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우정치의 허상에 대한 맹신
중우정치의 허상에 대한 맹신
  • 이광수
  • 승인 2021.09.12 2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춘추방담<春秋放談>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요즘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경선에 뛰어든 여야 정치인들의 가시 돋친 비방공세가 점입가경이다. 여는 여대로 야는 야대로 아군과 적군의 경쟁자를 향해 날선 공방을 주고받고 있다. 네거티브 공격을 멈추자는 약속은 그 말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사라지고, 상대방의 과거사 까발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문득 어느 은퇴 노 정객이 “권력탐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고 했던 회한에 찬 탄식이 생각난다. 이 말은 멀리 또는 가까이 자의든 타의든 비극적인 선택으로 정치생명을 마감한 여러 사건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한마디로 권력의 종말은 참절비절(慘絶悲絶)이다. 오죽하면 영국에는 ‘정치하는 집안과는 혼사도 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을까. 이는 지난날의 우리 정치 권력투쟁사가 증명하고 있다. 성하면 쇠하고 쇠하면 다시 성하며, 가득차면 비워지고 비워지면 다시 차는 ‘소식영허’의 평범한 섭리를 간과한 채 인류역사는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사로 얼룩졌다.

주역 산지박괘 단전에 ‘군자 상 소식영허 천행(君子尙消息盈虛天行)’이라고 했다. ‘군자가 소멸하고 자라나며 가득차고 비게 됨을 숭상하는 것은 하늘의 도’라는 뜻이다. 우주만물의 운행은 생성소멸의 변화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유동한다. 하늘 아래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역 뇌화풍괘의 단전에는 ‘해가 중천에 떠 있으면 기울고 달이 만월로 차면 이지러지니, 천지가 차고 비는 것이 때에 따라 사그라지고 불어나는데 하물며 사람과 귀신인들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했다.

정이천은 ‘때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남은 천지만물의 조화이다. 풍성하고 성대한 때에 이런 것을 경계한 것은 그 중도를 지나치게 성대함에 이르지 않게 함이라’고 했다. 또 주자는 ‘천지는 큰 것이고 밝음으로 움직임이 성하고 큰 형세이지만 합당한 도를 지켜서 너무 성대한데까지 이르지 않음이 옳기 때문에 해가 중천에 떠 있듯이 하라’고 했다. 사람이 제 분수를 알고 그에 합당한 처신을 해야 함에도 그걸 알고도 제 잘났다고 설치다가는 망신살이 뻗치니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말이다. 물론 올곧은 정치인으로서 마땅함을 알고 바른 뜻을 펼치고 싶지만, 야합과 협잡이 난무하는 패거리 정치판에선 후안무치 철면피가 당연지사로 여겨진다.

노자는 도덕경(道德經) 37장 무위장(無爲章)에서 하백이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까?”라고 묻자, “모든 것이 고른데 어느 것이 짧고 어느 것이 길겠습니까. 길에는 끝도 시작도 없습니다. 그러나 개체에는 죽음과 삶이 있습니다. 한때 이루어졌다고 믿을 것이 못됩니다. 때론 비우고 때론 채워집니다. 그 모양이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세월은 막을 수 없고 시간은 멈출 수 없습니다. 사라졌다 생기고 채워졌다 비워집니다. 끝났다고 하면 다시 시작됩니다.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느냐에 대한 답은 모든 것은 순리에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고 했다.

정치의 계절을 맞아 대통령 병에 걸린 여야정치인들이 일도양단(一刀兩斷)의 비장한 각오로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자기 과신의 과대망상증에 걸린 자들에게 ‘소식영허’는 마이동풍이요 우이독경일 뿐이다. 후보지명도를 가늠하는 여론조사에서 보듯이 풍파처럼 요동치는 지지율의 희비쌍곡선이 후보경선과 내년 3월 대선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불허다. 민심은 천심이라지만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듯이 민심 또한 조석변이다. 역(易)의 가르침처럼 어차피 될 사람은 되게 마련이고 안 될 사람은 아무리 용써 봐도 소용없다. 군자지위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얻어지지 않으며 천우신조해야 한다. 자신의 분수를 망각한 채 부리는 만용은 허장성세에 불과할 따름이다.

선거철만 되면 도지는 정치열병은 구제불능의 불치병이다. 금단현상으로 끊지 못하는 알코올, 마약, 도박중독보다 더 무서운 병리현상이다. 패가망신인 권력에 집착하는 것은 페르소나에 도취한 중우들의 맹종에 기고만장하는 나르시시즘의 발로이다. 그래서 정치꾼들은 입만 벌렸다 하면 국민을 들먹인다. 한때 독일국민들은 ‘하일! 히틀러’에 광분했고, 일본국민들은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맹신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미치광이 권력자의 광기로 수백만의 무고한 국민만 희생됐을 뿐이다.

이제 중우정치의 허상에서 깨어나 새로운 정치질서를 확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선진국다운 자유 민주주의 헌정 질서 확립을 위해 정치인과 국민이 환골탈태 할 때다. 구제불능 구태 정치인들의 상투적 프로파간다는 신물이 난다. 우리 국민들은 차가운 머리와 냉철한 판단으로 편견 없는 후보자를 선택해야 한다. 경도된 이념의 도그마에 빠져 가면의 인격인 ‘페르소나’를 맹신하면 한국정치의 미래는 백년하청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