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왕후와 불교의 전래 경로 ①
허왕후와 불교의 전래 경로 ①
  • 도명 스님
  • 승인 2021.09.06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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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 정 담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공식적으로 알려진 한국불교 최초 전래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인 서기 372년 전진의 승려 순도가 불상과 경전을 가져오면서부터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옛 가야 권역인 영남지역의 민간과 사찰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 전래는 가야시대 허왕후와 장유화상에 의한다고 말들 한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허왕후 도래의 상황을 육하원칙에 의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고, 이후 이 지역에 이어져온 지명들과 놀이문화는 그것이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한다.

또 가야불교 전래의 실체는 삼국유사 <파사석탑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여기에는 허왕후가 도래할 때 `불교의 상징물인 탑을 싣고 왔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 만큼 불교가 전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때문이다.

가야가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지만 가야 땅에 사는 많은 사람들과 영남 지역의 대다수 스님들은 지금도 가야불교에 대한 설화들을 사실로 인식하고 있다. 한두 사찰도 아닌 30여 곳 이상의 사찰에서 내려오는 창건설화와 인물에 얽힌 이야기, 유물 등을 토대로 종합적으로 판단해보면 `가야불교는 없다`라고 보는 일부의 견해가 오히려 합리성이 떨어져 보인다.

가야불교와 관련해선 삼국유사나 명월사 사적비, 숭선전비 등의 기록뿐 아니라 민담, 설화, 전설 등의 구전도 엄연히 존재하므로 허구로 치부할 수 없다. 기록도 없이 민담과 설화만으로 가야불교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 신빙성은 떨어진다고 볼 수 있으나 역사적 기록의 바탕 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민담과 설화들은 기록에서 못다 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가야불교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허왕후의 도래는 역사의 기록이 남아 있고 민간의 설화에도 등장한다. 그 경로는 인도에서 가락국까지의 국외 경로와 기출변에서 본궐까지의 국내 경로로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허왕후 국외 도래 경로와 몇 가지 주장들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크게는 세 가지 정도인데 인도 북부 아요디아에서 가락국으로 왔다는 설과 중국 보주에서 가락국으로 왔다는 설, 그리고 태국 아요디아에서 가락국으로 왔다는 설이 있다. 이외에도 인도 남부 `아요디아 꾸빰설`, `일본 큐슈설`, `중국 발해만설` 등의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사실 허왕후의 도래경로가 중요한 이유는 허왕후의 역사적 실재를 증명하는 `바로미터`일 뿐 아니라 그녀의 출신국을 밝히는 데 있어 결정적인 단서이기 때문이다.

<인도 북부 아요디아설> 허황후가 온 곳이 현재 인도 북부 우프라 프라데시주에 있는 고대 도시 `아요디아`라고 주장하는 이는 김해 금강병원 허명철 이사장이다.

아요디아의 옛 이름이 아유타로 알려져 있는데, 불교 경전인 `승만경`에 보면 승만 부인의 고향이 인도의 아유타라고 나와 있다. 아요디아 전래설을 뒷받침하는 보다 명확한 근거는 가락국기에도 나와 있듯이 공주가 첫날밤에 자신의 본향을 아유타국이라고 명확히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 이사장의 저서에 따르면 공주의 배는 아요디아에서 사라유강을 따라 나와 항구도시 `탐록`에서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해, `안다만 니코발 제도`와 `말라카해협`을 통과하고 중국의 `광저우`를 경유하여 가락국에 왔다.

그는 5세기 초 중국의 구법승 법현이 남긴 `법현전`의 항해 기록을 예시로 제시하며 허왕후가 계절풍을 타고 오면 장거리 항해가 충분히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허왕후 일행은 신보 조광 부부와 시종이 20여 명, 뱃사공이 15명 등으로 도합 40여 명에 이르렀다. 뱃사공이 돌아갈 때 선물로 각각 쌀 20가마와 베 30필씩을 주었다 하니 이때 소요된 쌀은 총 300가마이고, 베는 450필의 규모다. 이를 통해 당시 배의 크기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그 옛날 쌀과 베가 귀한 시절에 이렇게 많은 선물로 대가를 지불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공주가 온 곳이 가까운 곳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허 이사장은 허왕후 일행이 5월에 인도에서 출발하여 계절풍을 타고 8월에 도착하면 거의 3개월인데, 이 정도의 시간이면 탐록에서 가락까지 항해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고대의 월력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현재의 월력으로 보면 기원후 48년 무신년 7월은 윤달이라 한 달의 시간이 더 있게 되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최근 인도의 선박 연구에 의하면 인도에는 기원 전후 이미 수백 명이 타는 배들이 있었다고 하며, 허왕후 도래보다 5000년 앞선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보면 고래잡이배에 이미 삼각형의 돛 모양이 나타나고 있다. 고대를 알면 알수록 현재의 상식을 뛰어넘고 한편으로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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