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5:55 (토)
상처받은 영혼은 아름답다
상처받은 영혼은 아름답다
  • 이광수
  • 승인 2021.08.29 23: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복잡다단한 세상이지만 누구나 성실하게 일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현실은 내 맘처럼 그렇게 녹녹하지가 않다. 삶의 필요조건인 돈에 상처받고, 존재의 충분조건인 사랑마저 상처받으면 배신감으로 절망한다. 그 위에 더하여 필요충분조건인 우정마저 상처받으면 세상 살기가 싫어진다. 이처럼 사람들은 상처받기보다 위로받고 사랑받길 소망한다. 이는 보통사람들이 누리고픈 행복 방정식이자 인지상정이다. 우리가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다 보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서로의 가슴에 상처 주고 상처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 상대가 부부와 부모형제자식사이거나, 직장상사와 부하사이, 막역한 친구사이, 또는 직장과 사회생활에서 경쟁하는 상대사이일 수도 있다. 상처받은 사람의 가슴은 말할 수 없이 쓰리고 아프지만 상처 준 사람 역시 고통스럽긴 매한가지다. 쌍방 모두 좋은 관계가 깨질 수 있기 때문에 후회가 뒤따른다.

오스트레일리아 작가 콜린 맥컬로의 명작 <가시나무새>는 호주 원주민 켈트족의 전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생에 단 한번 우는 전설의 새가 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소리보다 아름다운 소리로 우는 그 새는 둥지를 떠난 순간부터 가시나무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를 찾아 스스로 자기 몸을 찔리게 한다. 죽어가는 새는 그 고통을 초월해 종달새나 나이팅게일도 따를 수 없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와 자기 목숨을 맞바꾸는 것이다.`(송정림, 명작에게 길을 묻다) 성직자인 신부 랠프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현실적인 욕망사이에서 갈등하며 겪는 고통과 추락을 실존의 타락으로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여주인공 매기의 독백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가시에 가슴이 찔린 새. 그 새는 무엇을 위해 자신이 피를 흘리는지도 모른 채 노래 부르며 죽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가시에 가슴을 찔린 때를 알고 깨닫는다. 그러면서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너무나 철학적이며 인간적인 독백이다. 왜 가시나무 새는 자기 몸을 가시에 찔리며 아름다운 구원을 느낄까. 작가 콜린 맥컬로의 대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그것이 인생이니까.` 가시나무 새가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것인지 모르듯이 우리 인생도 자신의 선택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고통이 따른다. 우리가 한 평생 살아가는 가운데 현실적인 삶에서 고통이라는 상처 없이 살았다면 과연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시나무 새가 가시에 자기 가슴을 찔리게 해 피를 철철 흘리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죽어 가듯이, 우리가 모든 것을 걸고 선택한 삶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단 한 번도 삶의 가시에 찔려보지도 않고 아무런 상처 없이 안락하게 살아온 인생, 그래서 가시나무 새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항상 누군가로부터 상처받기만 했지, 내가 누군가에게 준 상처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애써 손톱으로 긁어 덧내면서 더 큰 상처를 만든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절망이라는 자학의 늪에 빠져 죽음까지 생각한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실존이란 자유로운 개인을 기술하는 개념으로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을 통해서 실천하고 행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자기 인생은 자기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누굴 원망하거나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또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는 `인간은 여러 조건이나 환경과 상황 같은 필연성에 제약받고 구속당하지만, 그 필연성의 한계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존재`라고 했다. 이것은 전설 속의 이야기 가시나무 새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자기가슴을 찔리게 하는 고통을 감내하듯이, 우리가 현실적인 삶에서 겪는 상처와 고통도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 명제 앞에 자유로울 수가 없다.

우리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절망감에 빠질 때 어떤 구원을 받을지 모르지만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생각과 행동은 부질없는 짓이다.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 자신이고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살아지는 것이다. 고통스런 삶에 부딪혀 피도 흘리면서 깨달음을 얻는 가운데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상처받은 영혼이 아름다운 것`은 그 상처를 애써 긁어 덧내지 않고 치유의 연고를 열심히 발라 새살 돋기를 기다리며 사는 것이다. 오늘 저문 해는 내일 또다시 떠오른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