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의 시대
황홀의 시대
  • 허성원
  • 승인 2021.08.3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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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의 여 시 아 해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살바토레 가라우`라는 이탈리아 조각가가 있다. 얼마 전 그의 조각 작품이 예술품 경매에서 약 2000만 원에 팔렸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작품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것이다. 작품을 얹는 좌대만 덩그러니 존재한다. 그 작품은 원래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김선달은 적어도 `없는 것`을 팔아먹지는 않았다.

그런 `없는 것`을 버젓이 파는 사람이나 그걸 감상하고 구입하는 사람이나 모두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단한 경지의 사람들이다. 논란이 없을 수 없다. 그러자 가라우는 이렇게 말한다. "이 예술 작품은 `없음`이 아니라 `비움`이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공기와 영혼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어쩐지 노자 철학의 향기가 느껴진다.

노자 도덕경 제14장에 이런 말이 있다.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어도 들을 수 없고 잡아도 잡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끝없이 서로 엮여 있어 뭐라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물질이 없는 상태`로서, 이를 `황홀`(恍惚)이라 부른다.

도(道)의 속성이 그렇다는 말이다. 도(道)라는 것은, 시각, 청각, 촉각과 같은 감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부단히 변화하고 연속되니 뭐라 특정할 수도 없고, 물질로부터 벗어나니 형상도 물체도 없는 미묘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 미묘함을 `황홀`(恍惚)이라 부른다. `황홀`은 우리가 흔히 `황홀하다`라고 말하는 `눈부시게 찬란하고 화려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도덕경에서처럼 `미묘하여 헤아려 알기 어려운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가라우의 작품이 바로 그렇다. 오감으로 느낄 수 없으니 그야말로 도덕경에서 말하는 `황홀` 그 자체이다. 느낄 수 없는 그런 `황홀`한 재화를 사고파는 것이 터무니없이 황당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황홀의 시대`에 깊이 들어와 살고 있다. 바로 오감으로 느낄 수 없는 재화인 무체자산 때문이다. 그 `황홀`한 무체자산이 이미 실물 유체자산보다 우리 경제활동에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점차 더 커지고 있다. 기업들의 자산이 부동산, 설비 등 유체로부터 급격히 무체자산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무체자산은 주로 특허, 상표, 영업비밀,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모델, 정보, 데이터 등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대표적인 무체자산인 특허는 최근 미국 특허등록 중 60% 이상이 소프트웨어에 관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무체 기술의 창조와 그에 대한 무체자산의 취득이 대세 주류가 되고 있다.

미국 S&P 500대 기업들의 전체 자산 중 무체자산의 비율은 2019년 기준 평균 80% 정도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무체자산은 20%를 넘지 못했었는데, 이제 그 비율이 반전된 것이다. 에너지나 자원 등의 분야에서는 그 업의 특성상 여전히 유체자산의 비율이 높지만, 설비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 분야에서조차 무체자산은 80%에 육박하고 있고, 정보통신, 제약, 금융 등의 분야에서는 90% 이상이다. 그리고 기업가치가 높을수록 무체자산의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아마존의 무체자산 비율이 93%, 마이크로소프트가 90%, 애플이 77%, 페이스북이 79%이며, 유체자산이 비교적 많은 구글의 알파벳도 65%이다.

애플, 나이키, 선키스트 등은 제조업이면서도 생산 공장이 없다. 이처럼 `황홀한 공장`을 가진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들은 공장을 가진 기업들보다 더 강한 경쟁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최근의 유니콘 스타트업들은 그들 비즈니스의 핵심요소인 유체자산을 아예 갖지 않기도 한다. 세계 최대의 택시회사인 우버는 보유 택시가 한 대도 없고, 세계 최대의 여행 숙박 기업인 에어비앤비는 자체 호텔 방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세계 최대의 사무실 임대회사인 위워크는 그들 소유의 건물이 없다. 가히 `없음의 경제`의 시대라 할만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니콘들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체자산이 기업의 핵심가치가 되고, `무체`가 갖는 무한한 확장성과 유연성으로 폭발적인 경제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그래서 `황홀`한 자산의 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더욱 눈부시도록 `황홀`하게 성장한다. 황홀한 성장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황홀한 자산으로 무장하라.

우리는 `황홀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귀사는 얼마나 황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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