고 미래를 향한 다양한 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현재의 체험은 주로 과거에 경험했던 기억의 덩어리들이 하나의 프레임을 만들면 대개는 그 고정된 창을 통하여 현재를 인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경우는 역사를 인식하는 역사관과 세계를 인식하는 세계관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역사의 인식은 통합적으로 보느냐, 분절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현격한 차이가 난다.

사실 외부에서 유입된 가야불교의 전래경로는 통합적 사고가 아니고는 그 실체에 접근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동양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는 일찍부터 인류의 이동에 주목하였다.

소위 `허왕후 보주 도래설`을 주장한 그는 기존 사학자와는 다르게 문화ㆍ인류학적 입장에서 허왕후의 도래를 탐구하였고, 허왕후릉 비명(碑銘)의 `가락국 수로왕비 보주태후(普州太后) 허씨릉`의 보주(普州)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묘비는 보통 고인의 생전 직책이나 관향(貫鄕)이 새겨져 있는데 김 박사는 왕후릉비의 `보주`에 착안하여 연구할 결과, 허왕후의 본향은 현재 중국의 사천성 안악현(安岳縣)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안악현은 주나라에서 송나라까지 보주(普州)라 불렸고 그의 주장에 따르면 허왕후의 선대 조상들은 인도 아유타국에 살았으나 기원전 후 북방 월지족이 침입으로 전쟁의 패배와 함께 미얀마를 거쳐서 중국의 보주 지방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고대 중국과 미얀마는 옥을 교류하였던 `옥의 길`(jade road)이 있었고, 그녀의 조상들은 그 길을 통해 중국으로 간 것으로 추정하였다.

중국의 사서 `후한서`에는 서기 47년 사천성 보주 인근의 남군(南郡) 지방에서 만족(蠻族)인 뇌천이 주동하여 반란을 일으키다 진압되었고, 뇌천을 따르던 7000여 명을 강하(江夏)지방으로 이주시켰다고 나온다. 또 50여 년 이후인 서기 101년 남군에 속하는 무현(巫縣) 지역에서 과중한 세금에 불만을 품고 허성(許聖)이 주동하여 두 번째 반란이 일어났으나 진압되어 강하지방으로 이주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김 교수는 이 기록을 근거로 사천성 보주 지방에 살던 허왕후 일족이 서기 47년 반란 당시 뇌천과 함께 봉기하였다가 패하여 강제 이주할 때 탈출한 지도부의 일부가 가락국으로 왔다고 추정하였다. 그리고 보주의 인근 무현 지방에 남아 있던 허씨의 후예인 허성이 나중에 다시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허씨 일족이 보주에 살았다고 보았다.

김 교수는 그러한 사실의 증거로 허왕후가 시집올 때 한나라 시장에서 나는 물건들이라는 `한사잡물`(漢肆雜物)의 표현과 예물로 가져온 미얀마에서 나는 보석인 `경옥`(瓊玉ㆍblack stone)을 예로 들고 있다.

김 명예교수는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특기를 발휘하여 사천성 안악현으로 직접 답사를 갔고 그곳에서 허씨들의 집성촌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마을에는 신정(神井)이라는 우물이 있었고 그 뒤 바위에는 우물의 유래가 적혀있는 `신정기`(神井記)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허황옥이란 소녀에 대한 기록이 새겨져 있었다.

신정기는 `옛날 이곳 허씨 집성촌에 허황옥이란 소녀가 살았는데 용모가 뛰어나고 지혜로웠다. 어느 때 큰 기근이 들었을 때 누군가 이곳 우물에서 하늘에 간절히 기도를 드리니 우물에서 매일 고기 두 마리를 얻어 가족의 목숨을 구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허왕후의 공주일 때의 이름이 허황옥인데 신정기의 내용에도 동일한 이름으로 나오고, 그녀가 태어난 시기가 동한초(東漢初)라 하니 삼국유사의 허황옥과 동시대인 것이다.

이와 함께 김 박사가 주목한 점은 허씨 사당 입구에 걸려있는 `쌍어 문양`이었다. 쌍어문은 수로왕릉의 정문에도 있고 북인도 아유타국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데 허씨 사당에도 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 보주라는 지명의 동일성, 허씨 집성촌 그리고 신정기의 내용, 쌍어문 등을 근거로 김병모 명예교수는 허왕후가 온 곳이 현재의 중국 사천성 안악현임을 확신하였다.

한국의 문화인류학을 개척한 김병모 명예박사는 이 문제에 천착하면서 인도, 중국 등을 수차례 답사하고 인도 아요디아ㆍ중국 보주ㆍ가야로 이어지는 전래경로를 추정한 만큼 그의 주장도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고대 아시아 대륙에서 베링해를 건너가 다른 대륙에 정착한 아메리카 인디언에 비하면 훨씬 후대의 허왕후가 같은 대륙인 인도나 중국에서 오는 게 뭐 어려울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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