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5:02 (금)
`언론징벌법`이 두려운 이유
`언론징벌법`이 두려운 이유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21.08.26 2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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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내부에서조차

"옳지도 이롭지도 않다"고

하는 이 법안을 몰아붙이는

이유는 자명하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면

현 권력이 편할 수 있다.
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에게 선과 악의 잣대를 갖다 대기가 모호할 때가 많다. 아무리 착한 개인이라도 단체로 묶이면 악마로 변신하는 경우를 자주 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큰 선거를 앞두면 집권 세력이 무리수를 쓸 개연성이 크다. 재집권을 하겠다는 계획은 아름다운 야욕이다. 정권이 넘어가면 실정이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집권 연장으로 실정을 미화해야 한다. 착한 국회의원이 새벽 4시에 악마로 변했다. 더불어민주당이 25일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국회법제사법위원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단독 의결했다. 수많은 개인과 단체가 반대한 `언론징벌법`을 날치기 통과시키고 민주당 의원 몇 명이 두 주먹을 세우며 자축했다.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이었지만 눈가에는 득의양양한 모습이 명백했다.

이 법은 허위ㆍ조작 보도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언론사에 피해액의 5배까지를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저런 온갖 악법의 요소를 갖춰 세계 주요 언론단체에서도 반대 목소리를 높였는데 막무가내로 몰아붙였다. 오는 30일 국회 본회의와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가 남았지만 언론의 기가 죽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정권이 진보 정부라고 하면서 겉으로 민주주의를 치장하고 민주주의 뿌리를 도끼로 쪼개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 언론을 위축시킬 독소조항이 넘치는데 언론의 자유를 버리고 개인의 인격권을 앞세웠다. 언론의 자유는 조금의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최대한 풀어져야 한다. 아무리 민주주의 국가라 해도 정권이 언론의 견제를 받지 않으면 독재의 큰 물살을 탈 수 있다. 여러 차례 물맛을 봤기 때문에 언론의 힘이 위축되지 않고 더 강화돼야 하는 게 민주사회의 바른 길이다. 이 틈새에 자라는 독버섯 같은 언론은 제거돼야 하지만 독버섯 없애려고 송이버섯까지 송두리째 날아갈 판이다.

언론의 입을 막으려는 술수는 독재적 발상이다. 아무리 좋은 의미를 갖다 붙여도 독재적 발상은 희석되지 않는다. 우리 언론의 환경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대부분 언론이 진보ㆍ보수 앞에 두 줄을 서 있는 형국이다. 정치ㆍ사회적 이슈를 두고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언론은 없고 정권에 우호적ㆍ비우호적 잣대에 따라 언론이 나눠져 있다. 일차적인 책임은 분명히 언론에 있다.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잘못을 범한 정권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에서 여야가 끝 간 데 없이 맞서면 힘센 측이 이긴다. 양보와 타협이 실종하면 민주주의의 꽃은 시들해진다. 거대 여당이 민주당이 힘으로 `언론징벌법`을 밀어붙이는데 힘없는 야당은 회의장을 퇴장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완성되면 우리나라 언론은 퇴행하는 모양새를 보일 것이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옳지도 이롭지도 않다"고 하는 이 법안을 몰아붙이는 이유는 자명하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면 현 권력이 편할 수 있다. 드러날 사실이 감춰질 수도 있다. 여권 앞에 엄청난 반대의 벽이 있는데도, 심지어 정의당까지 반대하는 데도 특공 작전을 써서 뚫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 이 법 통과에 목숨을 건 것처럼 보인다. 여러 독소조항을 심어서 신문에 나온 기사의 한 줄 한 줄에까지 시비의 소지로 만들 언론중재법이 공포스럽다고 느끼면 너무 멀리 나간 생각인지 모르겠다.

역사를 들춰보면 언론의 발목을 묶으려는 정권은 되레 언론에 의해 궁색한 처지에 놓인 경우가 많았다. 이번 `언론징벌법` 날치기가 완성돼 무한한 힘을 발휘할 때, 음지에서 "역사가 심판할 것이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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